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총회 등 3개국 순방을 진행하면서 ‘외교 무능’ 논란에 휩싸였다. 수백명의 정상이 한꺼번에 몰린 ‘영국 여왕 국장’과 유엔총회라는 다자외교 무대에서 미흡한 결과가 나온 탓인데, 결정적으로 윤 대통령이 비속어를 내뱉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외교참사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논란은 첫 일정인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 대한 ‘조문 외교’에서 ‘조문’이 빠지면서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18일 영국 런던을 방문해 당일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홀을 먼저 방문해 조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문을 하지 못하고 찰스 3세 국왕이 연 공식 리셉션에 참석한 뒤 다음날인 19일 조문록만 작성했다.
윤 대통령은 세계의 이목이 쏠린 런던에 대한민국의 정상으로서 참석했다. 따라서 예정된 일정에 불참하면서 좀처럼 열리기 힘든 대형 외교행사에 참석한 의미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교통상황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리셉션이 끝난 18일 저녁 ‘여왕의 관’을 찾은 일왕이나 운동화 차림으로 걸어서 웨스트민스터홀을 찾은 프랑스 대통령 부부와 비교되면서 윤 대통령이 입방아에 올랐다.
이어서 예정된 한미 및 한일 정상회담이 각각 ‘48초’와 ‘30분’이라는 ‘간담’ 수준으로 끝나면서 “외교 무능” 비판을 불렀다. 이는 당초 대통령실이 발표한 “한미 및 한일 정상회담 개최 합의”가 불발됐기 때문으로, 특히 한일 정상회담은 정상들의 출국 이전부터 ‘신경전’으로 비화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2.9.22./사진=대통령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불과 4개월 전인 5월 서울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고,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도 한미일 정상회담을 진행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뉴욕 한미 정상회담은 약식으로 끝나도 무방했다. 게다가 이전부터 한미 외교당국간 현안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왔고, 박진 외교부 장관이 윤 대통령보다 먼저 뉴욕에 도착해 사전협의를 진행한 바도 있다.
이와 관련해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도 “영국 여왕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따른 국장 행사에 각국 정상들이 참가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뉴욕 유엔총회 체류 일정이 단축되고 조정되면서 여러 일정이 변경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키웠다. 윤 대통령이 22일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며 박진 장관 등에게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에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나 미 의회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야당에 대한 우려를 언급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비속어를 직접 들은 박 장관도 “미국과 상관없는 발언”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22일(현지시간) “켜진 마이크(hot mic) 발언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며 한미관계는 변함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국정감사를 앞두고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여야 간 난타전으로 확산되면서 정국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컨퍼런스 빌딩에서 한일 정상 약식회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2022.9.22./사진=대통령실
2년 9개월만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 정상간 관계 개선 의지가 반영된 것이므로 개최된 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행사를 진행하던 장소에 윤 대통령이 방문해 만난 방식 자체가 굴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구나 아사히신문이 일본정부 인사를 인용해 “이쪽은 만나지 않아도 되는데 만났다. 한국은 일본에 빚을 졌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윤석열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근원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번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외교에 자유의 기치를 적용시키는 것이 우려스럽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정학적 숙명을 가진 대한민국이 균형을 추구하는 외교전략을 펼쳐온 배경이 있고, ‘낀 국가’이자 ‘분단국가’인 우리가 미국 입장에 앞장 설 경우 실천비용이 대단히 높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다자외교 무대에서 혹독한 시험을 치른 ‘윤석열 외교’가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한편, 한국갤럽은 23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20%대로 내려갔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0~22일 전국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28%였으며, 부정평가는 61%를 기록했다.
긍정평가는 지난주보다 5%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부정평가 이유로는 경험과 자질 부족 및 무능함이 12%로 가장 많았으며, 경제와 민생을 살피지 않는 것이 10%로 뒤를 이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