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
[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일과 투자는 마라톤과 같은 것인데 한국은 백미터를 전력 질주하는 식으로 달려왔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부작용이 생겼다고 그는 평가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메리츠운용 직원들이 다른 것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집중토록 하는 것이 리 대표의 목표가 됐다. 그래서 회식도 없앴다. 한국 회사 특유의 집단문화가 고객의 수익률을 좀 먹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회사에서는 회식이 없어요. 다음날 일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회식을 하라고 해도 못하죠. 그런데 한국 회사는 업무 자체가 불확실한데다 ‘못해도 다 같이 못하니까 괜찮다’라는 집단의식에 기대 밤늦게까지 회식을 합니다. 금융회사는 전문성과 철학이 중요하고 고객의 신뢰는 목숨처럼 지켜야 합니다. ‘저 회사는 내 돈을 심사숙고해서 수익을 벌어주겠구나’라는 인식을 고객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고객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펀드의 수만 줄이는 게 아니라 회전률도 크게 낮췄다. 펀드의 회전률이 높다는 건 주식시장을 ‘도박장’으로 생각하는 매니저나 하는 짓이라는 신념에서다. 직원들 보너스도 펀드로 주고 퇴직연금도 펀드로 한다. 직원부터 노후대비를 펀드로 안 하면서 고객에 펀드를 권하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에 대해 이처럼 강한 확신을 갖는 것은 그 역시 한국 시장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린 경험이 있어서다. 지난 1991년이후 한국시장에서 돈을 잃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삼성전자 주식을 2만원에 사서 140만원에 팔고, SK텔레콤 주식을 2만원에 사서 440만원에 팔았을 정도로 큰 이득을 봤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잃은 것은 주식투자라는 이름으로 ‘도박’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언제 주식투자를 해야하나?’고 물을 것이 아니고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주식이 싼지 비싼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투자 타이밍을 논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자본주의에서 ‘하이 리스크 하이리턴’ 원칙은 변하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은 고객도 금융사도 원금보장이라는 말을 합니다. 원금보장은 자본이 일을 안 한다는 거죠. 사람이 일을 안 하고 누워만 있으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집 밖에 나오면 차에 치일 수도 있죠. 집안에 있는 것보다는 위험합니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그는 월급의 5~10%를 펀드나 주식에 투자했다가 55세에 찾는 것을 조언한다. 퇴직연금은 전부 주식에 투자하고 ‘이거는 노후다’ 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노후준비를 안 하고 차사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대로 다 돈을 쓰고 있지만 노후에 노동력이 안 될 때는 편의점으로 알바하러 가야한다.
그는 “미국 생활 초반 연봉이 2만 달러에 불과했는데 월급의 10%를 무조건 펀드에 가입했다. 지금 그 돈이 100만 달러 이상 된다”며 “그래서 복리가 무서운 거다. 워런 버핏 같은 세계적 부자의 수익률도 연간 17~18%밖에 안 된다. 커피살 돈으로 만원씩 20년 전부터 펀드에 투자하면 노후에 10억원 이상의 돈을 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보다 투자를 우선시 하는 그의 성향에 따라 메리츠운용은 소유하고 있던 모든 차량을 팔아버렸다. 한국처럼 대중교통이 잘 돼 있는 나라에서는 자동차가 필요 없어서다. 사장실도 가장 좋지 않은 방으로 잡았다.
팀장 본부장이 없다보니 한국회사 특유의 보고서 문화도 사라졌다. 보고는 직원들이 리 대표에 이메일로 직접 한다. 복잡한 보고절차가 사라지면서 정보의 왜곡이 없어졌다.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졌다. 그래서 외국 고객이 운용사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것도 조직도다. 그가 일반직원과 차별되는 점은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가 안 적혀 있다는 것. 아줌마들이 종목 선정해달라고 전화를 하도 걸어와서다.
투자하는 종목의 선정은 경영진을 보고 한다. 능력과 도덕성에 주주를 생각하는 마음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이런 경영진은 기업의 시가총액이 늘어나서 부자가 될 것이고 투자자 역시 함께 재산이 불어난다. 외국인의 투자를 가로막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역시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후진 기업의 주가는 떨어지고 기업가는 교도소에 가는 사회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투명한 지배구조 없는 기업은 결코 성장할 수 없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장기투자를 강조하면서 코리아펀드가 가치펀드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서는 “세상에 비가치에 투자하는 펀드는 없다. 가치투자가 변동성이 적은 자산주에 투자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성장성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며 “10~20년 뒤에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베스트 아이디어’ 펀드가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식투자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했다.
“주식투자는 나무를 심는 겁니다. 나무를 심었으면 열매까지 따 먹어야지. 땔감으로 왜 때우나요? 끝까지 기다렸다가 열매를 따먹기 위해 여유자금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타이밍을 노리는 주식투자는 제일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 이렇게 얘기를 해도 매니저가 ‘펀드에 10% 수익 낫는데 팔까요?’라고 물어보면 때려주고 싶어요.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