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현 자유경제원 연구원 |
2013년 4월, 부산 남포동에 혜성처럼 등장한 ‘설빙’이 빙수 시장을 평정했다. 눈처럼 곱게 갈린 우유 얼음과 고소한 콩고물이 어우러진 ‘인절미 빙수’는 설빙의 성수기 매출 300억 원을 올리는데 이바지했고, 2015년 현재 전국에 490여개의 가맹점을 운영하며 빙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설빙’의 콘셉트를 한국식 디저트 카페로 잡고, 대표메뉴를 개발한 이는 정선희 대표다. 정선희는 일본의 전통 디저트가 고급 먹거리로 사랑받는 것에 주목하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한국식 디저트를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설빙’을 만들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카페인 시대에 과감하게 출사표를 던진 설빙 정선희 대표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기업가 도전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얼음 ‘빙(氷)’ 물 ‘수(水)’, 빙수의 역사
우리는 언제부터 빙수를 먹었을까? ‘빙수’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얼음이 귀했던 조선시대는 복날이 되면 서빙고의 얼음을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관원들은 배급 받은 얼음을 잘게 부수어 과일화채를 만들어 먹었고,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빙수라고 전해진다.
우리에게 친숙한 ‘팥빙수’는 일제 치하에 ‘얼음팥’이라 하여 잘게 부순 얼음 위에 단팥을 넣어 먹은 것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 들어 제과점에서 젤리와 팥을 기본 고명으로 얹은 팥빙수가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이를 발전시켜 토핑 종류가 다양화 됐다. 이후 ‘빙수’는 여름철 국민 간식으로 꼽히고 있다.
레드오션에 도전하다
빙수는 빙수 전문점 뿐 아니라 다양한 업종에서 손쉽게 판매하고 있는 ‘국민간식’이다. 최근 ‘설빙’을 모방한 빙수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는 기사가 많지만 설빙이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빙수시장은 포화상태였다.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밀탑’, 365일 빙수 접근 가능 시대를 개막한 ‘아이스베리’, 요구르트를 중심으로 빙수에 접근한 ‘레드망고’, 여심을 사로잡은 ‘캔모아’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빙수전문점이 수두룩하다. 그 외에 빙수를 취급하는 커피전문점, 빵집, 분식점까지 합한다면 빙수시장은 그야말로 레드오션 계의 조상이다.
정선희 역시 ‘설빙’을 오픈하기 전에 운영했던 떡 카페 ‘시루’에서 사이드 메뉴로 빙수를 판매했다. 떡 카페 ‘시루’는 초콜릿이나 치즈 같은 친숙한 재료로 떡을 만들어 젊은 층의 입맛을 공략했지만 초기 매출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중 개발한 ‘인절미 설빙’이 히트를 치면서 떡 가게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손님이 늘면서 좀 더 큰 매장을 만들어야겠다고 판단, 시루를 정리하고 코리안 디저트 카페를 표방한 ‘설빙’을 오픈했다.
정선희는 “돈을 내고 먹는 음식은 무엇보다 맛이 있어야 하고, 돈이 아깝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 있다”고 자부하며 2013년 4월, 과감하게 레드오션 빙수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퓨전’으로 승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대세는 ‘퓨전’이다. 정선희가 개발한 인절미 빙수 역시 모양새는 그냥 팥빙수다. 하지만 속 내용이 다르다. 먼저 물 대신 우유를 얼린 후 기계에 갈아 눈꽃처럼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눈꽃 얼음 위에 고소한 콩가루와 인절미 떡을 올려 맛을 냈다. 우유·콩가루·인절미의 삼요소가 만들어내는 빙수는 시원하고, 고소하고, 달콤하고, 뱃속까지 든든하다.
먹다 보면 물과 얼음만 남게 되는 기존의 빙수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빙수를 만들기 위해 직접 우유를 얼려 빙삭기로 갈아 빙수를 만들기도 했다. 주문량이 늘면서 현재는 독자 기술을 보유한 제빙기 업체와 계약을 체결, 단독으로 기계를 공급받고 있다.
인절미 빙수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설빙의 또 다른 메뉴는 인절미 토스트다. 인절미 토스트는 빵 사이에 치즈 대신 인절미를 얇게 썰어 넣었고, 토스트 위에는 인절미 가루와 연유, 견과류를 뿌려 맛을 냈다. 이는 젊은 층 뿐만 아니라 노인층의 입맛을 사로잡은 ‘퓨전’의 좋은 예다.
고구마케익설빙과 고구마치즈토스트도 인기다. 고구마케익설빙은 국내산 고구마를 주재료로 삼아 폭신한 카스텔라, 부드러운 치즈케이크를 더한 빙수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빙수메뉴 판매율이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고구마케익설빙의 경우 폭신폭신한 카스텔라와 따뜻한 느낌을 주는 군고구마가 올라가 있어 가을, 겨울에도 즐길 수 있다.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는 메뉴로 주목 받고 있다.
고구마치즈토스트는 바삭한 빵 사이의 쫄깃한 인절미와 토스트 위에 올려진 달콤하고 부드러운 치즈고구마의 조화가 특징이다. 특히 고구마케익설빙은 빙수 본래의 차가운 성질에 부드럽고 따뜻한 고구마를 접목시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색 빙수다.
찹쌀떡 위에 딸기를 얹어 코리안 디저트 중 하나인 떡을 접목시킨 생딸기 설빙 역시 한 겨울의 설빙 매출을 책임진 일등 공신이다.
이처럼 전통 음식에 빙수를 접목한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퓨전 빙수’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빙수에는 팥이 들어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고, 그렇고 그런 인절미를 빙수의 고명으로 얹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야말로 튀는 아이디어로 시장을 개척했다.
레드오션 + 블루오션 = 퍼플오션, 그리고 기업가정신
▲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설빙 매장.
빨강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보라색이 된다. ‘퍼플오션’이란 레드오션과 블루오션을 혼합한 것을 뜻한다. 포화상태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기존의 시장(레드오션)에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나 기술로 새로운 시장(블루오션)을 만든다는 의미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퍼플오션의 필요조건은 바로 ‘기업가 정신’이다. 경제성장에서 인적·물적 자원의 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 즉 기업가다. 동일한 자원이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기업가에 따라 그 성과는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선희는 이미 포화상태인 빙수 시장에서 ‘인절미 빙수’라는 혁신을 만들어냈다. 얼핏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창조해냈고 소비자를 만족시켰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꿈을 이루다
설빙이 등장한 것은 2013년 4월, 서울도 아닌 부산 남포동이었다. 남포동에 첫 점포를 낸 뒤 가맹점 숫자가 490여 개에 육박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터진 ‘대박’이다. 세계 진출도 앞두고 있다. 올 4월, 중국 상하이시에 매장을 내는 것을 시작으로 2017년까지 150개 매장을 내기로 협약했다.
초보 창업인의 창업 성공률(5년 이상 유지)은 10% 미만이고, 1년 안에 폐업하는 경우가 허다한 시장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선희 역시 설빙이 국내 외식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남 잘 되면 무조건 따라하기’ 풍토엔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설빙 흉내를 냈다가 고전하는 짝퉁 브랜드에 대한 걱정이다. “남의 지식재산을 함부로 도용하는 등 문제의 심각성이 크지만 전 재산을 털어 넣었다가 망하는 걸 보면 마음이 더 안쓰럽다”고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여유다.
열풍에서 문화로, 먹스타그램 대표 주자 ‘설빙’
설빙은 콩고물, 생딸기 등 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비주얼이 화려한’ 설빙의 빙수는 ‘직찍(직접 찍은 사진)’을 통해 SNS로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SNS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등 SNS를 통한 ‘먹방 사진’이 유행하며 맛집 블로거, 먹스타그램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을 충족시켜준 ‘설빙’은 ‘맛집 얼리어답터’들로부터 극진한 칭송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빙수에 한국 전통 레시피를 접목시킨 점은 디저트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너도 나도 ‘설빙 해시 태그’에 열을 올리게 했다.
작은 것을 볼 줄 아는 능력, 기적을 만들다
정선희는 국내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제빵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제빵 기술과 푸드코디네이터 과정을 거치며, 전공 공부 보다는 일본인이 전통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주목했다. 일본의 전통 식자재가 메인요리에서부터 디저트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젊은 층에게도 사랑받는 것을 보며 ‘한국식 디저트’를 꿈꾸게 된 것이다.
같은 것을 봐도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속에서 교훈을 얻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정선희의 경우 후자다. 일본의 전통 식자재가 다양하게 활용되든 말든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면 지금의 ‘설빙’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회의 발견은 깨어있는 ‘기민한 기업가들’에게 우연치 않게 발견된다.
우선순위 덕목, ‘행동력’과 ‘추진력’
정선희는 처음부터 직장생활 보다는 사업에 꿈을 가졌다. 하지만 일본에서 귀국해 바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부산 집을 떠나 서울에서 2년여 동안 다른 곳에서 일을 배웠다. 그러던 중 ‘어차피 내 사업할 것이면 빨리 저지르자’고 결심하게 되고 떡 카페 ‘시루’를 오픈한다.
‘빨리 저지르자’는 정선희의 추진력과 행동력은 기업가가 가져야 할 우선순위 덕목이다. ‘이게 잘 될까?’라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겠지만, 그걸 뛰어넘어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일찍이 커즈너는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불가능해 보이거나 무모해 보이는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기업가정신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연봉이 높고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는 젊은이들 속에서 ‘내 사업’에 비전을 둔 정선희의 목표는 남달랐다. 또한 누구나 ‘창업이나 해볼까?’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대단한 마음가짐과 여러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 정선희는 이를 잘 충족시켰고, (아직 단언하기엔 갈 길이 멀지만)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인생 역전 드라마는 없지만 이것이 평범한 우리의 모습
▲ 설빙 애플망고.
△인제대 식품영양학과 졸업 △2005~2007년 일본 유학(외식비지니스 전공) △2007년 미국 코넬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수료 △2011년 떡카페 시루 오픈 △2013년 ㈜설빙 오픈
오픈한지 2년도 채 안 되어 500개의 가맹점을 거느린 정선희 대표의 이력이다.
정선희에게는 삼성의 이병철, 현대 정주영에게 있는 ‘인생 역전 드라마’나, ‘개천에서 용 난 스토리’가 없다. 그저 ‘내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와 전통 음식을 이용한 디저트 카페에 대한 비전이 있었을 뿐이다.
이런 점이 정선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지극히 평범한 정선희가 해냈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큰 것이다. 정선희는 시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추진력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래서 이런 정선희의 성공(이라고 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지만)을 두고 “우연이다” 또는 “운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2030은 산업화 시대의 어른들이 겪었던 가난, 전쟁의 폐허를 모른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대부분 풍요롭게 자랐기 때문이다. 금은보화를 쌓아놓는 부자는 아닐지라도, 이변이 없는 한 극적인 가난은 평생 가도 모르고 살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모양의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보다는, 있는 자원을 바탕으로 본인의 역량이 추가된 ‘기업가 정신’이 승리한다는 뜻이다. 정선희는 기존의 창업자들과 같은 듯 다르게 혼자만의 영역을 꾸려나가고 있다.
신의 한 수, ‘긍정적인 마음’이 소비자를 부른다
정선희 대표가 처음 떡 카페 ‘시루’를 오픈했을 때, 초기엔 하루에 10만원 어치 정도의 떡을 팔았다고 한다. 그래도 긍정적인 성격 덕에 걱정하지는 않았다. ‘좋은 식재료를 가지고 열심히 만들면 손님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고, ‘그러다가 실패하더라도 아직 젊으니 아쉬울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돈을 보태준 아빠 역시 돈 벌라고 채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움을 헤쳐 나갈 때 필요한 것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이다. 이 마음이 곧 소비자의 선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가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정주영, 이병철 등 많은 기업가들이 그랬다. 그들은 비관적이지 않고 낙관전인 태도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성공한 기업가들이 그랬듯이 시장경제원리인 소비자에게 봉사하며 선택받는 과정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 정선희 대표의 ‘설빙’이 성공한 비결이다.
시장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창업 아이템의 유행 주기는 대체로 3년을 넘기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한때 반짝 하다가 가맹점수가 줄거나 사라진 업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공병호는 “기업하는 일은 늘 미래의 불확실성을 상대로 끊임없이 승부수를 던지는 일종의 생산적인 투기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떠안는 것이란 뜻이다. 능력과 재능이 중요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운도 따라야 한다. 확실하고 예측 가능한 미래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빙 역시 지금은 잘나가고 유행의 선두주자로 각광 받고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것 역시 설빙의 몫이다.
제아무리 성공한 기업이라도 소비자들을 지속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면 사라지게 된다. 지금은 미진한 기업이라도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든다면 재도약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시장에서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이유다.
지금껏 그랬고, 앞으로도 소비자의 마음은 수시로 바뀔 것이다. 지금 설빙에 열광하는 소비자들도 마음이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 소비자보다 한 발 앞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설빙의 역사는 새로 쓰여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설빙’, 그리고 ‘설빙’의 ‘정선희’를 응원한다. /조우현 자유경제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