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배터리 굴기를 억제하고 한국과 일본 배터리 산업을 자국 영향력 아래에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행히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부 규정 발표에서 한국 배터리 업계 입장을 반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돼 쉽지 않은 길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편집자주>
[미디어펜=조성준 기자]한국 배터리 업계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적용되면 배터리 소재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등 새로운 북미 중심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12월 공개한 IRA 백서에서 중국·러시아·이란 등 해외우려기업(FEOC)을 통해 조달한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보조금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미국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발표한 IRA 세부 사항에서 FEOC 대상을 명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의 모든 배터리 업체가 포함되는지, 예외 업체가 있는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인터배터리2023에 관람객들이 모여든 모습./사진=조성준 기자
만약 FEOC에 모든 중국 업체가 규정될 경우 미국 내 배터리 사업에서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2024년 말까지는 중국산 광물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당장은 중국산 핵심광물을 한국에서 가공해 사용할 수 있도록 미국이 허용했지만 어디까지나 유예 조치에 불과하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이 조건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의 사용 기준은 올해 40%에서 2027년 80%까지 매년 10% 포인트 올라가기 때문이다.
배터리 부품 역시 북미 제조·조립 비율을 현재 50%에서 2029년 10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현재 한국은 중국산 리튬·흑연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산화리튬과 산화리튬의 수입 36억7600만달러 중 중국 수입이 32억3200만달러로 87.9%나 차지했다.
수산화리튬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메인 제품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주요 원료다.
흑연은 지난해 전체 수입 1억3100만달러 가운데 중국의 비중이 무려 93.9%였다.
중국산 광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한국 업체들은 지난해 8월 IRA 시행을 전후로 광물 조달처를 호주·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미국이 '핵심광물협정'을 통해 FTA 미체결국이라도 일본처럼 미국과 협정을 통해 보조금 대상국을 지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업체들이 리튬 등의 핵심 광물 수급을 추진하는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가 미국과 협정을 체결할 경우 광물 수입 탈중국 루트가 생기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중국과의 기술 제휴라는 우회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포드, 테슬라가 중국 배터리 기업 CATL과 기술 제휴 방식의 합작 공장 설립을 타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배터리 업체들도 중국 업체와 합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을 택하면 중국에서 핵심 광물을 1차 가공한 뒤 한국에서 '50% 이상 부가가치 창출' 기준을 맞춰 IRA 보조금 규정을 통과할 수 있다.
한편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북미 현지에 생산시설 건설 등 집중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하이오, 테네시, 미시간 등에 생산라인을 짓고 있고, 삼성SDI는 인디애나, SK온은 조지아, 테네시 등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거나 지을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배터리 3사가 이 같은 북미 현지 공장을 기반으로 3년 내에 북미 시장에서만 최소 100조 원을 넘는 합산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미 전기차 시장은 중국 시장을 CATL 등 중국 업체들이 장악한 상황에서 한국 업체들이 반드시 장악해야 하는 권역이다.
한국 배터리 업체의 북미 집중 투자는 IRA와 맞물려 앞으로 더욱 고도화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원재료 수급을 위해 다양한 글로벌 원자재 업체와 협력하고 있다”며 "북미 시장의 중요성도 나날이 커지고 있어 현지 기업과의 합작 형태로 투자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