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성준 기자]
2차 전지(배터리)는 우리나라 미래 산업을 이끌 핵심 산업으로 꼽힌다. 배터리 산업이 곧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한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정보업체 HIS마켓에 따르면 2025년 경 배터리 시장 규모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향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2000조 원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현재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약 200조 원)의 10배에 해당한다.
배터리 성패는 이제껏 반도체 산업과 마찬가지로 곧 우리나라 경제와 직결될 수 있다. 지금까지 K-배터리는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면서 순항해왔다.
올해는 K-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이 1분기에만 합산 매출 16조 원을 거두고, 한 해 동안에는 약 70조 원을 기록할 것이라는 컨센서스도 제기된다. 1분기 매출 전망치는 전년 동기보다 70% 성장한 수치다.
하지만 이처럼 놀라운 성장세가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최근 펼쳐지는 시장 상황을 보면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견제를 넘어서야 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중국 배터리 성장을 견제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방국인 한국·일본의 배터리 업계에 대한 영향력도 크게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8월 발효된 IRA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조건으로 배터리 핵심 부품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터리 원재료 대부분을 중국산으로 조달하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당장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리스크를 떠안게 됐다.
다행히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 등 북미권에 대규모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북미 최종 생산 조건은 맞출 수 있지만 중국산 광물 의존도를 낮추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남미 등지로 공급처를 다변화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나 향후 중국 시장 진출을 기획하던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게는 여러모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EU)또한 최근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을 발표하며 미국과 비슷한 무역 제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CRMA 초안은 2030년까지 '제3 국산' 전략적 원자재 의존도를 역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EU 역시 자국 공급망 안정화에 고삐를 죄면서 중국산 소재, 더 나아가 역외 생산된 한국과 일본의 배터리가 유럽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유럽은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배터리 기술은 떨어지는 권역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이 같은 제한 규정을 통해 중국의 배터리 굴기를 지연시키는 한편,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 배터리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 장기적으로는 자국 내 우수 업체를 육성하겠다는 속내를 비추고 있다.
업계로서는 블루오션인 미국과 유럽 배터리 시장에서 선전하려면 새로운 무역 장벽을 준수하면서 적응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중국의 배터리 기술 향상도 위협 요인이다. 여전히 세계 배터리 점유율에서는 CATL 등 중국 업체들이 국내 업체들을 압도하고 있다. 중국이 배터리 기술력에서 한국과 견줄 만큼 치고 올라온다면 어려움은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중국 업체들이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저가 배터리에서 성능 향상을 통해 가성비 배터리로 진화했다. 이에 국내 업체들도 LFP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역시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하며 최근 CATL이 미국 포드와 배터리 합작을 합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이번 합작은 포드가 합작사 지분 100%를 소유하게끔 해 미국 IRA를 빗겨가는 묘수로 업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은 CATL-포드의 묘수가 통하지 않도록 하는 추가 법안을 발의하는 등 글로벌 배터리 주도권 싸움은 치열함을 넘어선 수준으로 펼쳐지고 있다.
따라서 K-배터리는 미국-EU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시장 장악력을 유지해나가는 전략을 짜는 한편, LFP배터리 외에도 미래 혁신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기술에서 우위를 점하는 등의 기술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사방이 적인 상황에서 믿을 것은 실력밖에 없다.
[미디어펜=조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