[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구시대 용어에서 현대적 화법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2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한 키워드를 나열해 보면 새로운 변화가 읽힌다.
바로 협치, 통합 등 기존 정치권에서 쓰던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대신 협력 5차례, 의회주의 4차례, 파트너십 1차례 등 새로운 용어를 들고 나왔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날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감을 의식한듯 특정 정당을 지칭하기 보다 "의원 여러분께"나 "의원 여러분들과 함께"라고 언급하는 등 국회의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호소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의 이날 시정연설 키워드는 협력과 경제 위기로 요약된다. 윤 대통령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연금, 노동, 교육 등 3대 개혁 어젠다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제시했다.
참고로 이날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경제 10차례, 위기 9차례, 개혁 7차례, 민생 7차례 언급했다.
우선 윤 대통령은 이날 본론인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설득을 위해 대한민국이 직면한 대내외 여건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피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6일 오전 서울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시정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사진
윤 대통령은 "높은 물가와 금리는 취약계층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며 "방역 위기를 버티는 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난 손실만으로도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에게는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나라 안팎의 위기와 도전은 우리가 미루어 놓은 개혁을 완성하지 않고서는 극복하기 어렵다"며 "지속 가능한 복지제도를 구현하고 빈틈없는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려면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세계적인 산업구조의 대변혁 과정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며 "우리 학생들에게 기술 진보 수준에 맞는 교육을 공정하게 제공하려면 교육 개혁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금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은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며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위기 극복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시간의 중요성, 진영을 초월한 초당적 협력, 의회주의 원리 등을 피력했다.
윤 대통령은 "새 정부의 5년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매우 중요한 시간"이라며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 도전의 엄중함은 진영이나 정파를 초월한 초당적 협력을 어느 때보다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며 "지금 대한민국에는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윤 대통령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의회주의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며 "의회주의는 국정운영의 중심이 의회라는 것이다, 저는 법률안 예산안 뿐 아니라 국정의 주요 사안에 관해 의회 지도자와 의원 여러분과 긴밀히 논의하겠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이어 "오늘 제가 제안 설명드릴 추경안은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을 의회주의 원리에 따라 풀어가는 첫걸음으로서 의미가 크다"며 "정부가 이번 추경 편성 과정에서 고려한 것은 소상공인 손실을 온전히 보상하고 민생 안정을 충분히 지원하면서도 금리, 물가 등 거시경제 안정을 유지하면서 재정의 건전성도 지켜야 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추경 규모 및 재원 조달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정부는 전년도 세계잉여금 등 가용 재원 8조1000억 원과 금년도 지출 구조조정에 의한 예산 중 절감액 7조 원을 우선 활용하였고, 나머지 21조3000억 원은 금년도 초과 세수 53조3000억 원 중 일부를 활용하였다"고 설명했다.
초과 세수의 나머지 재원에 대해 윤 대통령은 "앞서 말씀드린 지방재정에 23조 원, 국가채무 축소에 9조 원을 쓰도록 하겠다"고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6일 오전 서울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시정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사진
이번 추경을 통해 추진하려는 주요 예산사업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소상공인의 손실에 대하여 온전하게 보상하겠다"며 "이번 추경에서 총 24조 5000억 원을 투입하여 전체 370만 개의 소상공인 업체에 대해 최소 600만 원에서 최대 1000만 원까지 손실보상 보전금을 지원하겠다"고 언급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방역과 의료체계 전환을 지원한다"며 "오미크론의 급격한 확산에 따른 진단검사비와 격리 및 입원 치료비, 생활지원비와 유급휴가비 등에 3조5000억 원을 지원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일상 복귀를 위해 먹는 치료제 100만 명분과 충분한 병상 확보 등에 2조6천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 예산사업으로 윤 대통령은 "물가 등 민생 안정을 위해 3조1000억 원을 지원하겠다"며 "저소득층의 실질 구매력 보완을 위해 4인 가구 기준 최대 100만 원의 한시 긴급생활지원금을 총 227만 가구에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첫 시정연설을 마무리하면서 "국회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민생 앞에서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온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고 짚었다.
윤 대통령 말마따나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설 때다.
소상공인에 대한 손실보상과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한 주요 사업들 예산이 포함된 이번 추경안이 이른 시일 내에 확정될지 주목된다.
단기적으로는 국회의 협조가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윤 대통령이 제시한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에 대한 마스터플랜과 실현 가능한 계획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