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발발 이후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유례없는 ‘유동성 파티’가 열렸던 한국경제는 지난해 8월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이후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섰다. 그 결과 약 1년 2개월 만에 2.50%포인트가 상승하면서 2012년 이후 10년 만에 기준금리 3%대 시대를 맞게 됐다. 금리가 급속도로 오르는 상황에도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운데 금리 인상은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미디어펜은 고금리 시대를 향해가는 현시점 금융과 산업, 부동산 등 경제 전반에 걸쳐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정치권에서 필요한 역할에 대해 가늠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이보라 기자] 금융권의 금리 인상 랠리와 주식·부동산 시장 침체로 시중 자금이 안전자산인 예·적금으로 몰리는 ‘역머니무브’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이 지속되면 향후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채권시장의 신용스프레드 확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시중은행으로 자금이 쏠릴 경우 2금융권 유동성 부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당국은 속도조절을 요청하고 나섰다.
금융권의 금리 인상 랠리와 주식·부동산 시장 침체로 시중 자금이 안전자산인 예·적금으로 몰리는 ‘역머니무브’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총수신 잔액은 1900조1421억원으로 전월보다 46조8657억원 늘었다. 이 중 정기예금 잔액이 808조2276억원으로 한 달 사이 47조7231억원 급증했다.
올해 들어 정기예금 증가 규모는 166조6107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증가폭(40조5283억원)을 4배 이상 웃돌았다. 10억원 이상 예치된 정기예금 계좌도 지난해 하반기 4만4000좌에서 올 상반기 5만좌로 증가했다. 2002년 통계를 처음 집계한 이후 처음으로 5만좌를 넘어섰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으로 지난해 연말 1%대였던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1년 새 5%대로 치솟았다. 이는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올들어 기준금리가 6차례 오를 동안 은행들은 예적금 금리를 즉각 인상해왔다. 이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은행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금융권의 수신금리 경쟁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오전 열린 통화정책방향 희외에서 연 3.00%인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올렸다.
반면 증권 예탁금은 감소세가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8일 기준 46조9386억원을 기록하며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올 초 대비로는 25조원 가량 줄었다. 투자자예탁금은 개인투자자가 증권사 계좌에 넣어둔 주식 매매 자금이다.
이처럼 역무브머니 현상이 가속화되자 금융당국은 대출금리 상승 등 부작용을 우려하며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고 나섰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전날 ‘금융권 자금흐름(역머니 무브) 점검·소통 회의’를 개최하고 최근의 역머니무브 현상이 과도한 업권 내 경쟁으로 이어지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수신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의 조달비용이 늘면서 대출금리도 빠르게 상승하는 상황이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신규 취급액 코픽스는 지난달 3.98%로 전달 대비 0.58%포인트 올랐다. 인상률로만 보면 17.05% 올랐다. 이후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8%를 넘어섰다.
또 회의 참가자들은 최근 역머니무브 현상에 대해 “글로벌 긴축에 따른 급격한 금리 상승, 시장 불확실성 증가로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생긴 이례적이고 특이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참가자들은 은행권은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한 반면, 제2금융권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등 업권 간에 자금조달 여건이 양극화되고, 연말 결산을 앞둔 만큼 이러한 변동성이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은행이 고금리 예금으로 시중 자금을 흡수하면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취약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유동성 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 우량채 등을 통해 자금조달이 가능한 시중은행과 달리 저축은행은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창구가 예·적금으로 제한적이다.
저축은행은 그간 시중은행보다 높은 수신금리를 내세워 고객을 유치해왔으나 시중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그 간격이 좁혀지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시중은행이 정기예금 금리를 5%대로 올리자 저축은행권도 연 6%대에 진입한 상황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은 대출금리 상승 등으로 이어져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업종 간, 업권 내 과도한 경쟁을 자제해달라”고 주문했다.
[미디어펜=이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