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도쿄에 이어 서울에서 52일만에 다시 만나 셔틀외교의 복원을 알렸다. 특히 기시다 총리의 답방은 당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로 예상됐던 것보다 빨리 이뤄져 주목받았다. 그런 만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계기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일 정상회의를 대비하는 차원이 있어 보인다.
양 정상은 7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하진 않았지만 100분 이상 진행된 회담 결과를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된 한일 간 현안과 관련해선 ▲‘워싱턴선언’에 일본 참여 및 한미일 3국 핵협의그룹 가능성 ▲후쿠시마 원전에 한국 전문가 현장시찰단 파견 ▲G7 정상회의 계기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 세 가지가 우선 꼽힌다.
이 가운데 ‘워싱턴선언에 일본 참여 가능성’은 양 정상과 기자들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관련 질문을 받고 “워싱턴선언은 한국과 미국 양자간에 합의된 내용이지만 일본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미 간 워싱턴선언이 완결된 것이 아니고 계속 논의하고 공동기획, 공동실행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내용을 채워나가야 하는 입장”이라며 “먼저 이것이 궤도에 오르면 또 일본도 미국과 관계에서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같이 협력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가 정착되고, 그것이 활성화된 이후 한미일 간 확장억제에 관한 논의를 추가로 진행할 수 있다는 얘기이지, 지금 우리가 막 만들어놓은 NCG를 3자나 4자로 확대한다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한미 간 창설된 NCG에 앞으로 일본이 참여해 ‘다자 NCG’가 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억제를 목표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될 조짐인 만큼 일부 전문가들은 한미 간 대북 미사일방어(MD)체계에 일본이 참여하는 연합훈련을 정례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는 5일 ‘미국의소리’ 방송에서 “미국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동맹을 방어할 때 (한일) 두 동맹이 협력해야 더 쉬워진다”며 “세 나라의 정보공유를 강화하고, 미사일 방어체계를 연결하고, 연합훈련을 정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워싱턴선언을 세 나라간 공동 억지 및 핵협의 대화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 NCG가 신설된 것과 관련해 그동안 우리정부가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 미국이 동맹과 맺은 확장억제 관련 양자 협의체로서 유일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측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고, 신속한 결론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부각한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NCG가 다자 협의체로 바뀔 경우 이런 의미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이 반발할 경우 보복 조치도 우려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3.5.7./사진=대통령실
이번에 기시다 총리가 우리측 제안을 수용했거나 먼저 제안해서 나온 합의는 각각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한국 전문가 현장 시찰,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참배이다. 두 가지 사안은 한일 정상도 기자회견에서 각각 밝혔다. 특히 기시다 총리는 “이번달에 후쿠시마 제1원전에 대한 한국 전문가 현장시찰단 파견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G7 정상회의 때 피폭지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하겠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원전 시찰과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단순히 둘러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아직 어떤 구성원으로 어떤 과학적인 기법이 채택될지는 논의를 해봐야겠으나 IAEA의 기존 처리 방법이나 접근 방법을 참고하고, 문제가 될 수 있는 물질과 성분에 대해 조사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방한의 목적이 사실상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8일 “G7 정상회의에서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반대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며 “오히려 한국을 끌어들여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오는 23일로 예정된 한국 전문가들의 후쿠시마 원전 현장시찰이 어떤 과정으로 이뤄질지 지켜봐야 한다.
기시다 총리가 한국인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한일 정상이 공동참배하자도 제안한 것은 강제징용 배상 등 과거사 문제와 연결돼있어 국내 반응도 다각도로 나오는 상황이다. 이번에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에 대해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재확인했고, 지난 3월 6일 한국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배상판결 해법을 수용한 피해자측에 대해 감명받았다고 밝히면서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데 대해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슬픈 경험에 가슴아프다” 등 표현으로 일본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서 진전된 표현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 스스로 ‘정부 입장’이 아니라 ‘개인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고, 무엇보다 불법적인 동원의 강제성을 희석시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호사카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일제 징용에 대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표현했는데 일본 사람도 포함돼있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기시다 총리가 절대 사과 표현을 꺼낼 가능성이 없다”면서 “기시다 총리는 이번 방한에서 물잔의 나머지 절반을 채워야했지만 결론적으로 5%밖에 채우지 못한 셈”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의 답방으로 한일 정상간 셔틀외교 복원엔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한일 정상은 앞으로 12일 뒤 G7 정상회의가 열리는 히로시마에서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핵 위협 속에서 중국의 반발을 극복하고, 국내 반대여론을 설득해야 하는 윤 대통령의 과제는 전혀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맹에 퍼주기 외교’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대중국 외교에서 잰걸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