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맑은 공기가 견성을 촉구하는 아침, 햇살은 눈부시다. 햇살 아래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정말 편평하다. 지구는 둥글어서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온다는데, 사람 눈에 보이는 세상은 편만하다. 이 넓은 세상을 사람 눈이 모두 담아내기는 역부족이어서 그러리라.
밤하늘의 별을 보면 또 다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둠을 빈틈없이 메우진 않으나 올려다보면 제법 많은 별이 보인다. 보이는 별을 머리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상식이 필요하다.
내 눈에 보이는 별빛은 아주 오래 전에 별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이다. 게 중에는 이미 소임을 마치고 소멸한 것도 있음도 상식이다. 또 신대륙을 찾은 인류가 맞이한 번영과 희망을 향후 별에서 찾게 되리라는 미래안내서도 있다.
현대 들어 별과 우주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인사이트를 제공한 멘토는 아마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일 것이다. 학문의 영역에 머물던 천문학을 끌고 내려와 평범한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했고 곧 상식으로 만든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세이건을 소개하는 글은 다채롭다.
천문학자라는 명함에 이어 철학자, 특히 자연과학 대중화 운동가라는 표현이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엄청난 업적과 더욱 강렬한 영향력을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는 인류의 자산으로 솟아있다. 천문학자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니 그의 문학적 소양 또한 의심할 바 못된다. 오죽하면 칼 세이건을 아느냐의 여부가 현대를 살아가는 상식인의 기준이라고 하겠는가.
20세기 다윈이라는 리처드 도킨스가 언론과 인터뷰에서 칼 세이건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을 읽고 강력한 영향을 받았노라고 시인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디 도킨스 뿐이겠는가. 수학자, 철학자, 화학자, 공학자 심지어 군인들이 세이건의 책을 읽고 인생관이 변했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세이건적(的) 시각은 지식인이 구비해야 할 엔진으로 평가된다.
세계 수많은 대학들도 세이건의 글을 읽고 글로벌한 세상을 살아가는 소양을 쌓도록 권유하고 있다. 세이건의 통찰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류의 관점을 우주적으로 승화시켰다. 나아가 인류애라는 잊혀 진 동질감을 깨웠다.
“그러나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수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 ‘창백한 푸른 점 26p, 칼 세이건’
지난 1990년 2월 무인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목왕성 근처에 이르러 지구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가 한 점으로 보인다. /사진=나사
우리가 수능이라고 부르는 수학능력평가시험이 끝났다. 51만 명의 수험생과 부모들의 간절함이 이루어질 바란다. 그러나 시험이라는 제도가 등위와 차별을 위한 것이라서 낙담하고 절망한 수험생들이 있으리라.
“걱정하지 마시라. 세상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라고 위로하고 싶다. 하지만 굽이굽이 세상길을 지나온 꼰대이기에, 암담한 현실을 알기에 차마 말을 하지 못하겠다. 아무리 입 밖으로 소리를 내려 해도 나오지 않는다.
‘한 번의 시험에 인생을 결정짓는 시스템’을 만든 꼰대들이 어떤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겠는가. 생때같은 젊은이들의 죽음 앞에서 무력했던 꼰대들이 조언할 자격이 있을까.
하지만 세이건이 불신을 조장하던 어둠의 시대를 종식시킨 바에 힘입어 용기를 낸다. 감히 절제된 언어로 이렇게 말을 건네고 싶다. 불이 켜지기 전까지 모든 것이 어둠이었으나 불을 켜고 돌아서면 여기저기 밝은 불빛을 보게 되리라는 확신 말이다. 또 어둠은 영원하지 않고 새로운 소망은 늘 샘솟는다는 것도.
“불신하되 미혹되지 않는” 젊음이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세상이 가르치는 승패가 나눈 너와 나뿐 아니라 우리도 있음을 느끼면 더욱 좋겠다.
우리는 작은 먼지 같은 창백한 푸른 점(지구, Pale blue dot)에 사는 작고 작은 존재다. 또 우주의 시간에 비해 찰나 같은 순간을 지나가는 존재다. 그렇기에 낙담과 절망은 허용되지 않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은 제자들에게 설파한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의 발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Carpe Diem!/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