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강행 처리가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제1호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이어졌다. 국회 통과 12일만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제14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민주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취임 후 첫 거부권을 행사하고 나섰다.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은 국회 의결 15일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거대야당이 국회에서 양곡관리법을 처리한 것에 대해 정면으로 맞섰다. 지난 2016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지 7년 만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제헌 헌법에서부터 명문화된 국회 입법권에 대한 견제수단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대통령의 법률 거부권은 정부수립 이후 현재까지 총 66건 행사되었고 이 중 절반인 33건은 국회에서 법률로 최종 확정되었다. 다만 1987년 헌법 체제인 현재의 제6공화국 기간만 놓고 보면, 거부권 행사는 총 16번 있었고 그 중 1건(6.3%)만이 법률로 최종 확정됐다.
윤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67번째이고, 1987년 체제 후에는 17번째인 셈이다.
3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제13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이 재의 요구를 하게 되면,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야 한다. 사실상 이번 개정안이 무산된 것이다.
이미 민주당 의원들은 삭발 투쟁에 나섰다. 민주당은 추가 입법을 통해 양곡관리법의 취지를 관철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야 정국은 강대 강으로 맞붙으며 급격히 얼어붙을 전망이다.
앞으로 닥칠 문제는 여야 합의가 없이 처리되는 민주당의 다른 법안을 대통령이 막아서느냐, 두 손 놓고 허용하느냐 여부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그간 정부는 이번 법안의 부작용에 대해 국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해 왔지만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날 "그러나 이 법안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더라도 이렇게 쌀 생산이 과잉이 되면 오히려 궁극적으로 쌀의 시장 가격을 떨어뜨리고 농가 소득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야당의) 법안 처리 이후 40개의 농업인 단체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전면 재논의를 요구했다"며 "관계부처와 여당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검토해서 저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했다"고 강조했다.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고 농민의 쌀 생산 인센티브를 왜곡시킬 수 있는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어떻게 놓고 봐도 특정 집단에게만 이익이 주어지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정국이 블랙홀로 빠진 가운데 윤 대통령이 야당의 이어지는 입법 공세를 뚫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하락세인 것을 딛고,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또한 관심이 쏠린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이날 오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 '공포안'은 부결되었으며, '재의요구안'은 원안대로 의결되었다"며 "의결된 안건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는 절차대로 이행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