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은행권 압박이 연일 거듭되는 가운데, 이를 두고 학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 간섭이 과도하다는 측에서는 '자유'를 부르짖던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지나치게 은행 경영을 간섭해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편으로 은행권이 천문학적 수익을 거두는 동안 영업시간 단축, 점포폐쇄 등으로 서비스품질이 저하돼 대중의 반감을 샀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은행권 압박이 연일 거듭되는 가운데, 이를 두고 학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사진=각사 제공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은행권의 이자장사를 비롯해 성과급 체계 등을 본격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코로나19'라는 변수에 초저금리로 대규모 대출을 집행했던 은행권이 기준금리 인상에 발맞춰 대출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예대마진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 격차)'를 끌어올려 천문학적 수익을 거둔 탓이다.
역대급 순이익에 은행권은 대규모 성과급·퇴직급 지급을 구상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은 최근 마무리한 2022년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서 임금인상률과 성과급 지급률을 높였다.
임금인상률은 대체로 3.0~4.0%, 성과급 지급률은 200%대 후반~400% 등이다. 이에 지급 규모는 지난해 1조 3823억원을 초과한 1조 4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당국은 은행의 이익을 '과점적 시장구조에 따른 비정상적 이익'으로 규정하고, 면밀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은행을 '공공재'라고 강조하면서, 고금리로 국민들의 고통이 큰 상황에서 은행들이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나 "약탈적이라 볼 수 있는 은행의 비용 절감과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정점에 와 있다"며 "실효적인 경쟁 촉진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금리상승기 금융 취약층뿐 아니라 대부분의 금융소비자가 금리부담을 크게 겪는 와중에 수십조 단위의 이익이 발생하고 있고 그 이익의 사용 방안에 대해 과연 제일 바람직한가란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며 "약탈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영업방식에 대해 금융당국 뿐 아니라 은행업 측면에서도 같이 고민을 하자는 측면에서 공공적 측면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자장사는 은행업의 본질…'지나친 관치'
윤 대통령과 당국 행보를 두고 학계에서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자유'를 강조하던 정부가 금융권 인사를 두고 '관치'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은행의 원천적 수익창출 수단인 '이자장사'를 문제삼는 까닭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세계 금융 랭킹이 70위권으로, 우간다보다 낮다. 해외 금융기관들이 국내에 진출하지 못하는 건 관치가 심하고 규제가 많기 때문"이라며 "금융은 사적재화이자 공공재이다. 과거 구제받았던 은행들이 이자까지 쳐서 (빚을) 다 갚았는데, 정부가 왜 은행을 소유한 것처럼 발언하는 지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유경원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도 "금감원장이 구두로 한 마디 하면 되는 것을 대통령까지 나서서 언급하는게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며 "가뜩이나 금융권 수장들이 바뀌면서 '관치로 사람을 꽂는다'는 얘기까지 나왔는데, 시장에서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자장사 논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김 교수는 "순이자마진(NIM, %)은 같은 상황인데 금액만 커진 상황이다. 가령 100조원이었던 대출잔액이 1000조원으로 불어나면 10배가 커진 것일 뿐, 순이자마진은 같다"며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자금조달금리가 그만큼 높아진 것인데 계속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출 확대에 따른 이자이익(절대값)이 커진 것은 맞지만, 상대적 증가율만 놓고 볼 때 큰 차이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면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처음부터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은행들이 엄청난 이익을 시현하는 뒷북행보를 보이지 않았을 텐데, 터지고 나니 부랴부랴 압박한다는 감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은행의 기본 역할은 예금이자를 많이 주고 대출금리를 많이 낮춰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가가 과점체제를 인정해주고 비상시 지원도 해준 것인데, 은행들이 이를 망각해 대출금리를 올릴 수 있는대로 올리고, 예금금리를 안 올렸다"고 진단했다.
또 저금리 시기에는 이자이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ATM 등의 수수료비용을 늘리는 식으로 배불리기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비판은 은행권이 자초한 일…서비스품질 개선해야"
일각에서는 정부와 국민의 비판을 두고 은행권이 자초한 일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은행들이 '수익 극대화'를 이유로 대규모 지점폐쇄, 행원 감원 등에 나서면서 금융 소외계층이 소외된 까닭이다.
이 원장은 지난 17일 "최근 일부 은행들의 구조조정 모습을 보면 금융 취약층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지점 수를 줄이거나, 고용창출 인력을 많이 줄이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경향성이 강해지고 있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는 상품, 그 가격이라 할 수 있는 금리 면에서도 별 차이가 없는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학계에서도 이 원장과 궤를 같이 한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유 교수는 "역대급 순이익에 천문학적 성과급·퇴직금을 지급한다는 소식이 나오는 가운데, (영업시간을) 9시로 땡기는 것에 대해 노조가 반대하고 있다"며 "디지털금융과 수익성을 얘기하면서 지점까지 폐쇄하고 있는데, 직장인, 금융 소외계층, 고령자에 대한 금융서비스 제공을 외면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수익 추구에 매몰돼 공적 서비스 제공에 소홀해지는 등 서비스 마인드가 저하됐고, 자연스레 부정적 정서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이어 그는 "비즈니스 모델을 예대금리 조정으로 장사만 하기보다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수익을 다변화한다면 (수익 극대화를) 너무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며 "비즈니스모델로 창출한 수익에 대해 소비자에게 기여나 투자를 제대로 했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대통령 지시에 발맞춰 오는 23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의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TF에서 당국은 은행의 경쟁 촉진 및 구조개선과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등을 다룰 예정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