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미국 정부의 자국중심적인 법안이 졸속으로 처리되며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각국의 정부들이 뒤늦게 대응수위를 높이거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등 자국 중심적인 법안을 연이어 쏟아내며 동맹국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특히 포문을 연 IRA는 9일만에 상원 통과에서 대통령 서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며, 강력한 동맹국들인 유럽과 일본도 사전에 정확한 내용을 파악조차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하원의원들 사이에서 법안의 세부 내용을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투표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자동차협회(AAI) 회장은 "의회에서 짧은 기간에 논의돼 우리도 놀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유럽과 일본은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미국 IRA 법안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정의한 관련 규범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작업에 최근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에는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이 캐서린 타이 미 무역 대표부(USTR) 대표에게 유럽산 전기차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도 최근 뒷북 대응에 나섰다. 이달 7일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나 레이몬도(Gina Raimondo) 미국 상무부 장관에게 일본 브랜드의 전기차 판매가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이번 조치가 WTO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주미일본대사관 대변인도 미국 현지 언론 매체를 통해 "더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위한 양국간 논의가 진전되는 가운데 이런 조치가 나온 것에 매우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IRA 법안 서명 직후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와 도요타가 법안을 유리하게 바꿨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더 나은 재건법(BBB)'이 IRA 법안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노조가 있는 메이커가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삭제된 부분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IRA 법안이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치적이 필요해진 민주당이 당내 비밀 협의를 통해 무리하게 밀어붙인 법안이라는 것이 미국 현지의 중론이다. 하원 통과를 위해 휴회 기간에 긴급 투표를 벌여 절반 정도의 의원이 대리투표를 할 정도였다.
또한 미국 내 법안 처리 기간 중 일본에서는 경제산업상이 교체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체계적으로 대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던 셈이다.
더욱이 노조가 있는 메이커에 혜택을 준다는 조항이 삭제된 것은 도요타보다 미국에서 전기차 시장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테슬라와 현대차·기아에 더욱 유리한 내용이다.
우리 정부가 한국산 전기차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빠르게 미국 정부, 의회와 소통하고 있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지난 8월 IRA 법안이 발표되자 마자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미국 정부에 법 개정 및 행정조치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IRA 법안을 주요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정부를 우리 정부 혼자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일본과 유럽이 뒤늦게나마 IRA 법안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우리 정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 허를 찔린 EU와 일본 등 우리를 포함한 미국의 동맹국들이 함께 뜻을 모은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어서다.
앞으로 우리 정부는 더욱 정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선 EU, 일본과의 공조를 주도해야 한다. 지금껏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축적한 전략을 EU, 일본 등과 공유하면서 미국과 협의를 이끌어가야 한다. 동시에 미국과 FTA 체결국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해야 한다. 법안 수정은 물론 시행과정에서 최대한 우리나라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한다면 금상첨화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