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모가디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군벌간 무력충돌이 발생해 28일 현재 13일째 유혈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수단에서 우리국민 전원이 탈출할 수 있었던 ‘프라미스(Promise) 작전’이 성공하기까지 막전막후가 주목받고 있다.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정부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사령관의 신속지원군(RSF)이 무력충돌해 지금까지 512명이 사망했고, 4200여명이 다쳤다. 당초 수단에서 15일 사태가 발생한 직후부터 정부는 교민과 공관의 철수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교전 발생 다음날인 16일부터 아프리카연합(AU) 등의 중재로 여러차례 양 군부가 교전 중단에 합의했지만 실제로 이행이 안 되는 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우리정부는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 피트르’ 기간을 이용해 탈출을 결정했다.
정부는 우선 유관국들과 신속하게 접촉해 정보를 수집했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서방국은 물론 역내 강국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까지 접촉했다. 유엔과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와도 정보를 공유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21일 UAE 장관에 이어 22일 WFP 장관과 통화했다.
군벌간 무력충돌로 고립됐다가 우리정부의 ‘프라미스(Promise·약속) 작전'을 통해 철수한 수단 교민들이 24일(현지시간) 우리 군 C-130J 군용기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에 도착해 사우디 군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수송기에서 내리고 있다. 2023.4.24./사진=대통령실
이를 계기로 UAE와 WFP에서 육로이동을 제안해왔고, 최종적으로 현지 세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UAE가 에스코트하기로 결정했다. UAE 대사관에서 제공한 에스코트 차량이 우리교민들이 탄 차량을 에스코트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칼툰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은 ‘당신의 국민은 곧 우리국민’(Your people are Our People)이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튀르키예와 프랑스 등도 도움을 줬다.
하지만 수단 탈출은 너무 막막했다고 한다. 교민들이 9군데에 흩어져 있었고, 시내 곳곳엔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대사관 인근에서도 총탄 소리가 났고, 공항까지 가는 거리는 막혀 있었다.
신속대응팀에 파견됐던 외교부 당국자는 “수단대사가 직원들부터 불렀는데 한 참사관이 노모와 어린 딸을 데리고 시장에 갔다고 고립된 것으로 파악됐다. 또 해외출장 중이던 영사는 수단으로 아예 들어오지도 못했는데 그의 부인과 자녀가 고립돼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더구나 시내 중심부에 있던 대사관 주변이 가장 위험한 격전지였던 상황에서 결국 체크포인트를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외교관 신분인 수단대사가 직접 나서 교민들을 이송시켰다.
수단 교민 구출작전에 참여한 외교부 당국자는 26일 기자들과 만나 “이분들을 모셔오기 위해선 방탄차를 타더라도 체크포인트를 통과할 수 있는 외교관 신분이 필요했다”며 “체크포인트에서 차량을 뒤지는 경우도 있었고, 30분 거리가 1시간 반 걸릴 정도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단전 단수에도 다행히 통신은 연결됐지만 어떨 땐 전화를 20번에서 30번을 해야 간신히 연결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연락이 안된 분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무력충돌이 발생한 첫날 체육복 차림으로 인근 가게에 잠깐 장을 보러 간 사이 총격전이 벌어져 그 길로 바로 대사관저로 갔다. 이후 (체육복으로) 8일간 버티다가 교민들을 대사관에 다 모으고 나서 관저로 가서 캐리어 2개에 급하게 옷을 쓸어 담아왔는데 짝이 안 맞았다”고 회고했다.
교민들은 23일(현지시간) 오전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출발해 약 1170km를 육상으로 이동해 다음 날 오후 2시 40분쯤 수단 북동부 항구도시인 포트수단에 도착했다. 이들은 포트수단에서 대기 중이던 공군 C-130J ‘슈퍼 허큘리스’ 수송기 편으로 홍해 맞은편 사우디 제다에 도착했으며, 이곳에서 공군의 KC-330 '시그너스' 공중 급유기 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군벌간 무력충돌로 고립됐다가 우리정부의 ‘프라미스(Promise·약속) 작전'을 통해 철수한 수단 교민들이 수송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2023.4.25./사진=국방부
이 과정에도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포트수단 공항에 도착하니 공항 관계자가 이동허가 통보를 받지 못했다며 제지한 것이다. ‘구두 허가’가 있었지만 문서 제출을 요구하는 바람에 3시간여동안 실랑이가 이어졌다. 그동안 아랍어를 할 줄 아는 공관 직원이 해당국 공관, 서울에 있는 외교부와 국방부를 통해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겨우 교민들이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포트수단 공항에서 여권수속을 밟으려고 하니 6명이 여권이 없었다고 한다. 이 중 기간이 만료된 3명은 서울에서 긴급여권을 만들어서 갔고, 나머지 집에서 챙겨나오지 못한 3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젯다 총영사관에서 긴급여권을 만들었다. 다행히 포트수단 여권 관계자들이 인정해줬고, 교민들이 데리고 있던 강아지 1마리와 고양이 2마리도 문제없이 통과했다.
대피 과정에서 우리군이 일본인 5명을 도와 함께 탈출한 일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외무성의 한 관리는 “눈앞에서 총격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일본인을 차량에 태워 수송해줬다. 한일관계 개선이 현장에서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6일 보도하기도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전의 종합판이었다”며 “시장에 고립됐던 참사관은 고립된 상태에서도 미국, 일본, UAE와 소통하며 정보를 취합했다. 출장 나갔던 영사는 곧바로 신속대응팀에 소속돼 현장에 파견됐다. 장관이 UAE 장관 등과 통화했고, 대통령은 청해부대의 급파를 지시했다. 미국 등도 군사작전 비슷하게 했다는데 포트수단에서 제일 먼저 교민들을 데리고 나온 국가는 우리”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