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이 '항공산업발전조합' 출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토부는 가입 의무화 여부에 대해 자유 의사를 존중한다는 입장이지만 항공사들을 포함한 업계는 국토부가 사실상 관제 단체 출자와 가입을 압박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31일 항공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항공산업발전조합 조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다음달 19일부터 개정 항공사업법이 전면 시행됨에 따라 국토부는 이달 말 항공산업발전조합 실무를 맡을 '발기인 협의체'를 만들어 운영에 들어갈 계획을 잡고 있다. 또한 조합 임직원 22명을 채용해 2개팀으로 나눠 연말 중 설립 등기와 개소식을 마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항공 관련 법정 단체는 한국항공협회와 더불어 2개로 늘어나게 된다.
인천국제공항에 여객기들이 주기돼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내 항공업계는 경제 위기나 감염병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위기를 넘겨왔지만 이들을 체계적으로 지원·육성을 위한 금융 시스템은 미흡하다는 게 국토부 판단이다. 이에 따라 해운조합이나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사례를 참조했고,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유사 시 항공업계 금융 지원을 위한 기구를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것이 국토부 측 설명이다.
국토부 항공정책과 관계자는 "항공산업발전조합원 모집은 항공사·공항공사·지상조업사 등 업계를 대상으로 한다"며 "정족수 기준이 있는데, 20개 이상 업체가 동의해야 조직이 만들어지며, 가입은 각 회사별 자유 의사에 맡긴다"고 했다.
이 같은 국토부 입장에 각 회사들은 항공산업발전조합 설립에 적극 찬성한다면서도 다소 황당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토부가 수시로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내 가입을 압박해왔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들은 항공조합 가입을 거부할 경우 국토부가 운수권과 슬롯 배분 권한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A 항공사 관계자는 "2020년 6월 국토부가 항공조합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부터 모든 항공사들을 대상으로 가입하라고 해왔다"며 "말이 좋아 자율이지, 준 강제 사항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B 항공사 관계자 역시 "모두 동참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완전히 가입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지만 조합 참여 준비 단계"라고 설명했다.
C 항공사 관계자는 "국토부는 공익 추구 차원에서 좋은 제도라고 홍보하고 발족하지만 항공업계는 부담스러울 따름"이라며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돈을 낸 만큼 혜택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실효성에도 의문이 든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국토부는 당초 1조원 규모로 조합 재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지만 현재는 "연말 창립 총회를 통해 결정될 사안인 만큼 정해지지 않았다"며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합원이 된 경우 매출액 대비 일정 부분을 기본 출자금으로 납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보증·융자 등의 지원 확대 등이 필요한 경우 추가 임의 출자금을 납부하는 안도 존재한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국토부 항공정책과 관계자는 "수많은 안이 검토되고 있는데, 그 중 일부"라며 시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이 현실화 되면 영업 적자가 나도 조합원으로서 분담금을 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는 문제점이 생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LCC들은 지속적인 자본 잠식과 당기 순손실 등 경영 상황 악화로 현 시점에서 이사회가 항공산업발전조합 출자를 결정하면 업무상의 배임 등의 혐의로 주주들이 고소고발을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황호원 한국항공대학교 항공물류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창궐 이전 수준으로 항공 수요가 회복되려거든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유가·환율·금리 등 여러 대외 변수벌 리스크까지 더해질 것이 분명해 업계가 국토부 방안을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비판했다.
시행령 개정안에는 보증 한도를 30배까지 한다는 내용이 국토부 장관 고시로 돼있다. 다시 말해 조합원들이 1조원을 모으면 이론상 30조원 수준까지 항공산업발전조합이 보증한다는 이야기다.
국토부는 항공사가 리스사로부터 항공기를 임차해올 경우, 항공조합의 보증을 통해 좀 더 싼 값에 리스 비용을 낼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개별 기업이 구매해 온 시설·장비·부품 등을 조합이 투자 후 임대하거나, 공동 구매해 기업 비용 부담을 덜어준다는 입장이다.
한국공항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 로고./사진=각 사 제공
국토부 관계자는 "조합원으로 들어올 회사들의 신용도가 제각각"이라며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로 하여금 출자토록 하면 항공산업발전조합이 시중 은행들로부터 공공기관에 준하는 신용도를 갖게될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양대 공항공사를 이 컨소시엄에 참여시키면 항공산업발전조합이 대한민국 정부 수준의 신용도를 지니게 된다는 소리다. 업계는 양대 공항공사가 올해부터 2024년까지 연간 500억원씩 1500억원, 공항시설사용료·여객공항이용료 등 추가 재원까지 합치면 2031년까지 총 3900억원을 조합에 내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황 교수는 "조합의 주요 추진 사업인 보증⋅융자는 조합의 낮은 신용도 탓에 항공기 리스 비용 절감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호황일 때 적립한 출자금을 활용해 진행 예정인 긴급 자금 융자라 해도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나종엽 한국공항공사 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우리 회사는 적자 상태를 계속 이어가고 있어 투자 여력이 없는 형편"이라며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는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 부문의 지출 확대를 반대하는데 국토부가 구태여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항공산업발전조합 운영위원회는 최소 11인부터 최대 15인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 중 국토부 장관이 추천하는 인사는 5~7명 수준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국토부는 조합에 전혀 출자를 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 김용석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지난 3일 국립항공박물관에서 "정부 소유 지분 100%인 공항공사들이 내기 때문에 우리가 내지 않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황 교수는 "정부 재정 투입은 하지 않고 간섭만 하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라며 "‘자율’이나 ‘민주적 운영’이라는 조합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채 관제 조합을 설립하려 들면 예상 못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공청회를 열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며 "항공협회를 통해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데, 불요불급한 이런 조직을 새로 만들 바에는 항공청을 신설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