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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속 대규모 투자…정유·석화업계, '빈 살만 훈풍'

2022-11-18 15:05 | 박규빈 기자 | pkb2162@mediapen.com
[미디어펜=박규빈 기자]글로벌 경제 상황이 인플레이션·고금리 등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가 적극 투자에 나섰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가 방한한 직후 발표해 관련 기업들이 '제2차 중동 특수'를 맞는 것 아니냐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롯데정밀화학 공장 전경./사진=롯데정밀화학 제공


18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한-사우디 투자 포럼'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롯데정밀화학은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와 정밀 화학 사업 협력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김교현 롯데케미칼 부회장·김용석 롯데정밀화학 대표가 지난 10일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 투자부 장관과 사전 회동을 한 이후 이뤄졌다. 김 회장과 김 대표는 정밀화학 제품 외에도 다른 고부가 제품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동아시아 역내 1위 암모니아 유통 업체인 롯데정밀화학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연간 50만 톤, 약 5000억 원 규모의 암모니아를 수입하는 최대 바이어다. 롯데정밀화학이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 고부가 정밀화학 제품 생산 기지를 건립하는 이유는 유럽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염소·셀룰로스 계열 제품 관련 선진 시장으로 분류된다. 중동 지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시장 접근성·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게 롯데정밀화학의 설명이다.

앞서 롯데정밀화학은 올해 1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에너지 기업 아람코와 천연 자원·대규모 탄소 격리·신 재생 에너지 잠재력을 활용해 저탄소 암모니아 장기 공급 프로젝트 타당성 조사에 협력하기로 한 바 있다. 또한 아람코의 화학 자회사 사빅·국영 비료 기업 마덴과는 세계 최초 상업 생산된 청정 암모니아를 국내에 도입하기로 계약을 맺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정밀화학 등 높은 부가 가치를 지닌 산업계를 자국에 유치하고자 산업 단지를 조성 중인데, 이에 참여하는 기업들에게는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지 직접 투자를 결정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는 △공장 부지 △전기‧용수 △원재료 등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MOU는 청정 암모니아의 원활한 조달과 유통을 통해 국가 산업 경쟁력 확보와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는 "당사는 수십 년 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암모니아 비즈니스 관계를 쌓아왔다"며 "앞으로도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DL케미칼 여수 공장 전경./사진=DL케미칼 제공


DL케미칼도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와의 MOU 체결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 폴리부텐(PB) 공장 설립을 추진해 새로운 글로벌 시장 도전 기회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DL케미칼은 공장 설립에 앞서 사업성 등을 평가하고,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는 각 정부 기관과 기업들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

DL케미칼은 오픈 마켓 기준 세계 1위 PB 생산 기업이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범용 폴리부텐(C-PB)과 특수 목적 제품인 고반응성 폴리부텐(HR-PB)을 단일 공장에서 병행 생산하고 있다. HR-PB 생산은 전 세계에서 3개 회사만 보유한 기술로, DL케미칼이 국내 최초로 미국 시장에 수출한 기술이다.

김종현 DL케미칼 부회장은 "이번 MOU는 당사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PB 생산 기술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사업 기회를 위해 지원을 약속한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번 기회를 적극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DL케미칼은 지난해 9월 미국 석유화학 기업 크레이튼 지분 100%를 16억 달러(한화 약 2조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글로벌 석유 메이저 로열 더치 쉘의 화학 사업부문을 모태로 하는 크레이튼은 고 부가 가치 기능성 제품을 생산한다. 

DL케미칼은 크레이튼이 보유한 800개 이상의 특허를 활용해 핵심 소재의 국산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아울러 2026년까지 석유화학 사업에 2조 원을 투자해 글로벌 톱 20 석유화학사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다.

에쓰오일 울산 공장 전경./사진=에쓰오일 제공


사우디 아람코의 손자회사인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울산에 70억 달러(한화 약 3898억 원)를 투자해 세계 최대 수준의 정유·석유화학 '스팀 크래커'를 구축하고, 단순 정유사에서 석화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 한다는 게 샤힌 프로젝트의 골자다. 이로써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제품은 연산 최대 32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팀 크래커는 원유 정제 과정 중 만들어지는 나프타·부생 가스 등 다양한 원료를 투입해 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벤젠 등 석유화학 기초 유분을 생산한다. 플라스틱을 포함한 합성 소재의 원료로 쓰이는 폴리에틸렌도 공급한다.

에쓰오일은 스팀 크래커에 원유를 석유화학 물질로 전환하는 기술인 아람코 'TC2C(Thermal Crude-To-Chemicals)' 기술을 적용하고, 플라스틱을 비롯한 합성수지 원료로 쓰이는 고 부가 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한다. 내년 중 건설 공사를 시작하고 2026년 완공할 예정이다.

TC2C는 정유 공장 내 낮은 부가 가치를 지니는 중유제품을 분해하고 스팀 크래커 원료로 바꾸는 공정을 의미한다. 에쓰오일은 TC2C로 기존 크래커 대비 경쟁력을 확보할 전망이다.

에쓰오일 측은 샤힌 프로젝트가 마무리 된 이후에는 석화 사업 비중을 생산 물량 기준 현재의 2배 이상인 25%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는 건설 기간 중 하루 최대 1만7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3조 원 이상의 울산 지역 건설업계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분석된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요즘처럼 글로벌 유동성 경색으로 불경기를 겪는 중에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해 100조 원 이상의 계약을 맺고 떠난 건 가뭄의 단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이 같은 통 큰 투자는 윤석열 정부의 친 기업 정책과 외교력이 뒷받침 된 성과"라며 "'제2차 중동 붐'이라고 할 만한 이번 기회에 오일 머니를 발판으로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가 새로운 모멘텀을 맞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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