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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근로자들의 '외로운 용기' 뒤엔 책임이 있었다

2015-05-18 10:1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영화 국제시장이 기록한 공전의 히트로 인하여 1960~70년대 파독광부 및 간호사 등 파독 근로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졌다. 자유경제원은 이에 착안하여 영화에서 밝힌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주목했다. 경제성장을 이끈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책과 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자유경제원은 ‘경제발전 뿌리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자유경제원은 첫 번째 발걸음으로 영화 국제시장의 가장 큰 무대인 독일을 방문했다. 파독 근로자의 땀과 눈물의 장소를 방문해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파독근로자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일정이었다.

3개월에 걸친 준비 끝에 자유경제원은 4월 19일부터 24일까지 6일간 독일을 방문했다. 이에 미디어펜은 자유경제원의 ‘경제발전 뿌리 찾기 프로젝트’에 동행하여 현장을 방문하고 독일에서 한국 근로자들이 수고했던 의미를 되새겼다. 자유경제원은 독일에 이어 향후 베트남파병, 중동건설근로자 등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을 재조명할 예정이다. 아래 글은 자유경제원의 ‘경제발전 뿌리 찾기 프로젝트’에 동행했던 김혜숙 경인교육대학교 교수의 탐방기 전문이다. [편집자주]

 

[탐방기] 낯선 땅, 낯선 문화에 뛰어든 용기 있는 인물들과의 만남

예전에 가보지 않은 곳에 찾아가며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일반 여행과 달리, ‘자유경제의 뿌리를 찾겠다’는 자유경제원의 뚜렷한 목적에 동의하며 독일로 향한 여정. 게다가 돌아온 후 기행문까지 써야한다는 ‘다소 부담스러운 숙제’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전혀 가보지 않았던 광산도 여러 곳 방문하고 한국의 산 많은 지형에 익숙하고 ‘광산’이라는 우리 말 때문에 독일의 ‘mine’도 산 속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선입견으로 인해서, 첫 날 Lohberg mine을 방문하면서도 ‘광산이 어딨지?’라는 의문을 잠시 품기까지 했던 어리석음에 혼자 웃기도 했다.

이후 또 다른 광산의 잔재들, 그 잔재들이 변모하여 만들어진 문화공간과 시설들을 방문하면서, 또 그 속에서 일하던 한국 광부들을 만나고 그 시절 얘기를 들었다. 한국 간호사들이 젊은 시절을 바쳐서 일했던 병원도 방문하고 이미 노년에 접어든 그들의 손을 잡으면서 그 분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는 젊은 날 독일에 와서 힘든 세월을 보냈지만 결국 성공적으로 힘든 세월을 극복해냈다는 ‘잘 살아냈어!’ 자부심이 표정에서 풍기기도 하고, 또 일부는 그동안의 힘든 세월이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일부는 삶의 고단함과 세월도 이기지 못할 탄탄하고 여문 무엇인가(그것이 원래부터 있어서 힘든 세월을 이길 수 있게 해주었는지, 혹은 힘든 삶의 과정들로 인해서 그런 열매가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일부는 그 긴 세월에도 가난한 가족과 가난한 조국이 주었던 서운함과 억울함이 여전히 한 맺힌 응어리로 남아있는 듯하였다.

   
▲ 광부와 간호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독일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상태로 독일에 파견되었다. 무모함에 가까운 용기로 이들은 독일 생활을 시작했고 버텨내었다. /사진=미디어펜

현재 보이는 그런 다양한 모습들 뒤에 있는 공통점은 그들의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되었다. 유학을 가서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문화 속에서 몇 년간 적응하려고 애썼던 내 삶의 몇 년간과 비교해 보면서 그들의 용기가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 유학생들은 대개 적어도 몇 년간 미리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 연습해서 적응하기에 큰 부족함이 없다고 느낀 상태에서 한국을 떠나지만, 이들 광부와 간호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독일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상태로 독일에 파견되었다.

삶의 상태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목적은 유학이나 파독이나 같겠지만,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나 힘들어서 유학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독일에 파견될 때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할지도 이들은 선택하기 어려웠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적응하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이들은 적어도 3년간 돌아갈 수도 없었다. 부양하고 도와야 할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당장 돌아가야 또 다른 가난함만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

‘뭐든 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과 성실함 외에는 준비 없는 상태로 새로운 언어와 문화에 뛰어든 것. 그 무모함에 가까운 용기로 이들은 독일 생활을 시작했고 버텨내었다. 더욱이 그 중 많은 분들은 단지 버텨내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꿈을 만들고 추구하고 이루어내었다. 간호보조원으로 와서 열심과 정성으로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간호학교학생이 되고 간호사로 자리 잡은 분, 한국에 두고 온 자녀를 3년 만에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지갑 속에 자녀 사진을 내내 간직하고 다니면서 밤낮으로 일하고 공부해서 결국 그 약속을 지키고 또 새로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낸 분, 수백 미터 어두운 지하로 리프트에 실려 내려가서 게르만족의 엄청난 덩치에나 어울릴 것 같은 연장을 들고 일하면서도 학교에 다녀서 독일사회의 중요한 일꾼으로 자리 잡은 분, 자신의 모든 행동이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자신의 등 뒤에 항상 태극기를 달고 다닌다는 기분으로 항상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녔다는 분, 어렸을 때 동네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 받는 이웃을 보고 의사가 되고 싶었던 꿈을 간호보조원으로 와서 의대를 졸업하고 결국 의사가 되어 이루어낸 분, 의대를 다니는 동안에도 한국의 동생들 공부시키고자 주야로 근무하고 주말과 방학에도 일하고 타 병원 야근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분 등... 이 분들의 인생사를 자세히 듣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지만, 한편으로는 ‘참 대단하다, 자랑스럽다, 존경스럽다’는 느낌과 함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막막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 자신의 삶에 자신이 책임을 지고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파독광부·간호사들의 성공만 이룬 것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룬 원동력이 되었다. /사진=미디어펜

사회의 전반적 특성을 개인주의 문화와 집단주의 문화로 구분해 볼 때,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집단주의 문화로 규정되는 반면 독일사회는 개인주의 문화로 규정된다. 집단주의 문화는 공동의 운명, 목표, 가치를 가진 사회집단이 중심이고 중요하며 개인은 그 집단의 구성요소로 존재한다.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개인 고유의 특성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그 사회적 구조 내에서 맺고 있는 인간관계망으로 규정된다. 반면 개인주의 문화는 각 개인을 다른 사람과 분리된 독립된 존재로 보며, 사회 집단보다는 개인의 목표와 고유성을 더 중요시한다.

자신이 속했던 가장 중요한 집단인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자란 한국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에게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마음으로는 가족에 소속되는 것이지만 물리적으로는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내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3년이란 계약기간 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 광부와 간호사들은 다시 가족에 심리적·물리적으로 합류함으로써 가족 집단을 회복하였지만, 독일에 남기로 결정한 경우에는 기존의 가족 집단을 떠나서 새로운 사회, 즉 개인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 변화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개인주의 사회에도 집단은 존재한다. 가족도 존재하고 인간관계도 존재한다. 그러나 개인주의 문화에서 관계성은 양가적이다. 즉 개인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필요하고 집단에 소속하는 것이 필요하나, 그 관계를 유지하려면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비용-효과라는 관점에서 관계와 집단에 접근한다. 관계 참여·유지 비용이 효과를 상회하면 그 관계를 떠나고, 개인적 목표가 달라지면 관계도 새로운 것으로 창출한다.

한국이라는 집단주의 사회를 떠나서 독일이라는 개인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 변화된 파독 광부·간호사들이 독일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화적 변환은 유·불리의 양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소속감을 느꼈던 집단(특히 가족)과 같은 소속감을 주는 집단은 독일에서 찾기 어려웠을 것이고, 이는 깊은 외로움과 동떨어진 느낌, 그리고 한국에 대한 뼈아픈 그리움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 자율성과 자기성취를 강조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한국인의 성실성과 목표의식은 독일인들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개인주의 문화는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삶을 중시하며 이러한 점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집단에 소속되었는지에 따라서 ‘우리’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각 사람을 하나의 고유한 개인으로 인정하고 개인적 성취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사회에 적응하고 자신의 꿈을 이뤄낸 과정에서 독일인들의 도움을 많이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5명의 동생이 있는 장녀가 간호보조원으로 독일에 와서 의대에 가고 싶었으나 언어장벽과 업무계약으로 여의치 않았을 때 근무시간을 조정해 준 간호과장의 배려로 야간고등학교를 마치고 의대를 진학할 수 있었던 것도 본인의 뚜렷한 목표와 그 성취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독일인이 높이 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개인이 목표 달성을 위해서 스스로 책임 있고 성실하게 노력하였던 것이 주변의 도움을 이끌어낸 것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삶에 자신이 책임을 지고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파독광부·간호사들의 성공만 이룬 것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룬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가족을 중시하고 가족을 위한 희생을 마다 않은 수많은 부모형제자매들이 ‘죽어라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빠른 기간에 경제적으로 번영한 서구사회를 따라잡고, 서구사회의 개인주의적 가치까지 많이 배우게 되어서 우리 사회의 문화도 많이 변화되었다. 전통적 집단주의 문화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에 더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서구적 개인주의 문화로 더욱 다가가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양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한 소위 ‘개인주의’는 사실상 서구 선진국의 발전을 이끈 개인주의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혁명 무렵에 공동체적 사회복지보다 개인적 권리를 중요시하는 경향을 일컫는 의미로 개인주의(individualism)가 거론된 이후, 개인주의는 개인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강조한다. 개인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만큼 개인의 책임도 중요함을 인지하고, 개인적 성취에 기초하여 자기정체성을 규정한다.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삶을 지향하는 한편 타인의 정직성과 고결성도 존중해야 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는 주장하면서도 개인의 책임은 경시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권리는 소중하게 여기지만 타인의 권리는 무시한다. 개인적 성취로 자기정체성을 규정하려는 노력은 부족하고 사회가 개인을 책임져주기를 요구하기까지 한다. 개인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려는 노력을 뒷받침하고 정당하게 보상하는 사회는 개인주의 문화의 안전장치이지 개인의 책임을 대신 져주는 주체가 될 수는 없다.

   
▲ 부모가 재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은 서구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한국사회에는 흔히 일어나고 있다. 게임에 빠져서 유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아버지에게 ‘의도성이 없었다’며 징역5년이 선고되기도 한다. /사진=미디어펜

현재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의는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원래 개인주의 문화는 핵가족이 가족의 단위로 여겨지므로 부모가 핵가족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시된다. 자녀가 독립된 성인으로 자라날 때까지 부모가 자녀의 안위에 책임을 지고 보살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부모세대들 중 일부는 자신의 부모들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의존하는 것에는 익숙하나 자기 자녀를 보살피고 책임지는 것은 감당하고 싶지 않은 듯 보인다.

부모가 재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은 서구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한국사회에는 흔히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게임에 빠져서 유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아버지에게 ‘의도성이 없었다’며 징역5년이 선고되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건 개인주의가 아니라 무책임이자 방종이고 비윤리에 불과하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권장하고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나라의 발전을 가져오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하려면 자유와 권리에 수반하는 책임도 반드시 함께 배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책임을 져보지 않고 어떻게 책임지는 법을 배우겠는가?

한국에 다시 갈 일도 없고 별로 가고 싶지도 않다고 하면서도, 간호보조학원을 다닌 도시에서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하자 반가워하면서 나중에 그 곳 바닷가에 가면 조약돌 하나 대신 던져 달라던 분의 부탁이 기억난다. 그 바닷가에 조약돌을 던지는 의미를 내가 다 이해하는 지는 의문이지만. /김혜숙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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