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올해 글로벌 판매 3위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됐던 현대자동차그룹에 큰 변수가 발생했다.
글로벌 정세가 불안해졌고, 예상보다 더디게 회복되는 반도체 업체들의 부품공급으로 판매량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며 가격경쟁력에 타격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25일 관련업계와 재계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지난 23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정의선 회장은 미국 워싱턴 D.C. 등에서 약 일주일 간 머물며 미국 정관계 인사 등을 만나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현안을 논의할 것을 보인다. 국내외 대관업무를 총괄하는 공영운 현대차 사장도 미국 출장길로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지난 2022CES에서 로보틱스 비전 발표를 위해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위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그룹은 최근 바이든 행정부의 IRA 시행으로 미국내 전기차 판매 차질이 우려되자 내년 상반기로 계획했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 착공을 최대한 앞당기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IRA로 인해 현대차그룹의 북미 경영전략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 법은 미국 정부가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모두를 전량 한국에서 생산 중이다. 이에 미국에서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친환경차 보조금 지원대상에 한 대도 포함되지 못했다.
이는 현대차그룹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완성차들에 비해 약 1000만 원 가량 저렴한 현대차그룹의 제품들이 세제해택을 받지 못하며 경우에 따라 가격이 역전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차 가격 인상으로 인해 판매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량이 최근 현대차그룹의 중요 수입원이었기 때문에 이번 법 시행으로 인한 타격이 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의 전기차 판매 점유율은 테슬라(70%)에 이어 2위(9%)를 기록하고 있는데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 2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50억(6조6975억원) 달러의 추가 투자를 약속하는 등 100억(13조3950억원)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추진키로 했지만 IRA로 인해 테슬라, GM 등과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됐다.
현대차는 손실을 줄이기 위한 대응책으로 조지아주에 설립키로 한 전기차 전용공장의 착공 시점을 앞당기기로 했다.
당초 내년 상반기 착공 예정이었지만 올해 안에 착공해 완공 시점을 2025년에서 2024년 하반기로 당긴다는 계획이다.
정의선 회장은 이런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직접 검토하고 상황을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시장에서만 문제가 발생했다면 전체 판매라인에는 큰 피해가 없었겠지만 글로벌 정세문제로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말 9개 권역본부 체제에서 5대 대권역(유라시아·미주·중국·인도아중동·한국아태) 체제로 글로벌 전략을 수정했다. '글로벌 톱 3' 메이커로 도약하기 위해 현지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미래사업 대응력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방한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면담을 마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하지만 1년도 채 안된 사이에 5대 대권역 중 3개 대권역에서 돌발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라시아 대권역 중 러시아에 대한 수출입 금지 조치 등의 변수가 발생했고, 현지공장도 가동이 중단 된 상태다. 중국사업을 총괄하는 HMGC(현대차그룹 중국지주사) 권역에서는 여전히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들고 나오면서 미주대권역 내 북미사업장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위기 타개를 위한 글로벌 전략 수정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판매량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정도로 큰 변수들이 발생한 만큼, 위기대응을 위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이같은 문제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장의 경쟁이 과열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시장중 현대차그룹의 신흥시장인 인도네시아지역과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는 유럽시장이 현재로는 유일하게 기대를 걸 수 있는 상태다. 이에 일본을 비롯한 중국 등에서도 현지투자를 늘리는 등의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의선 회장이 직접 나서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그동안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직접 현장을 방문해 난제를 해결해 왔다. 미래사업 중요에너지로 꼽히는 수소동맹에서도 그의 행보는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극심했던 지난해에도 정 회장의 글로벌 활동을 막지 못했다.
지난해 정의선 회장은 해외출장이 어려운 상황에도 미국을 수차례 방문하고 투자계획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이어왔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과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견고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현지 중요업체를 인수하거나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다니는 등의 행보도 보였다. 이를 기반으로 정의선 회장이 이끌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 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이 보여온 미국시장에 대한 노력과 투자가 있고 현재 판매 중인 차량이 전량 친환경 차가 아닌 만큼 돌파구는 있을 수 있다"며 "이를 점검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했고 그동안의 성과가 있었던 만큼 결과를 비관하기엔 이르다"라고 전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