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초대 사장부터 시작된 코레일 수장 잔혹사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나희승 현직 사장 마저 각종 사고의 책임에 경질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기재부 공운위)는 나희승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의결했다. 재임 기간 중 발생한 남부 화물 기지 오봉역 직원 사망·영등포역 무궁화호 탈선·경부 고속선 영동 터널 인근 KTX-산천 열차 궤도 이탈·대전조차장역 SRT 열차 궤도 이탈 등 각종 대형 사고와 과징금 18억 원 부과에 대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책임을 물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공운위 의결에 의거, 나 사장 해임 건의안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건의안에 서명해 나 사장은 2024년 11월까지의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을 면키 어렵게 됐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나희승 한국철도공사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나 사장은 행정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연합뉴스
나 사장의 사례와 같이 코레일 수장직은 '조기 퇴임이 '국룰'인 자리' 내지는 '독이 든 성배'로 통한다.
2005년 1월 1일자로 철도청은 공기업인 코레일로 전환됐다. 출범한지 만 18년 2개월이 됐지만 역대 코레일 사장 10명 모두 3년 만기 퇴임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곧바로 후임자가 경영권을 이어받은 초대 신광순 사장을 제외하면 여지 없이 사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돼 왔다.
◇초대부터 비리로 얼룩진 코레일 사장
제24대 철도청장 출신인 신광순 초대 코레일 사장은 러시아 유전 개발 투자 사업에 관한 권력형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 그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 대상이 되자 임명 4개월 만에 사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3대 강경호 사장은 서울교통공사의 전신인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서울메트로 사장직을 역임한 바 있다. 일견 철도 직무 관련성이 있어보이지만 중후장대 산업계에서만 근무해 관련 업계에서 재직한 적은 없었고, 강원랜드 인사와 관련한 수뢰 혐의로 구속돼 코레일 사장 재임 5개월 만에 옷을 벗게 됐다.
◇학생 운동권 인사가 수장 자리에 앉기도
2대 이철 사장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974년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2010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은 운동권 출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그는 2006년 3월 해고자 전원 복직·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사태 해결을 요구하는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에 강경 대응해 2244명을 직위해제했다. 그는 한국 철도 역사상 최초로 흑자를 달성했지만 5개월 여간의 임기 만료 기간을 앞두고 2008년 1월 사의를 표명했다.
8대 사장으로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등 운동권 경력의 오영식 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선임됐다. 그는 SR과의 통합 추진을 선언했고, 해고자 65명을 특별 채용 방식으로 복직 조치하는 등 문재인 정권의 친 노동 기조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8년 11월·12월 연이어 발생한 오송역 전차선 단전·강릉선 KTX 탈선 사고에 대한 책임과 전문성 논란에 현직에서 내려왔다.
◇코레일 사장 자리는 정치권 환승역?
경찰청창 출신인 4대 허준영 사장은 코레일 역사상 최장수 수장으로 기록됐다. 2년 9개월 간 재임하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이유로 만기 3개월을 앞두고 사표를 냈지만 낙선했다.
6대 최연혜 사장은 △한국철도대학 철도운수경영과·한국교통대학교 교통대학원 교수 △한국철도대학 총장 △철도청 차장 △코레일 부사장 등의 경력을 지닌 '찐 철도인'이지만 역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서 당선됐다.
한국고속철도(KTX)./사진=한국철도공사(코레일) 페이스북
◇철도 전문가 선임…정권 교체로 퇴출도
제23회 행정고등고시 출신인 7대 홍순만 사장은 2010년 국토해양부 교통정책실장 시절 인천국제공항 직통 KTX 사업을 추진했고, 이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직을 거친 철도 전문가로 꼽혔다. 이 같은 점을 인정 받아 2016년 5월 코레일 사장직에 올랐지만 문재인 정권이 출범함에 따라 1년 3개월여 간의 짧은 재임 기간을 뒤로 한 채 2017년 8월에 사임했다.
앞서 언급한 10대 나희승 현직 사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전 임명한 '정권 말 알박기' 인사로 평가받는다. 그는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선임연구원·서울산업대학교 철도전문대학원 겸임교수·한국철도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국제철도연맹 아시아태평양 지역의장 등의 경력을 갖춘 인물로, 2021년 코레일 수장이 됐다.
그러나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올린 나 사장에 해임 건의안을 기재부 공운위가 통과시켰고, 윤 대통령이 재가해 조기 사퇴가 예상된다.
◇철도 업무 경험은? 전문성 의심스러운 '늘공'
2012년 2월 임명된 5대 정창영 사장은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이다. 그는 철도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며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다 물러났다.
9대 손병석 사장은 기술고시 22회 출신으로, 국토부 국토정책국장·수자원정책국장 등의 보직을 순환하다 2014년 7월 10일 철도국장 자리에 올랐다. 이로부터 약 1년 2개월 후인 2015년 9월 25일에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9년 3월 말 코레일 사장으로 임명된 그는 2020년 6월 기재부 공운위가 심의·의결한 '2019년 공공기관 운영평가'에서 고객만족도 조사 내용을 조작했다는 것이 밝혀져 미흡(D) 등급과 동시에 경고 조치를 받았다. '2020년 공공기관 운영평가'에선 코레일이 'C'를 받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1조 원대 적자를 기록해 경영 관리 분야에서는 최하위 등급인 'E'가 부여돼 2021년 7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코레일 경영평가를 담당했던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직무 관련성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가 이어지면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가 꺾인다"며 "이를 생각해서라도 코레일 사장 자리는 내부 승진을 통해 올라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회사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 경영 문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법"이라며 "코레일 조직 문화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전국 철도 영업 선로를 포함, 코레일의 조직 규모가 방대해 개인 사건 외 모든 책임을 사장에게로 돌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