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기업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확장해 나가던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속도 조절에 나섰다. 글로벌 시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계열사 LX하우시스도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당분간 소극적인 경영 행보를 유지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LX그룹은 마감 기한 내에 국내 반도체 기업 매그나칩 인수 제안서를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LX그룹 지주사 LX홀딩스는 지난 5월 반도체 자회사 LX세미콘을 통해 매각 주관사 JP모건 측에 인수 의향서(LOI)를 내고 실사도 진행한 바 있다.
앞서 LX그룹은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1등 DNA'라는 키워드 하에 LX인터내셔널을 동원해 공격적인 기업 인수를 진행해왔다. 한국유리공업·포승그린파워 등이 대표적이다.
LX그룹이 이 같이 반도체 기업을 품으려던 이유는 범 LG 가문의 숙원 사업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97년 외환 위기 닥쳤을 때 국내 산업계 전반은 격동의 시기를 맞았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미명 아래 대기업들끼리 자회사를 맞교환하라며 '빅딜 정책'을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국가적으로 중복 과잉 투자인 만큼 구조조정으로 비효율성을 일소하자는 게 당시 정부 방침이었다.
1997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은 상당한 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삼성전자 18.8%, 현대전자 9%, LG반도체 6.7% 순이었다. 정부는 현대전자가 LG반도체보다 더 큰 회사라며 LG그룹에 반도체 사업를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이에 구본무 당시 LG그룹 회장은 반발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채권 은행단을 동원해 만기 대출금을 회수하도록 해 돈줄을 죄었고, 결국 구 회장은 김 대통령과 회동해 반도체 사업을 접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LX그룹이 반도체 사업에 더욱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매그나칩을 품고자 했으나 당초 계획과는 멀어진 셈이다.
이처럼 M&A에 적극적이었던 LX그룹이 주춤하고 있는 건 환율과 높은 금리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오후 1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1387.7원, 한국은행 기준 금리는 2.5%다. 기준 매그나칩 시가 총액은 5억1900만 달러, 한화로 약 7202억6820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1조 원 수준까지 인수가가 치솟을 수 있고, 계속 오르는 환율과 금리를 감안하면 그 이상 될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재계에서는 '승부사'로 통하는 구본준 회장이 무리한 인수로 후폭풍을 겪기 보다 시황을 감안해 안정적인 경영 기조를 채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내 건자재 계열사 LX하우시스도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내우외환을 동시에 키울 이유가 없다는 것도 한 이유로 꼽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LX하우시스는 올해 2분기 매출 9484억8200만 원, 영업이익 56억4100만 원, 당기순손실은 475억42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영업이익은 18.7% 감소했고, 당기순손실은 1413.6% 확대됐다.
LX하우시스가 판매하는 제품군은 석유 가격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고유가 시대에는 회사 실적이 좋지 않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건자재 위주의 제품군을 가진 LX하우시스의 실적 반등은 당분간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구본준 회장이 2보 전진을 하기 위해 일단 1보 후퇴를 한 것 같다"며 "M&A는 필수 아닌 옵션인 만큼, 추진 과정에서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현재 LX하우시스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이는 그룹의 다른 사업 단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LX그룹 관계자는 "매그나칩 실사 종료 여부와 인수 제안서 제출 기한 등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아직 매그나칩 인수에 관해서는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LX하우시스 실적이 부침을 겪고 있지만 다른 계열사들은 선전하고 있다"며 매그나칩 인수와 관련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