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유럽 연합(EU)이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반사 이익을 누린 에너지 기업들에 대해 징벌적 과세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국내 관련 기업들은 불똥이 튈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며 시황에 따라 손실을 입으면 보전도 해줄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사진=EU 집행위원회 연설 영상 캡처
16일 업계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소재 EU 의회에서 역내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하겠다며 올 겨울 소비자 난방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의 법안 발의를 예고했다.
이는 전력 발전사와 가스·석유 기업으로부터 초과 이익분에 대해 소위 '횡재세'를 부과해 1400억 유로(한화 약 195조3168억 원)를 거두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회원국들이 에너지난 완화에 투입할 여력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유럽 지역에서는 전력 단가가 가스 가격에 연동돼 있다. 발전사들은 가스 외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와 원자력·석탄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현재는 가스 가격 급등에도 에너지난 탓에 가스 발전소도 가동되는 상황이다. 때문에 발전사들은 평시 대비 비싼 값에 전력을 판매할 수 있어 수익성이 대폭 개선됐다.
이 같은 초과 이익에 횡재세를 매기겠다는 게 EU 집행위의 계획이다. 현실화 될 경우 가스 외 에너지원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사들의 수익 상한은 1메가와트시(MWh)당 180유로(25만원) 이하로 제한되며, 이를 넘는 수익은 국고에 귀속된다. 독일 도매 전력 시장에서는 1MWh당 440유로(61만4166원)에 거래되는데, 이의 40% 수준이다.
가스·석유 기업들도 올해 지난 3년간 평균 이익보다 20% 이상 수익성이 커질 경우 이 중 33%를 '연대세'로 내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국내외에서 '횡재세' 도입 논의가 잇따르자 정유사들이 반발하고 있다./사진=한국석유공사 제공
EU가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자 국내 정유 4사도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들을 겨냥한 횡재세 관련 법안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1일 국내 정유사·은행에 대해 초과 이득세를 물리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정당한 경제 활동과 기술 혁신을 통해 이익을 창출한 게 아니라 단순히 시장의 변동에 의해 노력 없이 이득을 취한 만큼 에너지 취약 계층을 지원하고자 한다는 게 용 의원 측 입장이다.
용 의원의 법안대로 횡재세를 적용하면 세무 당국은 약 3조~4조 원 가량의 세수를 추가로 징수할 수 있게 된다.
업계는 정부가 유류세를 법정 상한선인 37%까지 인하했음에도 국내 유가가 떨어지지 않은 것과 정유사가 이익을 많이 낸 것에 대해 용 의원이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올해 상반기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4개 정유사들은 12조3033억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거둔 바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3조8995억 원 대비 215.9% 늘어난 규모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정유사 직영 주유소들은 정부 당국의 서민 물가 안정 정책에 부응하고자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재고분을 팔았다"며 "일선 자영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기름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정유사를 탓하는 건 어폐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달에는 국회 국정 감사가 개최되는데, 정유사 대표이사 등 임원들을 대거 소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호실적을 냈다고 해서 목을 옥죄는 건 어느 나라식 입법인지 모르겠고, 매년 그래왔듯 기업인 망신 주기식 국감이 예상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저 외국에서 도입한다고 따라서 법을 만드는 걸 납득할 수 없다""며 손실을 보면 국가가 보전해 주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10월 국회 국정 감사와 관련, 정유사 대표 등 임원진이 증인으로 채택될 것으로 보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정유업계는 외국과 국내 정유사들의 산업 구조가 달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에너지 업체는 원유를 직접 시추하고 되파는 업 스트림과 가격 변동에 따라 원유를 사들이고 이를 가공해 되파는 다운 스트림 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다.
영국 정부도 횡재세율을 25%로 설정했는데 그 대상은 자국 내에서 석유와 가스를 채취하던 에너지 기업들로 제한됐다. 하지만 에너지 기업들이 이익을 자국 내에서 재투자하면 횡재세를 90% 감면해준다고도 했다.
한편 국내 정유사는 다운 스트림 구조만 갖추고 있어 용 의원 법안이 부담스럽다고 푸념한다. 하반기 원유 가격은 다시 오르고 있으나 상반기 대비 대폭 하락했다. 통상 원유는 선물 거래로 이뤄지는데, 미리 매입한 원유에 대한 부정적인 원재료 투입 시차 효과로 국내 정유4사의 하반기 실적은 상반기 대비 대폭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