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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SID "정부, 론스타에 2800억 배상하라"…외환은행 매각논란 종결

2022-08-31 16:01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정부와 벨기에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옛 외환은행 인수·매각 과정에서 분쟁을 이어온 가운데, 사건을 조정하던 국제기구가 우리 정부에게 론스타를 상대로 280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기존 론스타의 청구액 6조 1000억원 중 4.6%만 인정한 셈인데, 분쟁 후 10년 만이다. 사실상 론스타의 주장을 국제기구가 상당 부분 기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옛 외환은행 본점에 비친 하나금융그룹 본사/사진=연합뉴스 제공



31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이날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가 우리 정부에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인 2억 1650만달러(한화 약 2800억원)를 지급할 것을 판정했다고 밝혔다. 또 2011년 12월 3일부터 이를 모두 지급하는 날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에 따른 이자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자액은 약 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우리 정부가 배상해야 할 액수는 최근 원/달러 환율 인상 여파로 추정치보다 꽤 늘어날 전망이다. 이날 오전 환율이 1352원까지 올랐던 점에서 환율을 1350원으로 가정하면 배상액은 약 2925억원으로 추산된다. 

론스타는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을 1조 3834억원에 인수해 2006년 1월 이를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이듬해 HSBC가 나서서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는데, HSBC는 2008년 9월 관련 매매계약을 파기했다. 매각 협상 과정에서 금융위원회가 규정된 심사기간 내 승인여부를 결정해야 했는데, 이를 지연하면서 매각이 사실상 무산됐다. 론스타는 대(對) HSBC 매각 무산을 두고 '한국-벨기에 양자간 투자보장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2010년 4월 론스타가 외환은행 재매각에 나섰고, 같은 해 11월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의 지분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국은 2012년 1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고, 하나금융은 3조 9157억원에 론스타 지분을 인수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했을 당시에 견주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하지만 론스타는 정부가 매각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46억 7950만달러(약 6조 1000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SDS)를 통해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당국이 승인을 지연하고, 매각가를 인하하도록 부당하게 압력했다는 논리다. ISDS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법령이나 정책 등으로 피해를 봤을 때 ICSID의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더불어 론스타는 국세청이 면세 혜택을 부당하게 거부하고, 자의적 기준을 적용해 세금을 매겼다고 주장했다. 또 승소시 대한민국과 벨기에 정부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 금액까지 손해배상금에 포함했다. 

우리 정부는 론스타 측의 주장을 모두 반박했다. 정부는 당시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 등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며, 매각 심시기간 연기는 정당했다고 밝혔다. 특히 매각가 인하는 형사사건 유죄 판결로 외환은행 주가가 하락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과세에 대해서도 론스타가 면세혜택을 누리기 위해 설립된 사실상 '실체가 없는 회사'라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과세하지 않았고, 개별 과세마다 구체적 사실관계만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또 2011년 투자보장협정 발효 이전 구체화한 분쟁은 중재 대상이 아니고, 발생하지도 않은 세금을 손해액에 합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중재를 맡아 왔던 ICSID는 지난 2013년 5월 사건을 심리할 중재 판정부를 구성하고 심리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의장 중재인 사임 등의 이유로 판정을 지연하다 지난 6월 최종적으로 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론스타는 지난해 11월 ISDS 철회를 조건으로 협상액 8억 7000만달러(약 1조 1310억원)를 제시했지만, 정부는 공식 협상안으로 보기 어렵다며 응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에서 론스타 요구액의 4.6%만을 인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ICSID가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인 한편, 론스타의 주장을 꽤 기각한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일부 인정이 된 부분이 있고 대부분 인정이 안 된 부분이 있어, 준비해온 대로 필요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10년 동안 진행된 1차적 결과물이 나온 것으로 국익에 맞춰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노조는 이번 판정을 두고 비판하는 입장을 내놨다. 노조는 논평을 통해 "대주주 적격성을 갖추지 못한, 주가조작 범죄까지 저지른 론스타에 국민의 재산이나 다름없는 외환은행을 넘기는 결정을 한 관료들과 수사·감사 과정에서 이를 확인하고도 눈감아준 검찰, 감독당국 책임자들로 인해 10년 뒤 추가적인 국민의 혈세 2925억원이 지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투기자본이 법망을 피하고 범죄를 저질러 돈을 벌고, 고배당과 매매차익을 얻고 국제소송으로 배상금까지 챙기는 사이 죄 없는 노동자들은 일터를 잃었고 고객과 소액주주는 피해를 입었다"며 "금융노조는 시민단체와 함께 론스타 책임자 처벌과 진실 규명, 그리고 금융자본의 횡포를 막고 금융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서 벌여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05년 당시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관여한 경제관료 등 20여명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이듬해 검찰은 수사 끝에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구속 기소하는 한편,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변 전 국장과 이 전 행장은 2010년 최종 무죄 확정을 받았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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