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대치 은마아파트 구성원들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지하 노선 관통에 반발하는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결국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와 재건축 조합인 재건축추진위원회(추진위)는 각각 공동주택관리법·도시정비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이들은 2020년 7월 15일 국토교통부가 개최하고자 했던 'GTX-C 노선 전략환경영향평가서 공청회'에서 단상을 점거하며 "GTX가 은마아파트 단지 지하로 지나지 않게 노선을 바꾸라"는 주장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대(對) 정부 강성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추진위는 은마아파트 단지 지하로 GTX 차량이 지나다닐 경우 안전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우회 노선 설계를 요구했다. 또한 우선협상대상자로, GTX-C 노선 시공사 선정될 가능성이 큰 현대건설의 모회사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자택 인근 집회도 전개한 바 있다.
입대의와 추진위의 '선 넘는' 행보는 지난달 말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태원 참사 사고 은마에서 또 터진다',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은 목숨 팔아 돈 버느냐', '故 정주영 회장님은 손자 교육 다시 해라' 등 명예훼손 우려가 있는 내용의 현수막을 아파트 외벽에 내걸었다. 정 회장을 대놓고 저격하는 도 넘은 행태로 강남구청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기도 했다. 또한 관광 버스를 대절해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인근 정 회장의 자택 앞까지 찾아갔고, 고성을 지르는 등 추태를 부렸다.
은마아파트 외벽에 붙어있던 현수막./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입대의와 추진위는 우선 찾아갈 곳의 번지수부터 잘못 짚었다. GTX-C 노선 건설 시행 원청은 국토부 철도국 광역급행철도추진단이지, 현대건설이 아니다. 물론 2020년 11월 세종 국토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전개한 것도 알지만, 구태여 안국역 인근 현대건설도 아닌 정 회장 자택 앞에서 농성하는 이유는 빠른 합의를 노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국토부가 위치한 세종으로 내려가 시위하면 되는 것 아닌가.
입대의와 추진위가 증빙 서류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잡수입 중 일부인 공금 9700만 원을 GTX-C 노선 건설 반대 집회에 전용하기도 했다는 국토부·서울시 합동 조사 결과도 있어 도덕성에도 타격을 입었다. 잡수입에 대한 서면 동의 결과를 공고했다고 했지만 이를 증빙하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았고, 주민 총회를 통해 집회비 관련 예산안을 의결해야 함에도 사후 추인한 점도 드러났다. 이는 토지 소유자의 비용 부담을 수반하는 중요 사항인데도 추진위가 임의대로 처리한 것이다.
이 외에도 추진위가 월간 자금 입출금 내역과 주민 총회 의사록 등 추진위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정보 공개 의무를 위반한 사례도 55건 적발됐다.
삼성역 내 GTX 선로 배치 계획./사진=국토교통부 철도국 수도권광역급행철도과 제공
은마아파트 단지 지하를 통과하게 되면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250억 원을 더 벌어간다는 주장도 납득할 수 없다. 입대의와 추진위는 GTX-C 삼성역-양재역 구간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현재 노선은 하루아침에 결정된 게 아니다.
삼성역은 GTX-A·C 노선 이용자들이 같은 승강장에서 평면 환승을 할 수 있도록 계획돼 있다. 상하 교차하도록 설계하려면 삼성역에서 전후로 일정 직선 거리가 확보돼야 한다. GTX-A와 C노선은 삼성역에서 600m 이상 직진한 지점에서 약 6.8m를 이격해 교차하게 되는데, 이는 GTX의 안전 운행을 위해 적정 경사도를 반영한 기술적 검토 결과값이다. 따라서 삼성역-양재역 간 노선을 직선화 하는 것은 구조상 기술적으로 불가한 부분이다.
이는 설계 기준·운행 안전성·경제성 등을 종합 고려해 2014년 예비 타당성 조사 때부터 검토됐던 부분이고, 우협 대상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공개 경쟁을 거쳐 2021년 6월에 선정됐다.
추진위는 삼성역에서 500m 직진한 지점에서 터널 간 이격 거리가 20m 이상 확보됐다고 한국터널환경학회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하지만 국토부가 지난달 11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학회가 추진위로부터 잘못된 사실관계를 전제로 받은 질의에 답변했다"고 반박해 설득력을 잃었다.
추진위는 GTX-A 노선 공사 과정에서 발파 작업 탓에 오세훈 서울시장 공관에 금이 갔고, 연선의 아파트 단지 창문에 금이 가고 돌덩이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안전하다면 왜 삼성역-양재역 구간을 직선화 하지 않느냐, 지반이 무른 곳이라며 경제성·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지하 공간을 굴착하는 방식은 '천공-장약 설치-발파·환기-버력 처리-암판정-숏크리트-지보재 설치-2차 숏크리트-방수 처리·라이닝-포장' 순으로 이어지는 NATM(New Austrian Tunneling Method) 공법만 있는 게 아니다.
GTX-C 노선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대치동의 단단한 화강암 지반과 주민들의 안전 우려를 고려해 이미 대심도인 지하 40~50m보다 더 깊은 60m에서 TBM(Tunnel Boring Machine) 공법을 적용한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는 원통 형태의 거대한 강철 굴착 장비를 이용하는데, 소음·진동 발생을 최소화해야 하는 도심지 지하나 화약 발파 작업이 불가능한 지역에서 시공할 때 쓰이는 방법이다. 최근의 TBM 장비는 연약한 지반부터 매우 단단한 암반 구간까지 관통할 수 있다.
굴착 즉시 세그먼트를 설치하므로 붕괴 위험성도 거의 없다. 이로 인해 터널 내벽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변형을 최소화할 수 있다. 굴진 속도는 발파 공법에 비해 빨라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생산성도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사·연암·경암 등 다양한 지층에 적용할 수 있고, 지하 수압이 높은 지반에서도 안전하게 시공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은마아파트 단지 입구./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국토부와 현대건설이 이 같이 안전성과 공사 계획의 타당성에 대해 충분히 피력했음에도 은마아파트 입대의와 추진위는 믿지 못하겠다며 한 토목공학자를 앞세워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건설 전문가 집단에 대한 존중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과도한 환경 논리에 국가적 소모를 불러온 '천성산 도룡뇽 사건'을 연상케 한다.
이 정도면 사실상 '부동산계의 민주노총'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국가 사업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확산시키며 방해하고 선동하는 행동을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행정 조사권을 비롯,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 국가 사업을 변경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고 엄중 경고했다.
세상 어느 선진국 정부와 기업이 당장 눈 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안전을 등한시 한 채 개발을 강행하겠나. 단지(團地) 이기주의에 함몰돼 국가 사업의 발목을 잡으려는 입대의와 추진위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