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이 약 8개월만에 증가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여파로 지난해 9월부터 꾸준히 감소하던 대출잔액이 올해 4월 들어 소폭 증가세로 전환한 것이다.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모기지를 대거 공급하면서 3월 이후 대폭 늘어났다는 평가다. 다만 집단·전세대출을 비롯해 신용대출의 감소세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최근 급격한 금리인상과 경기악화로 금융권 연체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당국은 "현재로서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안전성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이 특례보금자리론에 힘입어 약 8개월만에 증가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최근 상승세를 보이는 금융권 연체율은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안전성을 위협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사진=김상문 기자
금융당국은 25일 오후 금융감독원 본원 11층 회의실에서 은행 및 중소서민금융 협회, 민간전문가들과 최근 가계대출 동향 및 건전성 점검회의를 가졌다.
참석자들이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약 1598조 8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2000억원 증가 전환했다. 약 8개월만이다.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 위주의 주택거래가 늘면서 은행권의 특례보금자리론 취급이 3월 이후 크게 확대된 까닭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정책모기지를 제외한 은행권의 대출(집단·전세·신용)과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4월에도 꾸준한 감소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상호금융 대출액이 4월에만 2조 6000억원 감소했다.
특히 당국은 은행권의 상생금융 확대가 가계대출 증가를 부추겼다는 지적에 대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은행권은 상생금융 차원에서 일부 대출에 대한 금리를 0.3~0.7%포인트(p) 인하한 바 있는데, 이를 대출 증가로 엮기엔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실제 상생금융 상품이 출시된 지난 3~4월 중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정책모기지 제외)을 살펴보면 약 10조 5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가계대출 증가세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일부 전망에 대해 회의 참석자들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우선 대출 수요의 경우 올들어 시장금리와 대출금리가 소폭 하락했지만 과거 대출 급증기에 비해 여전히 높은 편이다. 주된 대출 수요인 주택거래도 올 들어 실수요자 중심으로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증가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예년보다 적다는 평가다.
반대로 은행권의 대출공급은 올 들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완화되고 있지만 대출자의 신용위험 증가가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특히 상호금융·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경우 수익성·건전성 저하 압박 등으로 당분간 대출 공급을 늘리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다수 업계 참석자들은 "하반기에도 전세·신용대출 신규수요 감소,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집단대출 감소 등으로 가계대출이 전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증가할 것"이라며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 수요와 전세보증금 반환대출 수요 증가가 증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가계대출 급증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간전문가는 "대내외 불확실성, 고금리 및 경기침체 우려 영향으로 디레버리징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기준금리 인하시점 및 부동산·주식시장 회복 여부 등에 따라 대출수요가 변동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하반기에는 △무역환경 변화 △경기 침체 우려 등에 따라 가계대출보다 기업대출에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 관계자는 "현재의 가계대출 수요·공급 여건과 시장금리 및 부동산시장 환경 등에 비춰 가계대출 급증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가계대출 규모가 높은 수준이고 향후 부동산 등 자산시장과 시장금리 향방에 따라 대출 증가세가 점점 빨라질 수 있으므로 경각심을 놓지 않고 관리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연체율 상승세지만 건전성 위협할 정도 아냐"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금융권 연체율에 대해서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안전성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업권별로 살펴보면 3월 말 은행권 연체율은 0.33%로 코로나19 펜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슷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사와 캐피탈사는 각각 1.53% 1.79%로 2019년 당시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이다.
특히 연체율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큰 저축은행(5.07%)과 상호금융(2.42%)은 각각 2016년 2014년 수준으로 돌아왔는데 그 이전 시기의 최고치보다 낮다는 분석이다. 저축은행은 지난 2013년 말 저축은행 사태 당시 연체율이 21.70%에 육박했고, 상호금융은 최고치를 기록한 2012년 3.86%를 기록한 바 있다.
대출종류별로 보면 가계대출 연체율은 중저신용자가 많은 저축은행 5.59%, 캐피탈 3.46%, 카드사 2.51%, 상호금융 1.25% 순으로 높았다. 은행권은 0.31%에 불과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포함한 부동산관련 대출비중이 압도했는데, PF대출 비중이 큰 저축은행 5.07%, 상호금융 3.69%, 캐피탈사 2.31% 순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은 0.35%로 집계됐다.
당국은 최근 연체율 동향에 대해 "금융권 연체율은 지난해 이후의 △금리상승 △경기둔화 △부동산시장 침체 등이 가시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코로나19 시기 대출이 급증하며 2021년 사상 최저치로 하락한 연체율이 대출 위축과 함께 과거 수준으로 회귀(기저효과)하는 측면도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연체율 수준이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나 저축은행 사태 등의 시기에 비해서는 양호하다"고 진단했다.
향후 연체율은 △금리 △부동산 △실물경제 향방에 좌우될 것이라며,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당국 관계자는 "부동산시장 연착륙이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PF대출 등 부동산 관련 여신의 연체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9월 말부터 코로나19 상환유예 여신의 상환이 개시되면 연체율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다만 상환유예된 대출 절대값이 3월 말 현재 6조 6000억원으로 크지 않은 데다, 80% 이상이 은행에서 취급된 만큼 코로나 대출 상환유예에 따른 리스크는 제한적일 것으로 추정했다.
당국 관계자는 "금감원은 금융권 연체율 동향에 대한 정밀 모니터링을 지속해 건전성 이상징후 발견시 필요한 대응조치를 신속히 취할 계획"이라며 "건전성 취약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관리계획 징구·경영진 면담 추진 등 선별적으로 대응하되, 악화 우려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확약서·MOU 체결 등 건전성 관리를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경기둔화 장기화시 신용손실 확대에 대비해 충분한 수준의 대손충당금 적립을 지도하고, 필요시 자본확충도 유도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외에도 △신속한 매각·상각을 통한 연체채권 관리 강화 △취약대출자 모니터링 강화 및 자체 채무 재조정 활성화 등을 지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