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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수술대 오른 전세제도…고개든 '전세폐지론'

2023-05-29 16:56 | 김병화 부장 | kbh@mediapen.com

김병화 건설부동산부장.

[미디어펜=김병화 기자]'주거 사다리'가 부러질 위기다. 서민들의 주거 부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내집 마련 꿈도 아득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전세제도는 수명을 다했다"고 언급했다. 전세 사기 사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전세시대 종말을 예고한 것이다.

전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주택임대차 유형이다. 세입자(임차인)는 임차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어 주거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 집주인(임대인) 입장에서는 목돈을 이용해 또 다른 투자나 이자 소득을 거둘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전세 제도를 ‘무자본 갭 투기’ 용도로 활용했고, 이는 집값 폭락과 함께 ‘깡통 전세’로 이어지고 말았다. 전세 사기 사태의 전말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전세사기 특별법은 발의 28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전세시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국토부는 전세 사기 근절을 위해 제도 전반을 손질한다는 방침이다. 원 장관은 “전세금을 금융에 묶어놓는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제도) 계좌 도입까지 이야기가 나온다”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올려놓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에스크로는 임대차 계약에 제3기관이 개입하는 방식이다.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금융기관에 맡겨 집주인이 마음대로 쓸 수 없도록 하는 구조다. 당연히 전세보증금을 이용한 갭 투자는 할 수 없고, 계약 만기 시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게 된다.

전세 사기 사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제도는 수명을 다했다"면서 대대적인 제도 개편을 예고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하지만 에스크로 도입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자칫 임대차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세 시장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임대인들의 반대는 거셀 전망이다. 목돈(전세보증금)을 필요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사라진다면 전세를 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세 매물은 자취를 감추고 월세 가격 상승은 당연한 수순이다.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3기관에 맡기는 보증금 비중을 낮출 수도 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전세보증금 절반을 금융기관에서 관리하고 절반을 집주인에게 줄 경우 집주인은 모자란 비용만큼 전세 가격 자체를 높여 내놓을 것이다.

전셋값 폭등이다. 지난 2020년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신고제) 도입을 전후로 경험했던 그것이다. 당시 정부는 시장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전월세상한제’가 대표적이다. 전세가격 인상률을 5%로 제한한 것이다. 수익률이 떨어질 위기에 봉착한 임대인들은 신규 계약에서 전세 가격을 대폭 올리며 응수했다. 결국 전세 시장의 가격은 왜곡됐고 전세 가격은 2년 동안 무려 30% 이상 폭등했다.

5% 상한선만 강제하고 하한선을 따로 제한하지 않았던 전월세상한제의 맹점은 또 다른 악몽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금리인상 여파로 부동산 시장 찬바람이 몰아치자 전세 가격 폭락이 시작된 것이다. 역전세난, 깡통 전세, 전세 사기 모두 같은 맥락이다.

전세 사기 사태 직후 전세 거래 비중은 크게 감소했지만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비중은 지난해 12월 47.3%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3월 61.5%로 반등했다. 다세대·연립주택 전세 비중 또한 올해 들어 1월 50.3%, 2월 52.9%, 3월 56.8%로 꾸준히 상승세다.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주거비용을 절감하고 내집 마련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전세 제도가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전세폐지론이 불거지며 전세시장이 다시 한번 술렁이고 있다. 원희룡 장관은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좀처럼 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도마 위에 오른 전세 제도. 하반기 정부가 어떻게 개편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중해야한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칫 천문학적 규모의 전세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 벼룩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지 말아야 한다.


[미디어펜=김병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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