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고개’에서 시작해 ‘선유랑 체험마을’, ‘중남미문화원’, ‘고양향교’, ‘최영(崔瑩) 장군 묘’, ‘성령대군’ 사적지를 거쳐, ‘필리핀 참전비’에 이르는, 총 7.1km 코스다.
인적이 드물어 호젓하고 시원한 숲 길을 걸으며, ‘고려’ 말의 명장이자 충신 최영 장군, ‘조선’ 개국공신인 ‘이직’,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친동생 성령대군 등, 고려 말~조선 초 인물들을 비롯, 다양한 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
지하철 6호선 삼송역(三松驛) 8번 출구로 나와 30m 앞 버스 정류장에서 53번, 혹은 33번 버스를 타고, ‘안장고개(선유동 입구)’에서 내린다. 정류장 오른쪽에, 선유랑 마을 가는 길이 있다.
선유랑 마을은 ‘신선이 놀던 곳’이라는 뜻의 선유(仙遊)를 동네 이름으로 사용할 정도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마을이다. 수도권임을 믿기 힘들 정도로, 농촌 정취를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2009년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녹색농촌체험(綠色農村體驗) 마을’로 선정됐다.
녹색농촌체험 마을이란 친환경 농업, 자연경관, 전통문화 등 부존자원을 활용, 농업의 부가가치를 증진시키고, 농가소득 향상, 농촌지역 공동체 복원을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다.
마을 입구에, 고양동 누리길 안내판이 있다.
그 조금 안쪽 농장에 ‘늘 따뜻한 봄 마을’이라 새겨진, 큰 비석이 보인다. 마을을 오른쪽으로 끼고, 포장도로를 걷는다. 곳곳에서 마을 길과 숲속 산책로(散策路)가 교차하지만, 큰 길을 따라가야 한다. 차들이 드문 한적한 길로, 양쪽에 숲이 우거져있다.
길 왼쪽에 큰 무덤이 나타난다. 이직(李稷) 선생 묘다.
이직 선생 묘/사진=미디어펜
선유동 마을의 대표적 역사인물인 ‘문경공’ 이직은 고려 ‘공민왕’ 때 처음 벼슬길에 올라,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헌, ‘성산군’에 봉해지고,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의 편에 서서 ‘좌명공신’ 4등에 올랐으며, 세종 때 영의정(領議政)과 ‘좌의정’을 지냈다.
이 묘소 앞에, 선생의 대표작인 오로시(烏鷺詩) 시비가 있다.
“까마귀 검다 하여 백로야 웃지 마라/겉 검다고 속까지 검겠느냐/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유명한 시조다.
다시 길을 따라가면, 도로 왼쪽으로 고양 누리길이 이어진다.
고양향교(高陽鄕校) 방향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끝나고 흙 길이 시작되는 가 싶더니, 곧 산길이 시작된다.
길 오른쪽에, ‘선유동 전주이씨(全州李氏) 묘역’이 있다. 조선 ‘중종’의 후궁인 숙원(淑媛) ‘남양홍씨’의 묘를 비롯해 중종과 그녀의 아들인 해안군(海安君), 세종의 손자인 ‘귀성군 이준’의 묘 등이 모여 있다.
비석의 전통 조각과 문인석, 비문의 글씨가 뛰어나 조선 전기 왕족 및 사대부 묘역을 연구하는, 좋은 문화재 자료로 평가된다.
이 산길은 ‘성황당(城隍堂) 고개’라 불린다.
평범한 시골 고갯길로 보이지만, 옛날 ‘한양’과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이 지나던 연행로(燕行路)의 일부로, 많은 사람들이 다니던 옛 길이다, 고갯마루에 성황당 흔적으로 추정되는, 돌 무더기가 남아있다.
고개를 오가는 행인들이 소원 성취, 마을 평안, 국태민안(國泰民安) 등의 목적으로 돌 무더기를 쌓았고, 민간신앙의 일종인 성황당이 만들어졌다. 일설에는 이 돌들이 마을을 지키는 투석전(投石戰)에도 사용됐다고 전한다.
길 한쪽에는 SBS 드라마 ‘식사하셨어요?’ 촬영지였다는, 안내판도 서있다.
고갯길을 내려가 마을 골목을 지나면, 대로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 횡단보도를 건너 누리길이 이어진다.
벽제천(壁蹄川)을 건너고 ‘고양동 사거리’를 지나,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 앞길을 따라 올라간다. 고개를 따라가면, 왼쪽 산길로 이어진다.
나지막한 산을 넘어가 도로를 건너면, 동네 안쪽에 고양향교가 보인다.
향교 바로 옆에는 중남미문화원(中南美文化院)이 자리한다. 중남미문화원은 ‘마야’, ‘잉카’ 등 중남미 대륙 여러 나라들의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문화자료들이 전시돼 있는, 경기도(京畿道) 지정 제1호 테마 박물관이다. 그런데 입장료가 8000원, 너무 비싸다.
2011년 방영된 KBS 드라마 ‘드림하이’에서 ‘필숙’과 ‘제이유’가 첫 키스를 한 곳이기도 하다. 인근에 ‘고양동 공원’도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9호인 고양향교는 조선 숙종(肅宗) 때 건립됐다. 특이하게, 대성전(大成殿)이 길 바로 옆에 있다. 향교 옆 담장을 따라 누리길이 이어지고, 향교 뒤에는 내부를 내려다볼 수 있는 포토 존도 나타난다.
고양동 누리길은 여기서 조선시대 의주대로(義州大路)를 되살린, 또 다른 트래킹 코스인 ‘의주길’과 만난다.
다시 산길이 시작된다. 이제부턴 최영 장군 묘 방향 이정표를 따라간다. 송전탑 앞을 지나면, 이제 의주길과도 작별이다.
잠시 가파른 산길을 땀 흘리며 오른다. 대자산(大慈山)이다.
대자산은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과 고양동 경계에 있는, 해발 210m의 산이다. ‘대자’라는 산 이름은 성령대군이 어린 나이에 요절하자, 부친 태종(太宗)이 대자동에 ‘대자사’란 절을 짓고, 마을 이름을 대자라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대자산은 북쪽으로 ‘파주시’와 이어지고, 남으로 ‘통일로’ 변 ‘공릉천’에 닿는다. 산기슭에는 ‘경안군’, ‘임창군’ 묘도 있다. 숲 속 정상에는 앙증맞은 작은 정상석(頂相石) 돌기둥이 보인다.
최영 장군 묘 방향으로, 산길을 계속 따라간다. 소나무와 참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룬, 호젓한 산길이다. 송전탑 밑을 지나 계속 내려가니, 드디어 장군 묘가 보인다.
고려 충신 최영 장군 묘/사진=미디어펜
“황금(黃金)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부친 ‘최원직’의 가르침을 평생 실천한 장군은 청렴결백한 공직자의 상징이요, 충직하고 용맹한 장수의 전형이다.
한국사(韓國史)의 수많은 위인들 중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의 하나다.
친동생처럼 아끼던 이성계에게 배신을 당해 죽은 원한이 크다고 해서, 무속신앙(巫俗信仰)에서는 ‘임경업’ 장군과 함께 가장 영험한 신 중 하나로 꼽힌다. 억울하게 죽어, 무덤에는 풀도 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필자도 장군께 큰 절을 올렸다. 장군의 묘는 부친(父親)의 무덤 바로 밑에 있다.
그 아래로 누리길이 계속된다. 진입로도 울창한 숲 길이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고 새겨진, 큰 비석이 반겨준다. 숲 길이 끝나면, 주차장을 지나 콘크리트 포장 마을길이다.
삼거리 오른족 마을에 성령대군(誠寧大君) 묘와 사당이 있다.
성령대군 이종(李種)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넷째 아들로, 세종의 바로 밑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태도가 의젓하고 총명해 부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14살 어린 나이에 홍역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젠 대로를 따라, 필리핀 참전비(參戰碑)를 향해 간다. 이 길은 도로 양쪽에 단풍나무 가로수들이 길게 늘어서, ‘단풍나무길’로 불린다. 가을에는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통일로(統一路) 워터파크’ 앞을 지난다.
옛 원님들의 송덕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대자천(大慈川)을 건너니, 오른쪽에 필리핀 참전비가 우뚝 서 있다.
한국전쟁(韓國戰爭)이 발발하자,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7400여 명의 많은 병력을 파병, 우리나라의 자유와 세계 평화를 위해 피를 흘렸다.
참전비 옆에는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플래카드가 걸린 팔각정이 있고, 그 앞에는 ‘제24회 서울올림픽 기념비(記念碑)’도 보인다.
참전비 앞 도로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舊把撥驛)이나 ‘연신내역’으로 나갈 수 있는 버스들이 많다. 그 아래 ‘공릉천’에서 이어지는 고양누리길 중, ‘송강(松江) 누리길’ 코스를 걸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