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인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5일 대통령 재의요구권이 행사된 양곡관리법을 오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하기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재의결 가능성이 희박한 탓에 쌀값 안정화라는 본래의 목적보다 정치적 득실이 재표결을 추진하게 된 이유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날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1호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것을 “식량주권 포기”라고 비판하며 “헌법과 국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재투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의결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 쌀값 안정이라는 본질은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헌법 53조에 따르면 대통령 재의요구건이 행사된 안건이 국회에서 재의결되기 위해선 과반 출석과 3분의 2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115석의 의석을 가진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양곡관리법에 대해 ‘포퓰리즘’,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혹평하고 있는 만큼 재의결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재표결 추진을 공포한 것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정치적 득실 계산에 따른 판단으로 여겨진다.
민주당은 최근 정부여당과 정책 경쟁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양곡관리법이 이재명 대표가 추진한 1호 민생법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여당이 대안도 없이 야당 발목잡기만 하고 있다”고 열을 올리는 중이다.
이에 민주당이 재표결을 통해 정부여당의 반발을 최대한 이끌어 낼수록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 쟁점 법안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져 국정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민주당이 직회부를 예고한 안건들은 특정 집단 또는 계층에 수혜를 주는 법안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대통령 거부권이 누적될수록 이들로부터 정부가 혜택을 박탈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반발성 표심을 확보하는 호재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또 정쟁이 격화될 경우 야권 단일대오 구축이 수월해진다는 점도 논쟁을 이어가는 이유로 꼽힌다. 계파 갈등을 겪던 민주당은 최근 여야 정쟁 격화로 ‘결집’ 효과를 누리는 중이다. 더불어 정의당과 3월 양 특검 공조에는 실패했지만, 대통령 재의요구권에 대해 한목소리로 규탄에 나서고 있다. 양곡관리법 재표결이 내외부적으로 대여투쟁의 결집력을 확보할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저지 대응단’의 방일과 연계한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방일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정부여당의 ‘민생외면’ 프레임이 부각될수록 이들을 향한 비판보다 정부의 ‘외교참사’ 주장이 더 큰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거부권으로 이미 무산된 양곡관리법을 재표결에 나서는 것만으로, 약점 보완과 대여투쟁 강화라는 일석이조의 기회를 얻는 셈이다.
정치평론가인 박창환 장안대학교 교수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재표결이 무산돼도 민주당은 실보다 득이 더 많다”며 “(재표결 부결은) 민주당에도 일부 부담되겠지만, 재표결 과정에서 정부여당이 대안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면서 억지로 민생법안을 가로막았다는 프레임이 더 주목받게 될 것”이라며 재표결은 정부여당에 ‘불통’이라는 프레임을 각인할 기회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편으로는 민생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정쟁만 남게 된 것”이라며 여야 협치가 실종된 것에 아쉬움을 더했다.
[미디어펜=최인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