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ESG(환경·사회·지배 구조) 관련 규제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가운데, 글로벌 항공업계에서는 지속 가능한 항공 연료(SAF, Sustainable Aviation Fuel) 사용이 제도화 되고 있다. 항공사들에 연료를 판매하는 정유업계도 이 같은 바람을 타고 관련 사업에 뛰어들어 ESG 대열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지난해 미국 보스턴에서 개최된 제77차 연차 총회(AGM)에서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전 세계 항공 운송 산업 결의안을 승인했다. 이는 항공업계 탄소 배출량 65%를 SAF를 통해 감축함을 골자로 한다.
IATA는 앞서 2017년 6월에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73회 AGM에서 회원국 간 생태 균형을 보존하고, 천연 자원 고갈 방지 연료만 사용하기로 함을 포함해 SAF 배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는 승객 한 명이 1km를 이동할 때마다 버스 105g, 중형차(디젤) 171g, 비행기(단거리)는 255g 수준의 탄소 발자국을 남긴다고 발표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유럽 연합(EU)은 SAF 의무 혼합 비율을 2025년 2%로 시작, 2030년 27%, 2050년 63%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SAF 보급에 대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에어프랑스 여객기에 프랑스 화학 기업 토탈 급유 차량이 SAF를 주유하고 있다./사진=에어프랑스 제공
올해 4월 기준 50개 이상 항공사들이 SAF를 채용해 기존 연료 대신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에어프랑스는 2030년까지 자사 모든 항공편의 SAF 혼합 비중을 10% 수준으로, 2030년에는 63%로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 내 항공유 공급사들을 대상으로 SAF를 최소 1% 혼합 공급토록 법제화했다. 대한항공도 올해 2월 파리발 인천행 노선에 국내 항공업계 최초로 SAF를 도입하기로 했다.
SAF는 석유·석탄 등 기존의 화석 자원이 아닌 동물성·식물성 기름과 해조류, 도시 폐기물 가스 등 친환경 원료로 만들어진 항공유로, 원료 수급부터 소비 등 전 단계에서의 탄소 배출량을 기존 대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SAF가 연소 시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기존 등유 기반 항공유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편 SAF는 사탕수수나 옥수수 등 원료가 생장함에 따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탄소 발생량을 줄인다는 게 IATA의 설명이다.
하지만 항공사들은 SAF 도입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화석 자원을 기반으로 한 기존 항공유 대비 2~5배 가량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국제 유가는 2배에 달하는 폭등을 거듭했고, 그 결과 SAF와 기존 항공유 간 가격 차이가 30% 수준까지 좁혀졌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낮은 1.5도 아래로 제한하려면 온실 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43%, 2050년까지는 84%를 줄여야 한다는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IATA는 각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면 SAF가 기존 화석 기반 항공유와 가격 경쟁력을 갖춰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정부 당국이 지속 가능한 항공 연료 연구·개발(R&D)과 실증 플랜트를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SAF는 정유업계가 제조를 담당하는 만큼 정부 당국이 생산 공장에 대한 투자 위험을 줄이고 생산과 공급을 위한 민관 파트너십에 참여하는 정책을 구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6월 30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강달호 현대오일뱅크 사장 등 양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현대오일뱅크와 '바이오 항공유 제조·사용 기반 조성 협력을 위한 양해 각서(MOU)'를 체결했다./사진=대한항공 제공
현재 국내 정유 4사 중에는 SAF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기업은 없고, 이제 R&D를 시작한 걸음마 단계에 있다.
국내 정유업계에서 SAF 사업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건 현대오일뱅크다. 대한항공과는 △국내 바이오 항공유 제조·사용기반 조성 △국내 바이오 항공유 사용을 위한 시장 조사·R&D △바이오 항공유 인식 제고·관련 정책 건의 등에서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대한항공과의 협력 이외에도 현대오일뱅크는 2024년 중 충남 대산에 '화이트 바이오' 연료 공장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화이트 바이오 연료 역시 SAF에 속하나, 농업 자원에서 추출해 산림 파괴와 국제 곡물 가격 인상 논란을 일으키는 기존 제품 대비 더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버려지는 폐유 등에서 추출하는 게 친환경적인 것이라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CLX/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은 글로벌 친환경 석유 제품 트레이딩 회사로의 진화를 도모하고 있다. SKTI는 미국 옥시덴탈로부터 2025년부터 5년 간 매년 20만 배럴 규모의 넷 제로 원유를 도입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항공유 기준 20만 배럴은 서울에서 제주도 간 왕복 약 9000회 비행이 가능한 규모다.
SK이노베이션은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 모델을 개발, 실행하고 있다. 특히 SKTI는 SK에너지와 함께 '카본 투 그린' 전략 하에 바이오 연료 생산 등 친환경 사업 확장을 통한 스코프 3 배출량 감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SKTI는 넷제로 원유를 정제해 친환경 항공유를 비롯한 다양한 넷 제로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서석원 SKTI 사장 겸 SK에너지 R&S CIC 대표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환경 변화 속에 넷제로 원유와 이를 통해 생산되는 제품의 비즈니스 생태계 구축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기후 변화 대응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