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구태경 기자] 회계투명성 강화를 목적으로 정부가 대대적인 국고보조금 전수조사 실시 등 전방위적 노동조합 압박이 이어지자 노동계가 재차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노조 규율이 주요 선진국 대비 상대적으로 완화돼 있어 현행보다 강화된 재정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는 오는 3월 15일까지 지난해 1244개 노조 및 시민단체에 17개 사업을 통해 지원된 국가보조금 2343억 원에 대해 전수조사키로 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서 지시한 국가보조금 관리체계 전면 재정비에 따른 것이지만, 이정식 고용부장관의 노조 재정 투명성 강화 기조에도 부합한다.
고용부는 지원 대상 선정의 적법성, 회계 처리 투명성, 보조금의 목적 외 사용·횡령 등 부정 집행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1차 전수 서면 점검 후 문제가 확인된 민간단체에 대해서는 2차 현장 점검에 나선다. 이를 위해 고용부 본부와 지방청, 산하 기관에 대해서는 별도의 특별감사반을 편성·운영키로 했다.
고용부는 전수 점검 과정에서 부적정 집행이 확인되면 부정 수급액을 반환하도록 조치하고, 거짓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지급받는 등 부정 청구가 확인되면 최대 5배 제재금 부과와 수사기관 고발·수사 의뢰, 향후 보조금 사업 수행 대상 배제 등 강한 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다.
또한 이달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3분기까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와 같은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히면서 조합원 1000명 이상 단위 노조와 연합단체에는 회계장부 비치·보존의무를 이행하라는 공문도 발송했다.
현행 노조법에서 정한 서류의 비치 및 보존 여부를 스스로 확인하고 이를 자진시정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자율점검 기간 후에는 고용부가 각 대상 노조를 상대로 노조 회계서류 등에 대한 보존의무 이행 점검결과보고서를 제출토록 했다.
이화 함께 26일부터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노사 부조리 센터’를 통해 △노조 가입을 강요하거나 탈퇴를 방해하는 행위 △노조 재정의 부정 사용 △노사 폭력·협박 행위 및 채용 강요 등을 신고 받는다.
이에 더해 지난 18일 국정원과 경찰이 간첩혐의로 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등에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전방위적 압박이 거세지자, 민주노총은 다음날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고물가와 금리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싸우겠다”며 오는 5월 1일(노동절) 총궐기를 비롯 7월에는 총파업을 예고했다.
정부의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에 대해 한국노총 관계자는 “한국노총은 가장 큰 국고보조 사업으로 매년 약 18억 원의 노동법률상담권리구제사업을 고용부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업무수행 내용과 기록은 상담사업 추진 실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고용부로 전달된다”며 “여기에는 다과 영수증 하나까지 정리돼 ‘e나라도움’이라는 회계시스템에 기록되고, 이는 기획재정부를 비롯 각 부처에서 꼼꼼히 체크한다.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국고보조금 횡령은 쉽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1일 법원은 한국노총 소속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진병준 위원장에게 11개 노조비 횡령혐의 중 10개인 7억 9100만원에 대해 모두 유죄를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한 바 있다. 진 전 위원장은 2019년부터 3년여간 조합비에서 현금을 인출해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직원들에게 상여금을 준 뒤 자신의 가족 계좌로 되돌려 받는 방법으로 노조비를 횡령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의 노조법은 노조 대표자가 6개월에 1회 이상 회계감사원을 통해 노조의 모든 재원 및 용도, 현재의 경리 상황 등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그 내용과 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노조대표자는 회계연도마다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을 공표하고 조합원의 요구가 있을 때는 이를 열람하게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는 3년 동안 보존해 노조 사무소에 비치해야 한다. 이러한 의무 규정을 위반할 경우 노조 대표자에게는 5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렇다면 주요 선진국의 노조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먼저 미국의 경우 노조는 노동부 장관에게 연차회계보고서 제출 의무가 부과된다. 이렇게 노동부에 제출된 보고서는 대외 공개되며 열람‧사본 제공 역시 가능하다.
이 보고서에는 자산과 부채, 수령금과 그 출처, 총액 1만 달러 이상을 수령한 조합임원과 노조 피용자에게 지급된 봉급 및 기타 지불금, 임원‧피용자 또는 조합원에 대한 총액 250 달러 이상의 직‧간접 대부금 등이 기재된다.
또한 노동조합 임원‧근로자는 이해관계 충돌이 발생 가능한 재산목록에 관한 정보를, 사용자는 노조에 대한 급부를 노동부 장관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노동부 장관은 법 위반 관련 조사권을 가진다.
물론 노동조합은 조합원에게 해당 연차회계보고서 및 보고서 확인에 필요한 회계장부, 기록, 계좌의 열람을 허용해야하는 의무도 가진다. 이러한 의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만 달러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며, 양자가 병과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강한 처벌이 따르는 것이다.
영국은 전통적인 집단적 노사자치주의에 기반해 노동조합의 재산관리를 노동조합이 신탁해 수탁자의 책임으로 관리하되 그 수익자는 노동조합으로 하고 조합원은 직접적인 신탁 이익자가 아니어서 노동조합 재산 감시에 적극적인 접근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1980년대 전후로 전국적인 불법파업이 일어나자 국가의 개입을 통해 노동조합 내부 운영의 자율 보장을 민주주의 원칙 보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정보접근과 회계관련 조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현재 영국 노조는 매년 노조의 명부를 관리하는 인증관(통상산업주장관 임명)에게 연차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조합원에 대해 설명할 의무를 가진다. 여기에는 사무실주소, 조합원수, 대차대조표와 수익계정, 내역별 상세사항, 현금흐름표, 공인회계사가 작성한 감사보고, 노동조합규약, 노동조합 간부 변경내용 등이 담긴다.
인증관은 회계서류 등 제출 요구 및 재무 조사 권한을 가지며, 조사결과를 해당 조합과 회계감사원 등에게 제공하고 정부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조합원은 조합의 회계에 대해 설명을 요구할 수 있으며, 현재는 물론 과거 회계정보에 대해서도 접근조사권한을 가진다.
일본의 경우는 대외 공개의무는 없으며, 노조에 의해 위촉된 직업적인 자격이 있는 회계감사원에 따른 회계보고를 매년 1회 이상 조합원에게 공표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는 노조가 기업별로 조직되고 규모 역시 크지 않아 노조의 민주적 운영에 관한 최소한의 규정만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노조 조합비 등과 같은 재정관련 법적 다툼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판단으로 해결되고 있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지식융합학부 교수는 “국내 노조 규모나 조합비 징수 축적 관행을 고려하면 국내 노동조합에 대해 현행보다 강화된 재정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주요국의 사례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규율 방식이나 국내 노동조합 중 영향력 있는 실체를 고려하면 노조 재정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은 필요한 것으로 진단된다”고 언급했다.
이상희 교수는 “주요국의 노조 재정 회계 투명성 제도는 규율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치밀한 노조 재정 회계감사가 필요하다는 보편적 규율 내용이 확인된다”며 “국내 노조의 재정 회계 관련 비리나 관리 기능을 보면 영국 미국과 같은 거대 노동조합 재정 규모와도 다르고 독일 프랑스와 같이 오랜 전통으로 규약의 자치 기능이 잘 구축돼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국내 노조의 조직 규모나 국내 노조의 재정 회계 비리 실태를 고려하는 규율 방안으로 모색될 수밖에 없다”며 “국내 노조 중 대기업과 일정 규모 이상의 공기업 노조의 경우 내부 또는 외부 회계감사를 전문적 독립적 기능을 할 수 있는 회계사 자격증 있는 감사 체계로 의무화할 필요는 없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소규모 노조의 경우 외부 회계감사 체계 의무화 실현가능성이 문제될 수 있는 만큼, 외부회계감사 의무화는 일정규모 이상의 노동조합에 대해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교수는 “국내 노동조합 중 대기업과 일정규모 이상의 공기업 노동조합의 경우 회계감사 이외에 업무감사 기능을 활성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며 “회계 투명성뿐만 아니라 노조 업무 투명성도 제고 필요성도 있는 만큼, 노조의 업무감사 의무화 여부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