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외교안보팀장]선제 핵공격을 골자로 한 핵 독트린을 발표한 북한이 지난달 25일부터 이달까지도 단·중거리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방사포, 군용기까지 대거 동원해 군사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인 당대회 기간 중인데도 북한은 남한에서 매년 열리는 호국훈련을 문제 삼아 심야와 오전, 오후를 가리지 않고 대응 차원의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최근 엿새동안 9.19 남북군사합의를 8차례나 위반한 것이다. 북한의 잇따른 포병사격은 동·서해상 해상완충구역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비록 지금까지 우리 영해에서 관측된 낙탄은 없으나 엄연히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다’는 9.19 군사합의 1항부터 위배된다.
특히 북한이 최근 보여온 도발은 포병사격 전 다수의 군용기를 동원해서 전술조치선 이남에서 비행활동을 펼치고,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쏜 뒤 동·서해상에서 각각 100여발의 사격을 하는 식으로 남한 공격을 상정한 훈련이 명백해보인다. 그동안 중국의 정치행사 때 일절 없던 북한의 무력도발이 저강도 형태로나마 나타나는 것에 대해 중국의 암묵적 양해를 얻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지금 북한의 군사도발 행태는 강화된 한미 및 한미일 연합훈련에 맞대응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면서 중국의 동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국제정치 판도를 정확하게 읽어내면서 미중 갈등 및 미러 대치 시류를 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두 번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북한에 대한 규탄성명조차 채택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 때문이었다.
따라서 지금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안보리에서 추가 대북제재 결의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은 지금과 같은 기회를 노려 수년간 준비해온 남한 공격 전술핵 발사훈련을 완성하는 중이다. 북한은 앞서 ‘주적은 남한도 미국도 아닌 전쟁’이라던 입장을 낸 적이 있지만 지난 8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발언으로 “남조선이야말로 불변의 주적”이라고 발표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유년사관학교인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해 교육 실태를 점검했다고 노동신문이 17일 보도했다. 2022.10.17./사진=뉴스1
한국과 미국에서 정권교체 이후 나타나고 있는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해 과거 비핵화 협상은 ‘위장 쇼’에 불과했다거나 윤석열정부에서 강화된 한미공조에 대해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상존한다. 하지만 역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선언한 ‘새로운 길’의 행보로 봐야 할 것 같다. 2018년 북미 및 남북 대화 테이블에 나섰던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진실 여부를 떠나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북한 행보는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마침 핵을 포기했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고통을 겪고 있고, 러시아는 핵전쟁 준비에 나섰다. 미중 간 전략경쟁이 고조되면서 중국의 대만 무력통일도 언급됐다. 이에 따라 미국과 서방이 중러와 대치하는 신냉전 구도가 고착될 기미가 보이자 북한이 잰걸음으로 북중러 연대에 편승한 것으로도 보인다. 비핵화 협상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협상력 부재’ 현실을 실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정부의 대북정책도 돌아가는 형편이나 상대의 태도를 반영해야 하는 만큼 지금으로선 최대한 북한을 억제하고 한치의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북한이 대화 국면에서도 물밑에서 무기개발에 열중했던 그것처럼 우리도 남북 간 대치 국면에서도 대화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흔히 남북관계는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예상치 못했던 한순간에 국면이 바뀌어왔다.
최근 들어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되는 북한 소식 중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청년세대를 챙기는 모습이 주목을 끈다. 일례로 만경대혁명학원을 두차례 연속 방문해 교육 실태를 점검하고 청년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이 지금 신경쓰고 우려하는 부분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학생의 볼을 어루만지는 부자연스러운 사진 한컷에서 북한정권의 한계를 읽었다면 논리적 비약일까.
김정은 위원장이 한때 비핵화 협상에 나선 것은 분명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벗기 위해서다. 그리고 중국은 여전히 북한이 망하지 않을 만큼만 지원하고 있다. 자본과 중간재가 턱없이 부족한 북한경제가 자력으로 되살아날 가능성은 적고, 김정은이 덩샤오핑이 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최소한 중국 공산당과 같은 권력구도로 진화하기에도 갈 길이 멀어보이는 김정은정권에 분명 딜레마가 있다. 남한정부가 북한정권의 취약한 부분을 잘 공격하는 대북정책을 가다듬을 때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