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대외 주요 요직에서 모두 물러나기로 해 파장이 예상된다.
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교법인 중앙대의 대학 구조조정과 관련, 최근 이메일을 통해 적절치 못한 발언을 한 것에 책임을 지고 이사장직은 물론 회장과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 모든 직책에서 사퇴키로 결정한 것이다.
21일 박용성 회장은 입장발표문을 통해 “이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대학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이 과정에서 논란과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학내 구성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박용성 회장은 학과제 폐지 등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중앙대 비상대책위원회 교수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비대위는 중앙대 교수협의회 전직 및 현직 회장들과 교수평의원회 전직 의장들로 구성돼 있으며, 학사구조 개편안 반대를 주도해왔다.
▲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
얼마 전 박용성 회장이 이용구 총장과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목을 쳐주겠다’는 적절치 못한 내용이 담긴 사실이 알려졌으며, 논란이 증폭되자 사퇴를 결심한 것이다.
박용성 회장은 이 메일에서 법인의 중요 사안을 처리하는 인사권자로서 행사할 것임을 밝히며 “비대위 교수들이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대다수 중앙대 교수들이 학사구조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들과 함께 학내 집회를 강행한 것에 대해, 박용성 회장이 이메일을 통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용성 회장은 또 학사구조 개편에 대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학생 명의로 된 현수막을 게시하라는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대는 빠른 시일 안으로 이사회를 소집해 박용성 이사장의 사임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다.
박용성 회장의 이번 사퇴와 관련해 두산중공업과 두산그룹 측은 “중앙대에서 발표한 내용인 것으로만 알고 있다”며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이번 사퇴의 배경을 두고 박용성 회장이 과거 정부와 유착 의혹을 포착한 검찰 수사를 우려한 대비 행동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용성 회장은 지난 2011년 5월 2일 중앙대를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학 인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중앙대 본·분교 통합 승인 등을 요청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대와 적십자간호대의 합병 과정에서 중앙대 이사장인 박용성 회장에게 합병 실무가 모두 위임된 사실이 검차 조사결과 확인된 것이다.
검찰은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특혜를 준 정황이 포착된 만큼, 지난 2011년 4월28일 중앙대 이사장실에서 열린 이사회 회의록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태희 전 상임이사(전 ㈜두산 사장)를 참고인 자격으로 최근 소환했다.
검찰은 이태희 전 사장 등을 상대로 중앙대 본교·안성캠퍼스 통합 및 적십자간호대 합병 안건 처리 과정 전반을 조사할 계획이며, 조사 결과가 불충분할 경우 안국신 당시 총장과 박용성 회장을 직접 소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박범훈 전 수석이 교육부에 외압을 넣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중앙대, 두산그룹의 유착 의혹도 살펴보고 있다.
▲ 지난 2008년 경기도 용인 명지대체육관에서 열린 제45회 전국대학농구연맹전 2차대회 명지대와 중앙대의 경기에서 65대52로 승리, 우승을 차지한 중앙대 선수들이 박용성 이사장을 헹가래하고 있다. |
한편 일각에서는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인으로서 과거 정부와 정치권을 대상으로 직언을 아끼지 않은 박용성 회장의 이번 사퇴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박용성 회장은 과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재직시절에도 정부와 정치권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경제계의 입장을 어필해온 입지적인 인물이란 평가다. ‘
박용성 회장은 과거 정부를 향해 ‘정부는 사냥개며 강남아줌마는 토끼다’, ‘계획만 있고 실천이 없는 한국은 NAPO(No Action Plan Only) 공화국’ 등의 신랄한 비판으로 사회적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또 대한상의 회장직 재직 시절에는 강성 노조의 부당한 요구를 비판했던 ‘떼쓰기법론’과 국내기업의 경영철학을 꼬집었던 ‘들쥐론’ 등은 기업인들의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대학교육 선진화와 관련해서도 매우 인상적이라는 평가도 상당수다. 지난 2008년 6월 중앙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용성 회장은 중앙대를 이름만 빼고는 다 바꿀 것이라고 선언해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후 대학입시에서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 등 3가지를 금지하는 이른바 ‘3불 정책’ 폐지를 주장해 교육계 혁신을 주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도 대표적이다. [미디어펜=김세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