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나광호 기자]"탄소중립을 도약의 기회로 생각했던 기업들이 부담과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9일 서울 세종대로 상의회관에서 열린 '제2회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정책 세미나'에서 "에너지전환 속도를 내는 것 만큼 합리적 솔루션 및 효율적 경로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최 회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값이 급변하고, 공급 차질도 이어지고 있다"며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지는 시점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전력산업·에너지산업 구조 변화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는 등 장기적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29일 서울 세종대로 상의회관에서 열린 '제2회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정책 세미나'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방법에는 크게 전기화·무탄소 발전원 사용·에너지효율 향상 등 3가지가 있다"면서 "최종에너지 소비의 화석연료 의존도가 81%에 달하는 우리나라에게 탄소중립은 어려운 목표"라고 설명했다.
특히 "주요국들은 연평균 1~2% 수준의 탄소 감축을 유지하면 가능하지만, 우리는 2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1990~2020년 전력원단위 개선률이 -37%로 나타나는 등 에너지효율화도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질서 있는 에너지전환'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철강·석유화학·정유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시설이 많은 대한민국 경제구조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점진적 확대 △원전 적정 비중 유지 △액화천연가스(LNG) 및 석탄발전 유지 △소형모듈원자로(SMR)과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및 수소 등 기술개발의 국제 공조 등을 꼽았다.
그는 "한국은 전세계에서 이산화탄소(CO2)를 8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국가지만, 비중으로 보면 2% 정도"라며 "제조업 비중이 27.8%으로 미국(11.0%)과 유럽연합(EU·16.4%) 보다 높다는 점 등을 근거로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29일 서울 세종대로 상의회관에서 열린 '제2회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정책 세미나'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에서 5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이어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30%로 높이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기상상황에 따라 최대 64기가와트(GW)의 변동성을 감당해야 한다"면서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막히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다시 석탄화력발전소를 찾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시장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구조 확립'을 비롯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도 언급했다. 가격 인상을 억제한 결과 국내 주택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59%(37개국 중 36위), 산업용은 87%(22위)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한 "미래 에너지믹스는 원전과 화력발전+CCS 및 재생에너지+ESS(에너지저장장치) 등으로 구성될 것"이라며 "차세대 기술이 완성 단계에 이를 때까지 현재의 구조를 급격히 허물지 않으면서 속도를 조절하면 다른 국가에 비해 손해 보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최근 전례없는 글로벌 화석연료 및 재생에너지 공급비용 상승이 이뤄졌다"면서 "한국전력공사가 올해 최대 30조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원가 및 시장 연계형 요금제도 도입 등으로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거버넌스를 개선하고,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제도를 촉진하는 등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왼쪽부터)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장·주병기 서울대 교수·박호정 고려대 교수·조성봉 숭실대 교수·박종배 건국대 교수가 29일 서울 세종대로 상의회관에서 열린 '제2회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정책 세미나'에서 토론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박 교수는 "해외의 경우 소매시장은 원칙적으로 시장가격을 적용하고, 산업용 소비자 세액공제 및 저소득층 재정 지원 등을 통해 충격을 완화한다"며 "도매시장도 제한적 상한가격을 비롯한 제도가 있지만,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방침"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소매경쟁이 도입된 국가에서는 소비자가 판매·발전사업자를 선택할 수 있고, 연료원·거래 가격 등에 대한 다양성도 확보할 수 있다"면서 "한국의 도·소매 전력시장 구조와 가격 수준으로는 세대간 요금지불에 대한 문제 뿐 아니라 에너지 신산업 육성 저해 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장도 "지금처럼 모든 발전원이 단일시장에서 단일가격으로 거래되는 구조는 연료비 등 가격 변동리스크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강 과장은 "전원별 특성을 고려해 전력시장을 다원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가격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이 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발언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박호정 고려대 교수·주병기 서울대 교수·조성봉 숭실대 교수 등이 참석했으며, 손양훈 인천대 교수·정범진 경희대 교수·이준신 성균관대 교수·김진 산업부 에너지전환정책과장·조홍종 단국대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합리적 에너지믹스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