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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운임제 폐지·최저 임금 차등화 실패…노동 개혁은?

2022-06-17 13:29 | 박규빈 기자 | pkb2162@mediapen.com
[미디어펜=박규빈 기자]정부가 화물연대의 불법 파업에 엄정 대응 기조를 보이다 안전 운임제 유지·확대 방침을 밝혔다. 업종별 최저 임금 차등 적용을 실현하겠다던 계획도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에 따라 신생 윤석열 정부가 노동계에 초장부터 끌려다니게 돼 노동 시장 개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지난 15일 업무에 복귀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파업 시작 1주일 만이다. 이들이 현업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은 국토교통부가 안전 운임제 유지와 적용 업종 확대를 약속해줬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산하 화물연대본부원들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안전 운임제 유지와 확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화물연대본부 제공


불법 행위 엄단하겠다던 정부, 꼬리 내렸다

2018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과 동시에 3년 간 한시적으로 도입된 안전 운임제는 일몰제에 따라 올해 말 폐지될 예정이었다. 이 법의 도입 취지는 화물차 기사들에게 적정 임금을 보장함으로써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한다는 데에 있었다. 이는 레미콘·시멘트·컨테이너 등 일부 산업 운송 차량 운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제도였으나 국토부가 한발 물러섬에 따라 노동계 의사가 관철된 셈이다.

국토부는 이에 더해 유가 상승에 따른 대책도 마련해주기로 했다. 화물차주들의 유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유가 보조금을 늘려주고, 운송료 합리화 등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건비 등이 늘어 운송 원가가 높아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화주들은 제도 자체에 강제성이 있어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가 시행된 이래 운전자 운임이 큰 폭으로 뛰어올라 물류비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은 "사용자나 근로자나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 모두 다 선거 운동 할 때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계속 밝혔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10일에는 화물 연대 파업은 노사 간 문제라며 대응 수위를 낮췄고, 지난 13일에는 파업에 대해 다각도로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물연대에 대해 유화적인 모습을 모인 셈이다.

국토부는 화물연대의 파업 행위가 불법인 만큼 업무 개시 명령에 불응할 경우 화물 운송 종사 자격을 취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경찰 역시 물류 운송을 방해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관련 법에 따라 현장 검거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주동자에 대해서는 특히 끝까지 추적해 사법 처리하고, 차량을 이용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법령에 따라 운전 면허 정지 또는 취소 처분까지 내리겠다고 한 바 있다.

이 같이 강경 대응을 시사했는데 관계 당국들이 대통령 발언에 맞춰 큰 폭으로 물러선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시장 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안전 운임제 지속 추진은 기업들의 국내 생산을 축소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 개혁 의지는 어디로

최저 임금제 문제에서 역시 정부는 노동계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지난 16일 모두발언을 통해 "지금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는 소상공인들이 모여 지불 능력을 반영한 최저 임금 결정과 업종별 구분 적용의 필요성에 대해 절규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류 전무는 "올해는 반드시 한계 상황에 도달한 업종에 대해 최저 임금을 구분 적용하고, 최저 임금 수준도 안정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16일 취임 후 첫 국회 시정 연설에서 "지금 노동 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때문에 고강도 노동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17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개최된 제2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 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 위원인 이동호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편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열어 지난 16일 23시 30분 경 제4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 임금에 대해 업종별 차등 적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저 임금의 사업의 종류별 구분 여부에 대해 재적 위원 27명 전원 표결에 부친 결과 반대 16명, 찬성 11명으로 집계돼서다.

현행 최저 임금법 제2장 4조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 생산성·소득 분배율 등을 고려해 최저 임금을 정하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할 수 있도록 한 임의 사항으로 남아있다. 최저 임금은 1988년 시행 첫 해에만 업종별 구분이 이뤄졌을 뿐이고, 1989년부터 지금까지 전 산업군에 같은 금액을 주도록 돼있다.

경총은 업종 불문 동일 최저 임금 지급 방침에 우려와 유감을 표했다.

경총은 "최저임금위원회가 또 다시 단일 최저 임금제를 결정해 중소‧영세 기업과 소상공인의 절박한 현실과 바람을 외면했다"며 "국내 최저 임금은 시장의 수용 능력에 대한 고려없이 지나치게 빠르게 인상되고 일률적으로 적용돼 일부 업종은 현 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읍소했다.

이처럼 정권 초기 노동 정책 집행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어 윤석열 정부가 노동계에 끌려다닌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국정 운영 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화물연대에 대한 법 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말함에 따라 불법적 단체 행동이 빈번히 발생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전 교수는 "전 업종에 대해 같은 최저 임금 체계를 유지하게 되면 고용 시장의 경직화를 불러와 젊은 취업 준비생들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며 "고용 한파가 불어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화물연대와의 줄다리기에서 윤석열 정부는 완전히 말려들어갔고, 노동 개혁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황 교수는 "14년 전 이명박 정부 초창기 광우병 사태로 빚어진 결과를 의식했겠지만 국정 철학이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절대로 물러나선 안 될 일이었다"고 꼬집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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