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무접촉을 이어오던 한국과 일본이 고위급협의를 예고하면서 해법의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주체가 되는 ‘제3자 변제’를 공식화한 가운데 최근 일본언론이 ‘피고기업 참여 배제’를 언급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31일 복수의 양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기금 참여에서 일본 피고기업의 직접 관여를 피하고, 사과 방식은 과거 정부의 담화를 계승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2018년 대법원의 배상판결을 확정받은 미쓰비시 중공업과 일본제철이 배상과 사과에서 모두 빠진다는 것이다. 일본측이 끝내 우리 대법원 판결 내용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요미우리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문제는 해결됐다’는 일본의 입장이 확고해서 한국정부도 피고기업의 직접 관여가 어렵다는 판단에 기울었다”고 부연했다.
지지통신도 “일본정부는 일관되게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어서 국가가 주도적으로 사과나 자금 출연에 응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지통신은 이어 “다만 한국측에 일정한 배려를 보일 필요는 있다고 판단해 ‘통절한 반성과 짐심어린 사과’를 명기한 1995년 무라야마 도이치 총리 담화와 2015년 아베 신조 총리가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를 계승하는 방안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일본언론의 보도는 지난 30일 한일 외교국장협의가 진행된 이후 나온 것으로 당시 외교부 당국자는 미쓰비시와 일본제출 두 피고기업의 참여 여부가 쟁점이었으며 이에 대한 인식차 때문에 고위급협의를 병행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대리인단인 임재성 변호사(왼쪽)가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1.12./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윤석열정부 들어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징용배상 해법을 위해 양국간 협의를 진행해왔으나 결국 일본정부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징용배상 판결에 따라 일본이 한국기업에 조치했던 수출규제는 해제될 전망으로 일본의 보복 조치만 풀게 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피고기업이 속해 있는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등을 통한 기부 방안을 일본정부가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있다. 하지만 일본언론도 관측하듯이 재단 기금의 주축은 한국기업의 기부금이 될 전망이다.
현재 정부는 일본 전범기업의 기금 참여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기 위해 고위급협의를 병행한다는 방침이어서 최종 결론이 주목된다. 특히 한일 장·차관급 협의가 잇달아 진행될 것이란 전망도 나와 징용 해법을 완성하는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것으로 관측된다.
1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이달 중순 열리는 한미일 외교차관 정례협의에서 조현동 외교부 1차관과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대면협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달 17~19일 독일에서 열리는 뮌헨안보회의(MSC) 계기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열 가능성이 있다.
한일 외교당국간 고위급협의에서 징용 해법이 도출된다면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고 ‘한일 셔틀외교 복원’을 선포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3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이 초청받을 경우 이를 계기로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
한편, 외교부는 앞으로도 피해자측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서 이해를 구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징용 피해자측에서는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이 없는 해법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어 논란도 지속될 전망이다. 광주 지역 23개 시민사회단체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피고기업들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배상 명령을 이행해야 할 대상이지 성의를 구걸할 대상이 아니다. 피해자를 욕보이는 구걸 외교를 당장 중단하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