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안 국민투표, 그리스 위기 향방 결정짓는 중요 이벤트
그리스, 채권단안 거절...그렉시트(Grexit) 가능성 시장 우려
[미디어펜=김재현기자] 채권단의 구제금융 개혁안이 가혹하다며 국민투표를 나서겠다는 그리스, 위기의 계절을 맞았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수순을 넘어 그렉시트(Grexit) 가능성이 불거졌다. 그렉시트는 그리스와 탈퇴와 탈출을 뜻하는 Exit의 합성어다.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의미한다.
채권단과 그리스간 새로운 제안의 등장, 재협상, 결렬 등이 반복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롤로코스터를 타고 있다. 그리스가 유로그룹의 신규제안을 가혹한 처사라며 채권단의 제안을 일언지하 거절했다. 국민들에게 이 제안에 대해 신임을 묻도록 국민투표에 회부하기로 결정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되고 있다.
▲ 국내 주식시장이 29일 그리스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에 1%대나 하락하며 출렁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 2,050선까지 밀리는 등 불확실성 확대로 변동성이 커진 모습이다. 코스피는 오전 10시 현재는 전날보다 25.54포인트(1.22%) 내린 2,064.72를 나타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연합뉴스 |
23일 제안에는 연금·건강보험료 납입 증대, 법인세와 부가세 증액, 고액소득자 과세(15년 2억2000만 유로)를 제시했다. 하루 뒤인 24일에는 연금납입액 3.9% 증액, 은퇴연령 2025년까지 67세로 점진적 상향, 극빈자 연금 단계적 축소, 모든 식료품과 호텔 부가세 13% 단일화를 포함시켰다.
이 제안을 접한 유로그룹은 연금·조세정책 등에서 그리스보다 강도 높은 대안을 25일 다시 제시했다. 제시안에는 △연금납입액의 추가 확대 통한 절감액 목표(GDP의 1%, 18억 유로) 달성 △기업에 대한 일회성 추가 과세 반대 △은퇴연령 2022년까지 조기상향 즉시시행 △극빈자 연금지급 단계적 축소 및 2017년 종료 △가공식료품과 호텔이용부가세 23% 상향 △국방비 및 연료보조금 축소 등을 내세웠다.
치프라스(Tsipras) 그리스 총리는 "채권단이 원치 않아도 국민투표는 실시될 것"이라며 채권단을 향해 맹비난했다. 이어 그리스 국민들이 가부를 직접 결정해야 한다면서 구제금융안에 대한 국민투표 실행을 제안했다.
국민투표 선언 직후 대규모 현금인출(뱅크 런)이 발생하고 그리스 전역 자동화기기(ATM)의 35%가 현금이 고갈됐다. 발등에 불이 붙은 ECB는 그리스 은행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대출한도를 890억 유로로 동결시켰다.
로이터 통신과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은 "그리스는 은행 뱅크런을 감당하기 어려워 29일부터 내달 5일 국민투표까지 은행영업과 주식시장을 중단시켰다"며 "구제금융 협상결렬에 따른 디폴트 우려로 사실상 자본통제를 착수했다"고 전망했다.
채권단은 예정대로 30일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종료키로 결정했지만 유로존의 안정성과 그리스 지원대책을 계속 강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만일 추가 협상없이 프로그램이 종료된다면 이번 분할지급분 72억 유로 수령은 무산된다.
그리스가 30일 IMF에 15억 유로를 상환하지 못한다면 규정에 따라 '연체(arrear)'로 이사회에 보고하게 된다. 시장은 사실상 이를 그리스의 디폴트로 간주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6월부터 8월까지 상환해야 하는 채무는 193억9000만유로다. 6월 IMF 15억4000만유로와 단기채 차환 52억 유로를 포함해 67조4000억 유로이며 7월 IMF 4억5000만 유로와 단기채 차환 20억 유로 및 ECB 35억 등 모두 69억5000만 유로다. 8월에는 단기채 차환 24억과 ECB 32억을 포함한 57억 유로가 예정돼 있다.
IMF 채무상환 실패 땐 2주간의 유예기간과 독촉 후 공식 상환실패를 결정하게 된다. 특히 7~8월 ECB 채무는 상환하지 못하더라도 디폴트로 간주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한 국가의 디폴트 여부는 '공적기구'에 대한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IMF는 "30일 IMF 채무상환 실패시 추가지원은 불가능하다"며 "그리스 구조조정과 재정개혁 등을 위해서는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협상을 지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Di jsselbloem 유로그룹 의장은 "유로존 안정성과 온전함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협상 결렬 분위기를 제지했다.
새 구제금융안 'Yes or No', 그렉시트(Grexit) 현실화되나
치프라스 총리의 결정은 공식적으로 그렉시트 여부를 묻는 것과 다름없다. 치프라스가 국민들에게 구제금융안 거부를 독려하는 모양새다.
바클레이(Barclays)는 "거부할 경우 그렉시트 가능성은 급격히 상승한다. 반대로 찬성할 경우 정정불안 과정을 거쳐 구제금융을 매듭지을 신정부 구성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알코(Alco)가 일요일 발표한 서베이 결과를 보면, 57% 응답자는 고통스런 조치가 있더라도 구제금융 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국민의 3분의 2는 유로존 잔류를 원하며 57.8%는 협상 재개, 48%는 그렉시트를 유발할 수 있는 정부정책에 반대했다.
글로벌 IB들은 그렉시트 발생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렉시트가 발생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시장 영향은 초기에는 크겠지만 결국 제한적일 것이라는게 지배적이다.
구제금융안 국민투표는 이번 그리스 위기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이벤트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리스가 이달 30일 디폴트를 겪고 내달 5일 국민투표에서 채권단안에 대한 반대표가 50%를 상회할 경우 금융시장은 상당한 혼란에 처할 운명이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연구의원은 "그리스의 경제, 금융시장 비중이 감소했으나 시장이 기피하는 예상을 벗어난 돌발적 상황 재연이 향후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며 "그리스 사태는 향후 미국 금리인상 등에 따른 신흥국 자금 유출 확대 등과 맞물려 시장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정부는 그리스 채무협상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대한 경계를 강화키로 했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29일 무역보험공사에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그리스 디폴트와 그리스 은행들의지급 불능 상태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리스 디폴트가 현실화되면 위험 회피 성향이 대두돼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단기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리스가 일시적 디폴트가 발생해도 유로존 탈퇴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고 불안 확산은 제한적일 것으로 시장에서 보고 있다"며 "그리스발 불안이 미칠 영향은 과거 남유럽 재정 위기보다는 단기간이고 범위도 넓지 않을 것이란게 대다수 전문가의 예측"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그리스발 불안이 글로벌 금융시장과 주변국을 포함한 글로벌 실물경제에 미칠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컨디전시플랜을 마련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