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산업은행 체제에 있던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을 한화그룹이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업계 내 구도 재편과 한화그룹 내 경영체계 변화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사업구조 개편과 승진인사까지 단행한 한화그룹이 미래 지향적 경영체계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다. 이 중심에는 차기 총수로 유력한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있다.
6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지난달 26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등 계열사가 제3자배정 유상증자로 인한 신주 인수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금액은 2조 원 규모로, 투자사들은 상세 실사 뒤 최종 인수자로 선정되면 오는 11월 말쯤 본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한화그룹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막대한 재무부담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한화그룹이 계획한 인수자금이 유입되면 대우조선은 당장 급한 불은 끌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바닥 난 자본금을 다시 채우고, 잃어버린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한화그룹의 지속적인 자금지원과 대우조선의 자구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2년간 13조 원을 투입한 산업은행 지원 체제에서도 이뤄내지 못한 대우조선의 경영 정상화가 한화그룹 품에서 이뤄질 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특히 이를 진두지휘하는 것이 한화의 차기 총수로 꼽히는 김동관 부회장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지난 6월 기준 자산총액 규모는 12조 224억 원으로, 10조4741억 원의 부채와 1조5483억 원의 자기자본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부채비율은 676.5%에 달한다.
한화그룹이 최종 인수자로 선정돼 인수자금 2조 원이 유입되면 대우조선 자본총계가 2분기 말 1조5483억 원에 3조5483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부채비율은 295.2%까지 낮아지게 된다. 또한 부채비율 개선으로 신용등급 상승, 조달비용 감소 등의 효과가 예상된다.
다만 대우조선에게 부채를 줄이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조선사에게 부채는 곧 일감을 말하기 때문이다. 선박 수주시 먼저 받는 선수금(계약부채)은 모두 부채로 계산된다. 대우조선의 상반기 계약부채는 3조1684억 원으로, 2020년 상반기 1조4931억 원, 2021년 2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항목상 부채가 늘긴 했지만, 실상은 수주가 늘어난 것이다. 이 부채는 선박을 인도하는 것으로 상환 처리된다. 인수자금 유입으로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이 감소해도 이를 온전한 재무개선 효과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재무개선은 자본금을 늘려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현재 대우조선은 7개 분기 연속 적자로 이익잉여금이 결손금으로 전환됐다. 2020년 3분기만 해도 이익이영금이 8312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원가 압박과 고정비 부담으로 2분기 말 1조 6711억 원의 결손금이 발생했다. 유입된 2조 원의 인수자금을 자본 확충 목적으로 활용하면 결손금은 단번에 해소될 수 있다.
다만, 대우조선이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과 유동성 장기부채가 각각 1조4241억 원, 1조4637억 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인수자금 대부분은 자본 확충보단 부채 상환에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자본금 증가를 통한 부채비율 감소는 한화그룹의 추가 자금 지원이나 대우조선 자력의 이익 개선에 기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화그룹의 자금 지원이 계속되거나 대우조선의 자구 노력의 결과가 늦어질 경우 한화그룹은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21년 간 산업은행 체제에서 무려 13조원의 공적자금을 받고서도 기업가치 하락과 조단위의 연간 손실을 내고 있는 대우조선이기에 이 같은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그럼에도 한화그룹이 대우조선의 인수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방산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사업은 특수선(군함·잠수함)과 상선 부문으로 나뉘는데, 이번 인수를 통해 특수선 건조 역량을 확보, '육·해·공 통합 방산 시스템'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에게 있어 방산분야는 뿌리나 다름없다. 고(故) 김종회 창업주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한국화약주식회사(현 한화)를 세워 그룹의 기틀을 다졌고, 이후 김승연 회장이 2014년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등을 인수하며 경쟁력을 강화했다.
현재 그룹의 방산 사업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이어받았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놓고 김동관 부회장의 존재감이 더욱더 부각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화그룹은 이번 인수로 김동관 부회장 책임 아래 '빅 사이클' 초입에 진입한 조선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그룹 주력인 방산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한화그룹의 목표에 부흥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됐다. 다행히도 내년을 기점으로 조선 시황이 유리하게 전개된다는 점때문이다. 조선업계에선 작년부터 '뱃값 제값 받기'가 시작되면서 내년부터 수익개선이 기대되고 있다.
대우조선은 그간 저가수주에 발목이 잡혀있었다. 업황 침체 속 산은의 지원을 받는 형태다 보니 저가의 다량의 수주로 기업의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사진=대우조선해양 제공
하지만 저가수주 물량이 거의 해소가 되고, 작년부터 선박 제값 받기 경쟁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신조선가지수는 8월 말 기준 161.81포인트(P)로 21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대우조선은 이미 올해 목표 수주 규모인 89억 달러의 97%를 이미 채웠다. 수주잔고만 해도 41조원 어치에 달한다. 뱃값이 주로 달러로 결제되는 점을 감안할 때 원달러 1430원에 이르는 최근의 고환율 기조는 뱃값 정상화와 함께 대우조선의 수익성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최근 선종별 호황주기가 다르다는 점도 기대되는 포인트다. 코로나 사태에선 물동량을 충당하기 위한 컨테이너선 수주가 많았다면 최근엔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이 호황 주기에 접어들었다.
아직 끝이 보이지 않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가 종식되면 원유운반선 주기도 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등락이 큰 조선업 싸이클에 연연하지 않고 지속적인 이익 기반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물론 호재만 있는 건 아니다.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원재료 가격이 꺽이면서 조선용 후판 가격 또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포스코 침수 사고와 현대제철 노조 파업 영향으로 가격 인하가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선박 가격이 올랐다고 해도 건조 가격 또한 늘어나면 대우조선의 수익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이번 M&A 추진 발표 전부터 한화그룹은 숨 가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주요 행보 모두 미래 지향적 경영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김동관 부회장의 '역할 확대'를 공식화한 수준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먼저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 한화디펜스 등 3개 회사에 분산됐던 방산 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 곳으로 통합하는 대대적인 사업 개편을 단행한 뒤, 김동관 부회장을 승진하면서 한화솔루션에 이어 추가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를 맡겼다.
또 한화솔루션을 중심으로 한 회사 분할을 결정했다. 갤러리아 부문을 인적분할하고 첨단소재 부문의 일부 사업을 물적분할하기로 결의하며 기존 5개 사업 부문을 큐셀(태양광), 케미칼(기초소재), 인사이트(한국 태양광 개발사업) 등 3개 부문으로 줄였다. 태양광과 소재 산업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이를 두고는 김동관 부회장 사업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행보라는 의견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김동관 부회장이 전진 배치돼 한화그룹의 미래 성장 엔진인 방산과 태양광에 집중하는 경영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어 방산과 친환경에너지 사업의 경쟁력 강화가 핵심인 대우조선해양 M&A까지 추진되며 '김동관 부회장 체제' 강화 작업에도 더욱더 탄력이 붙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까지는 저가 수주 물량도 남아있고 철강사와 후판 가격 인하 협상도 사실상 어려워 보여 대우조선이 이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2년 전 높은 가격에 수주한 선박들이 내년부터 본격 건조에 들어가면서 이익 증가가 예상되고, 이는 한화그룹과의 시너지와 맞물려 대우조선이 부실을 빠르게 털고 조기에 실적 턴어라운드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