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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공공기관 구조조정, 산은 부산 가라", 신경 곤두선 국책은행

2022-09-03 10:41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공공기관 혁신안을 마련 중인 기획재정부가 산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고강도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기재부 산하 직속기관인 국책은행들이 정부 방침에 따라 보고서를 상부에 제출한 가운데, 내부 조직·인력·복지 등을 구조조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기재부의 직속 관리기관인 한국수출입은행은 구조조정 내용이 가시화되고 있어 내부 불만이 커지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은 최근 기재부의 공공기관 혁신안에 따라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 혁신안은 "민간과 경합하거나 유사·중복되는 업무를 전환해 조직과 인력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공기관 수가 지난 2016년 321개에서 올해 350개로 늘어났고, 인력도 11만 6000명 늘어난 44만 3000명에 달하는 까닭이다. 실제 이 기간 공공기관 부채는 84조원 증가한 583조원까지 불어났다. 국가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정부로선 인력·복리후생 축소를 공공기관에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에서 비상경제민생회의 참석에 앞서 박형준 부산시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과 항만물류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은행권은 혁신안 제출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다. 대표적으로 수은은 인력·조직을 감축하는 한편 사내대출을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 수은 노조 관계자는 "회사에서 8월 한 달 동안 기재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혁신계획을 세웠는데, 세부내용을 확인할 수 없지만 기재부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조직·인력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관련 내용이 들어갔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런 얘기를 사측에 했을 때 따로 그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사측이 작성하고 있는 다른 국책은행도 대부분 들어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재부 직속 공공기관인 수은은 첫 제출단계부터 기재부 공공정책국의 심사를 받아야 해 자구적 구조조정 노력이 예상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수은이 매년 순이익을 시현해 정부 국고에 환원했던 만큼, 천편일률적 잣대로 구조조정을 단행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수은은 2019년 순이익 3016억원을 거둬 배당금으로 1090억원을 국고로 환원했다. 이듬해에는 순이익 1024억원을 거둬 407억원의 배당금을 환원했다. 지난해에는 순이익 5475억원을 기록해 정부에 1913억원을 배당으로 환원했다. 

산은과 기은은 보고서 제출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산은·기은은 금융위원회에서 1차적인 심사를 거쳐 기재부 공공정책국으로 전달되는 까닭이다. 공공기관이 기재부에 혁신안을 제출하고 이를 공공정책국이 심사하는데, 산은과 기은은 이제 금융위에 보고서를 제출한 단계다. 당국과 상호 의견이 조율되면 큰 희생은 없을 것으로 본다는 관측이다. 

다만 과거 보수정권에서 세 기관 모두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수은과 산은은 혁신안에 따라 인력을 10% 줄일 것을 요구받은 바 있다. 올해는 2015년 대비 기관 정원의 증감을 보고하고, 얼마나 인력을 줄일 지 기재부에 보고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2017년부터 인력을 줄이다 코로나19 발발로 5%만 감축했는데, 최근 부산이전 우려에 따른 직원들의 대규모 이탈 사태로 2015년보다 정원이 줄어든 상태다. 구조조정에 민감하지 않는 이유다. 

기은은 당장 드러난 내용이 없고 구조조정이 현실화되더라도 조직 내부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만큼, 당장 동요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직원들의 처우 문제와 사내복지가 이번 혁신안에 따라 조정될 우려가 제기된다. 노조는 △정원통합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이후 인력미배치 △임금피크제 직원들의 희망퇴직비 현실화 △사내 유치원보조금 감축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은 노조 관계자는 "(보고서가) 금융위와 기재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역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현재 보고서는 금융위로 넘어갔다"며 "올해 말까지 공공기관 체크리스트를 (별도) 제출해야 하는데 연말까지 큰 이슈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산은은 지난달 31일 윤 대통령의 부산 이전 발언에 민감한 상황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부산신항을 찾아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도시, 세계적인 무역도시, 또 배후에 첨단 기술산업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금융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래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조속하게 추진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동석한 강석훈 산은 회장을 가리키며 "특히 이 자리에 산업은행 회장도 참석하셨다"며 "산업은행은 부울경 지역으로 이전해 해양도시화, 물류도시화, 첨단 과학산업 도시화의 길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강 회장은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고 산업은행의 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관계 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최대한 신속하게 이전을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부산이전 문제가 재차 거론되면서 노사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사진은 강석훈 회장이 취임 전 노조와 대치하는 모습/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대통령의 잇단 부산이전 발언과 더불어 강 회장이 이에 동조하는 의견을 내비치면서, 산은 내부 분위기는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31일에는 산은 내부 이사회가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이사회 하루 전날 강 회장이 행사 참석 연락을 받으면서, 이사회를 끝내 취소하고 부산으로 넘어갔다는 후문이다. 취임 이전부터 현재까지 임직원과의 갈등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강 회장이 내부 일정도 취소한 채 대통령실 일정을 소화한 셈이다. 

한 산은 노조 관계자는 "원래 행사날 오전에 회사 이사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취소하고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강 회장이) 그저께(30일) 갑자기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행사장에 참석한 것인데, 그 자리에서 대통령이 부산이전을 얘기한 것이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조직 안정을 비롯해 소통 부재 등으로 강 회장에게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달 24일 사측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현안 설명회'를 열고 부산 본점 이전 관련 내용을 논의했다. 하지만 타 기관의 이전 사례 등 개괄적 내용만 언급됐다는 후문이다. 

한 산은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보니 (본점을) 이전할 경우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타 기관 사례나 배경지식 등을 전달했다"며 "직원들이 이전과 관련해 많이 불안해 하고 걱정하는 가운데, 당장 논의되는 게 없어 서로 대화하자는 취지로 끝났다"고 말했다.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산은 직원들은 매일 아침 시위로 맞대응하고 있다. 실제 금융노조 산은지부와 산은 임직원 약 500여명은 매일 아침 업무 전 본점 로비에서 부산이전 반대 시위를 펼치고 있다. 지난 2일까지 87일차다. 

한 관계자는 "산은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산은이 (이전 등)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불법"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그동안 조금 어영부영하는 느낌이었는데, 대통령이 언론도 있었는데 강 회장을 불러서 지시한 것은 상당히 공식적인 멘트다. 이제는 (본점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겨나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조윤승 산은지부 노조위원장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이 왜 성급하게 결정하는지 모르겠다"며 "산은은 경제위기가 닥치면 이를 방어하는 1차적인 대한민국 기관인데, (대통령이) 이렇게 흔들면서 직원 이탈이 심각한 상황이다"고 전했다. 노조에 따르면 산은 직원은 상반기에만 40명, 7~8월에만 20여명이 추가로 퇴사해 지난해 말 대비 60여명이 떠난 상황이다. 

뒤이어 조 위원장은 "산업은행 부산이전이 국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하여 분석이라도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 있는가"라며 "사사로운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내팽개치는 어리석은 결정을 한 대통령을 명예롭게 생각할 국민은 없다. 개인 윤석열이 의리를 지켰고 검사 윤석열이 정의를 지켰다면 대통령 윤석열은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금융노조는 오는 16일 총파업에서 산은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일 계획이다. 이어 노조 산은지부가 독자적인 쟁의행위를 펼칠 방침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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