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전세계 정유업계가 호실적을 내고 있는 가운데 각국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과도한 이익을 쓸어담는다"며 각종 세금 부과 등 제동을 걸 채비에 나섰다. 이에 업계에 세 부담을 지게 하는 건 시장 이해 부족에 의한 것이며, 공급량 축소로 인해 되레 유가 상승에 부채질을 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유류세 추가 인하 정책의 실효성 제고 등을 위해 4대 정유사와 전국 1만여 개 주유소를 대상으로 시장 점검에 나섰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석유 기업 엑손 모빌의 올해 2분기 순이익은 178억5000만 달러(한화 약 23조3245억9500만 원)로, 창사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시장 컨센서스인 169억 달러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셰브론 또한 2분기 순이익이 116억 달러(한화 약 15조1565억6000만 원)로, 시장 전망치인 99억 달러를 웃돌았다. 비단 미국 석유 회사들만 실적 잔치를 벌이는 것만은 아니다. 영국 셸과 프랑스 토탈 에너지는 2분기에 각각 115억 달러, 98억 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이 중 국제 유가 상승세에 힘 입은 엑손·셰브론은 정유 사업을 통해 가공한 석유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가 흑자 기조를 유지하자 세계 각국은 해당 기업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석유 회사들이)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며 "엑손의 순이익을 낱낱이 알 수 있게 하겠다"고 공개 저격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올해 상반기 SK이노베이션(2조9491억 원)·GS칼텍스(1조9612억 원)·현대오일뱅크(1조4445억 원)·에쓰오일(3조540억 원) 등 4대 정유사들의 영업이익 총계는 9조4088억 원에 달한다.
최근 시중에 유통되는 기름의 가격은 유류세 인하와 국제 시세 하락으로 안정세를 찾고 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담합이 의심된다며 감시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어 관계 당국은 '횡재세'라고 불리는 초과 이윤세를 물릴 태세다. 4대 정유사들과 전국 1만여 개소 직영·자영 주유소들이 소비자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는 석유의 유통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 생겨난 오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국내에서 석유는 산유국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제 과정을 거쳐 판매가 이뤄진다. 현행법상 유류세는 석유가 제조장에서 나갈 때 매겨진다. 정유 공장을 떠난 휘발유·경유가 저유소를 지나 전국 유통처인 주유소로 도달하기까지는 10일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정유사들이 선물 거래를 통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도달하기 까지 30~40일 전에 구입하는데, 제품 판매 가격 자체는 국제 평균가와 비슷하게 맞춰진다.
소비자들은 국제 유가 인상 시 정유사들이 이를 판가에 적극 반영하고, 인하 시에는 소극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사들인 유류가 우선 빠르게 소진되고, 고가에 들여온 제품이 뒤이어 시중에 풀리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 주유하게 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유가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주장도 내놓지만 국가별 세제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정부가 자동차 연료에 매기는 세금은 교통 에너지 환경세·개별 소비세·교육세·주행세 등이 있다.
국내 정유사들의 영업 이익률은 통상 2~4% 수준이고, 2년 전에는 산유국들 간 감산 정책 이견과 코로나19발 수요 급갑으로 5조원 넘는 영업 적자를 보기도 했다. 정유사들의 수익은 '정제 마진'에 달려있으나, 이는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는 추세다. 정제 마진은 지난달 마지막 주에 29.5달러였으나 이번주에는 3.6달러까지 떨어졌고, 이에 따라 정유사들이 재차 적자의 늪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 하락이 이어지고 있으며, 오는 3분기부터 유가 하락기가 찾아오면 재고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공급하게 될 전망이다.
당국은 국내 정유업계의 고수익에 초점을 맞춰 세금을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시장 내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친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정유업계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할 당시 수입 부과금 면제·관세 인하 요구는 외면했던 만큼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반 소비자들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세금을 부과받으면 업계는 이를 피하고자 공급량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다시 유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예상된다. 유럽 당국도 초과 이익에 대한 세금은 원유 시추·생산 기업에 물리는데, 정유업계에 대한 조치는 부당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카르텔은 시장 경제를 혼탁하게 만드는 만큼 경쟁 당국의 엄단이 필요하지만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단순히 정유업계가 수익을 많이 낸다고 해서 폭리 집단으로 매도해 세금을 물리는 건 조세 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 자체로 시장 개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교수는 "정유업계가 적자를 보면 감세나 영업이익 보전을 해줄 것도 아니면서 채찍만 휘두르는 건 시장 논리에 위배된다"며 "'횡재세' 적용이라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