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무소불위. 국회 선진화법 낳은 후진국회에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국회가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을 놓고 끼워넣기 야합을 한 국회법 개정안이 탈을 냈다. 공무원연금개혁안을 놓고 지루한 싸움을 벌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의 발목잡기에 쫓긴 새누리당이 법위의 독재국회에 눈을 감은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무원연금개혁안을 놓고 국민연금 연계, 기초연금 연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 등의 발목잡기를 거듭하다 막판에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문제삼아 국회법 개정안을 끼워 넣었다.
▲ 여야가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사전에 알고도 처리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1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킬 우려가 크다"며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법안 처리 과정에서 공무원연금과 관계없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문제를 연계시켜 위헌 논란을 가져오는 국회법까지 개정했는데 이것은 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해 현 정부 들어 국회를 통과한 법률에 대해 첫 거부권을 행사할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이어 “과거 국회에서도 이번 개정 국회법과 동일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않은 전례가 있는데, 이것은 국회 스스로 이번 개정 국회법이 위헌소지가 높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라 덧붙였다.
국회법 개정안이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 벗어나 위헌이라는 의견은 이미 국회에서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5월 1일 국회운연위원회 소속 1차 회의를 담은 속기록에 따르면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이 행정입법 통제에 반대하자 구기성 국회 사무처 입법차장은 “개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행정입법권을 좀 침해한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안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당시 야당 소위 소속 의원들도 “김도읍 의원님이 합리적으로 말씀하신다” “아주 좋다.(결과를 알려주는 절차)필요하다”면서 찬성했다.
하지만 5월 29일 소위는 이를 뒤집었다. 여야 원내지도부의 합의를 빌미로 야당 의원들은 시종일관 삼권분립 위배를 주장하는 김도읍·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에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것을 깨자는 것이냐”며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 방안을 관철시켰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법조계에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한 국가기관의 권한을 국회가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헌법은 상위법령에서 위임되거나 법령 시행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시행령을 자체적으로 만들도록 행정부에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했는데 개정 국회법은 이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행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위 권한도 침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행정입법을 견제하는 의회 권한 관련 법안에 대해 위헌 판결이 나온 사례가 있다. 미국은 지난 1983년 ‘치다 사건’이라 불리는 행정부와 의회의 권한 논쟁에서 행정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법 개정안에 의회가 반발했고 결국 법적 갈등으로 번져 의회의 거부권에 위헌판결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1996년 입법적 거부권을 상세히 규정하는 ‘연방심사법’이 마련됐고 이에 따르면 주요 행정입법에 대해 의회는 수정권을 가질 수 없지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의회의 거부권은 아직까지 한번도 사용된 적은 없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헌법학자들도 우려를 나타내기는 마찬가지다. 헌법학자들은 “국회법 개정안대로라면 대통령이 300명이 되는 나라가 될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이 시행령 권한까지 가져가게 되면 지역을 따지고 당파를 따르다 보면 ‘입법부 독재’로 흐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개정 국회법이 시행될 경우 정부 정책이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휘둘리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회가 입법권을 넘어 행정권까지 장악할 경우 신속하고 일관된 정책 추진은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법 개정안이 처리되자말자 모법과 상충되는 시행령 찾기에 나섰다. 새정치연합은 우선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노동관계법, 누리과정 예산 및 영유아법 등 최근 논란이 된 사안부터 수정을 촉구하고 정부와 맞설 각오다.
고삐 풀린 국회의 무한독재 채비를 하고 있다. 민생법안을 뒤로 한 채 궤도이탈만을 일삼는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더욱 차가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