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감사원 간의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직무감찰 수용 여부를 놓고 충돌하고 나섰다. 앞으로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감사원이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고발하는 등 형사조치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선 것은 중앙선관위다. 선관위는 2일 오전 과천 청사에서 노태악 선관위원장 주재로 위원회의를 갖고, 회의 후 보도자료를 배포해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선관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최종 입장을 밝혔다.
선관위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그동안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으로 선관위가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라며 "이에 따라 직무감찰에 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위원들의 의견"이라고 전했다.
선관위의 입장은 일목요연하다. 헌법 제97조에서 감사원의 감사 범위에 선관위가 언급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국가공무원법 제17조에 '인사 사무 감사를 선관위 사무총장이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헌법 및 감사원법상, 감사원의 감사는 회계 감사와 직무 감찰로 구분된다.
선관위는 이와 관련해 회계에 속하지 않는 일체의 사무에 관한 감사는 직무감찰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2022년 10월 5일 국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반면 감사원은 이날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선관위 결정에 대해 "정당한 감사 활동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감사원법 제51조에 따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감사원법 조항에 따르면,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는 사람은 처벌할 수 있다. 향후 감사원이 선관위를 상대로 고발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감사원은 이날 선관위가 거부 결정을 발표한 직후,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선관위가 언급한) 국가공무원법 제17조는 선관위 인사사무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배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며 "이 규정은 행정부(인사혁신처)에 의한 자체적인 인사감사의 대상에서 선관위가 제외된다는 의미이고, 선관위 인사사무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배제하는 규정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감사원은 보도참고자료에서 "그래서 선관위는 감사원으로부터 인사업무에 대한 감사를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며 "감사원은 2016년 직급별 정원을 초과하여 승진임용·신규채용을 하는 등 인사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선관위 공무원에 대해 징계요구한 바 있고, 2019년에도 경력경쟁채용 응시자의 경력 점수 등을 과다 산정하는 등 서류전형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선관위 공무원에 대해 직무상 책임을 물어 징계요구하였다"고 강조했다.
전임 박근혜 정부 및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감사원은 선관위 인사사무에 대해 감사를 해왔다는 반론이다.
또한 감사원은 선관위가 '감사원법상 직무 감찰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내놓은 것에 대해 "선관위는 감사원법에 따라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라며 "감사원법 제24조에서 국회-법원-헌법재판소를 제외한 행정기관의 사무와 그에 소속한 공무원의 직무 등을 감찰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확실히 했다.
그러면서 "1994년 감사원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과정에서 선관위는 직무감찰 제외 대상에서 빠졌다"며 "따라서 감사원법에서 직무감찰의 예외로 인정한 기관 외(外)의 기관인 선관위는 직무감찰 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선거관리 업무 역시 감사원법 상 감사대상에 해당한다"며 "선관위가 담당하는 선거 관련 관리-집행사무 등은 기본적으로 행정사무에 해당하고, 선관위는 선거 등에 관한 행정기관이므로 감사대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감사원은 "그간 선거관리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감사를 자제해온 것"이라며 "지난 2022년 발생한 제20대 대선 사전투표 부실관리에 관한 사항도 감사원 감사의 대상으로, 감사원은 선관위로부터 자체감사 결과를 제출받아 그 감사 결과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감사원법 제24조에 따르면 감사원의 감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기관은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이 3곳으로만 명시되어 있다. 선관위는 이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현재 선관위가 처한 상황은 절체절명이다. 자정 능력을 떠나 자체적인 내부 조사 결과에 대해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고용 세습으로 읽히는 자녀 특혜 채용에 이어 '형님 찬스'로 급속하게 승진한 사례까지 발견되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다.
그러면서도 선관위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전수 조사를 수용하면서, 전날 감사원이 착수한 직무 감찰에 응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힌 것이다.
선관위가 최종 백기를 들 때까지 외부 감사를 촉구하는 여론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안주하면서 내부 적폐를 스스로 키워온 선관위가 향후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외부 감사는 물론이고 수사기관의 수사까지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