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지적 거인' 복거일 선생의 지식 탐구에는 끝이 없다. 소설과 시, 수필 등의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면서도 칼럼과 강연 등으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방대한 지적 여정은 문학과 역사를 뛰어넘는다. 우주와 행성탐구 등 과학탐구 분야에서도 당대 최고의 고수다. 복거일 선생은 이 시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창달하고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시장경제 학파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고 있다. 암 투병 중에도 중단되지 않는 그의 창작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은 지금 '세계사 인물기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디어펜은 자유경제원에서 연재 중인 복거일 선생의 <세계사 인물기행>을 소개한다. 독자들은 복거일 선생의 정신적 세계를 마음껏 유영하면서 지적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이 연재는 자유경제원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다. [편집자주] |
▲ 복거일 세계사 |
우리 경제가 큰 어려움을 맞으면서, 그런 어려움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자연히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이 조명을 받고 있다. 묘하게도, 지금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경제학자는 18세기에 활약한 사람이다.
경제학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이름과 그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을 잘 안다. 스미스가 활약하던 때부터 2백년이 넘는 동안에 경제학은 여러 모로 크게 발전했다. 그래서 지금 경제현상들에 대한 진단은 상당히 정확하고 처방은 아주 구체적이다. 사회과학의 다른 분야들 가운데 그런 상태에 이른 분야는 없다.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학문을 '사회과학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만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경제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이 경제를 얘기할 때는 현대의 뛰어난 경제학자들보다 스미스를 훨씬 자주 인용한다. 어째서 그런가? 스미스는 1723년에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엔 관리들이 많았다. 그가 기업가들에게 별다른 호감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분명히 그런 배경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전형적인 중산층 지식인으로 대학교수와 세관의 관리로서 평탄한 일생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를 빼놓으면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친 여인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쓴 책들이 아니었다면 그는 기억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스미스가 활약했던 때는 아직 백과전서식 지식인이 나올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능력있는 사람들은 학문들 사이의 경계를 어렵지 않게 뛰어넘어 여러 분야들에서 업적을 남겼다. 스미스도 그런 석학들 가운데 하나였으니, 그는 “도덕철학(Moral philosophy)” 교수로서 지금의 사회과학 모든 분야들을 섭렵했다.
스미스가 여러 분야에 걸쳐 쓴 저작들 가운데 대표작은 널리 알려진 『국부론』이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해인 1776년에 나온 이 책은 근대 경제학의 형성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국부의 성격과 요인들에 대한 연구”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라는 제목 자체가 경제학의 핵심적 주제를 간결하게 표현했다. 그가 “경제학의 창시자”라고 불려온 것은 그래서 충분히 정당화된다.
『국부론』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8세기가 저물기 전에 유럽의 주요 언어들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일반인들만이 아니라 경제학자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19세기 전반까지 그의 뒤를 이은 경제학자들의 저작들은 모두 그 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드물게 그 책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근대에 사회과학의 저작들 가운데 그 책만큼 큰 성공을 거둔 책은 없었고,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nvation of Fau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1859)』을 빼놓으면,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없었다.
『국부론』에서, 실은 그의 사상에서, 핵심적 부분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징된다. “개인마다 그의 자본을 국내 산업을 지원하는 데 쓰고 그 산업의 생산물이 가장 가치가 크도록 그 산업을 움직이려고 힘이 자라는 데까지 애쓴다. (중략) 일반적으로 그는 실제로는 공익을 높이려고 애쓰지 않고 얼마나 그것을 높이는지 알지도 못한다.
외국의 산업 대신 국내 산업을 지원하는 것을 선호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안전만을 의도한다. 그리고 국내 산업의 생산물이 가장 가치가 크도록 국내산업을 움직임으로써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의도한다. 그리고 그는 많은 다른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에서도 그의 의도의 한 부분이 아니었던 목적을 북돋우도록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인도된다. (중략)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는 실제로 사회의 이익을 북돋우려고 의도했을 때보다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북돋운다.” 말을 바꾸면, 개인들의 자유로운 교섭은 혼란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결정된 질서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런 사상에서 자유무역과 규제 철폐를 지향하는 정책들이 나왔다. 감탄스럽게도, 그것은 대부분의 현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고 저번에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에게 권고한 처방이기도 하다.
『국부론』은 이처럼 뛰어나고 중요한 저작이지만, 그 책엔 새로운 이론이나 정책이 들어 있지 않았다.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의 『경제 분석의 역사(History of Economic Analysis』(1952)에 따르면, 『국부론』은 1776년에 아주 새로웠던 분석적 생각, 원리 또는 방법을 단 하나도 포함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 들어있는 정책들은 휴고 그로티우스나 사무엘 폰 푸펜도르프(Samuel von Pufendorf, 1632~1694)와 같은 17세기 학자들에 의해 이미 또렷이 제안된 것들이었다.
실은 그는 많은 선구자들에게 힘을 입었으니, 그가 빚을 진 사람들엔 스콜라 철학자들, 자연법 철학자들, 중농주의자들에다 그가 거세게 비판한 중상주의자들까지 넣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진 빚을 인정하는 데 아주 인색했다.
스미스가 한 일은 그런 학자들의 저작들 속에 흩어진 구슬들을 꿰어 조리 있는 체계로 만들고 그것들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여러 원천들에서 흘러나온 방대한 자료들을 몇 개의 유기적 원리들로 묶어서, 그는 그때까지 나타난 적이 없는 우람한 경제학의 체계를 이룬 것이었다. '서 말의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일은 꼬박 스물다섯 해의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뛰어난 지적 업적들이 모두 인정받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거기서도 행운이 따라야 한다. 다행히, 스미스는 행운 가운데 가장 큰 행운을, 곧 시대를 잘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이미 자기 시대의 지평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것들을 힘차게 주장했고 그의 이론이 그것들을 떠받치도록 했다. 그는 시대에 앞선 것들을 주장해서 인기를 얻지 못하는 불운을 피할 수 있었다.
『국부론』의 성공에 기여한 또 하나의 요소는 반어적으로 스미스의 경제학자로서의 한계였다. 만일 그의 분석이 더 깊었다면, 그래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이론들을 내놓았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깊은 분석을 통해서 평범한 상식을 넘는 진리들을 밝히려는 야심은 없었다. 『국부론』은 경제 전문가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지적 내용을 지녔으면서도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쉬웠다.
『국부론』의 성공에 기여한 셋째 요소는 스미스의 이론과 정책들이 아주 느슨하고 모호하게 기술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주장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었고 여러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었다. 자연히, 그는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자유주의 경제학과 마르크스의 경제학이 함께 스미스에 뿌리를 두었다는 사실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스미스는 절약된 물자들이 자본을 이루어 생산 활동에 투입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저축의 미덕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자본가들의 소득인 이윤을 정당화하는 바탕을 마련한 셈이다.
다른 곳에선 자본가들이 생산에 기여함이 없이 노동자들로부터 생산품의 일부를 가져간다고 설명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착취 이론”의 바탕을 마련했다.
시대가 요청하는 것을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그러고 여러 가지 해석들이 가능할 만큼 모호하게 쓰는 것은 역사가 거듭 보여준 지적 성공의 비결이다. 이 세상에서 성공을 거둔 종교들의 경전들은 모두 그 두 가지 특질들을 갖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라고 여기는 마르크스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