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직접 만나본 이들은 지난 8일 외교관례에 어긋나는 도발적인 발언에 대해 ‘유창한 한국어를 일부러 더듬거렸다’는 평가를 내놨다. 싱 대사는 이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사관저에 초청해 카메라를 향해 나란히 앉아서 윤석열정부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는 내용이 적힌 A4지 5장 분량의 원고를 15분동안 읽어내려 갔다. 그는 “중국이 지는 쪽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 등의 과격한 발언을 하면서 종종 말을 더듬거렸고, 그 때마다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 싱 대사의 한국어 실력은 이보다 훨씬 유창하다고 평가하는 이들은 정상국가 외교관으로서 상상할 수도 없는 ‘도발성’을 ‘말더듬’으로 포장했다고 지적했다.
싱 대사의 도발적인 발언은 시진핑 국가주석 통치 하에 중국이 구사하는 ‘전랑외교’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늑대전사를 뜻하는 ‘전랑’은 중국의 애국심을 강조하는 영화 ‘특수부대 전랑’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중국 전랑외교의 상징적인 인물은 친강으로 주미대사를 지내다가 시진핑 3기에 맞춰 외교부장으로 고속 승진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미국과 전략경쟁 중인 중국정부가 외교를 전쟁 치루듯 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중국대사들의 과격 발언에 경쟁이 붙은 듯하다. 루사예 주프랑스 대사가 지난 4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 큰 파장을 낳았다. 이 때문에 유럽의회 소속 의원들이 페르소나 논 그라타 지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같은 달 우켄 독일 주재 대사는 유럽국가들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디리스킹을 겨냥,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위해 무역 문제를 정치화하고 무기화하는 것은 중·독 관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했다. 우장하오 주일 대사도 같은 시기 ‘대만 유사시는 곧 일본의 유사시’라는 일본정부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일본의 민중이 불길 속으로 끌려들어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사리원농업대학을 졸업해 소위 ‘북한 유학파’ 출신으로 북한과 우리나라 대사관에 번갈아 근무해온 싱 대사의 과격 발언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한국에 와서 신임장을 받기도 전에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한반도를 겨냥한 중국의) 장거리 레이더를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반박하는 기고문을 국내 언론매체에 보냈다. 이보다 앞서 그가 2004년 주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할 당시 타이완 총통 취임식에 참석의사를 밝힌 우리 여야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참석하지 말라고 종용한 사실도 있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25년만에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상 기피인물 지정) 촉구 목소리까지 나왔다. 라틴어로 ‘환영(Grata)받지 못하는(Non) 사람(Persona)’이란 뜻으로 비엔나협약에서 유래한다. 이 협약 9조에 따르면, 접수국은 언제든 그 결정을 설명할 필요없이 타국의 공관장이나 기타 공관 외교 직원에 대해 ‘기피인물’로 지정해 파견국에 통보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별도의 절차없이 통상 72시간 내 출국 통보를 하게 된다. 1971년 비엔나협약이 발효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주한 외교단에 대해 기피인물로 추방된 사례는 단 한건 있다. 1998년 한국과 러시아 간 외교관 맞추방 사건이었다.
상대국의 외교관을 기피인물로 지정해 추방하는 것은 단교까지 염두에 둔 것이므로 정부가 실제로 이를 검토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싱 대사를 비판했고, 정부가 비엔나협약을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은 사실상 기피인물 지정의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며 최후통첩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13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 대사에 대해 “외교관으로서 상호존중이나 우호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싱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우리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2020년 1월 부임한 싱 대사의 근무기간이 3년을 넘긴 만큼 중국정부가 앞으로 일정 기간을 거쳐 대사 교체를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에서 설화 논란을 일으킨 루사예 대사도 곧 귀임한다는 홍콩언론 보도가 12일 나왔다. 외교가의 이런 전망은 이번 기회에 싱 대사의 업무상 비위 의혹이 언론을 통해 공개돼 더 이상 정상적인 대사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는 평가에서도 기인한다.
이번에 드러난 의혹에는 싱 대사가 1박에 1000만 원짜리 울릉도 고급 숙박시설을 접대받았고, 코로나19 방역정책 중 국내기업 임원들과 만찬을 하는 등 방역법을 위반했으며, 중국대사관 부지 주차장 대여로 월 400만원~500만원의 수익을 올렸고, 심지어 시 주석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비판한 사실도 있다. 이런 의혹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지만 중국대사관은 엿새째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과거 싱 대사는 한국 내 ‘반중 감정’이 초래된 원인을 우리언론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한 일도 있다. 하지만 주변국을 압박하는 전랑외교를 펼치면서 ‘중국의 꿈’(中國夢)을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지금 중국은 구한말 조선에서 내정간섭을 일삼고 심지어 고종에게 삿대질까지 했던 위안스카이가 청나라를 멸망시켰던 뼈아픈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때이다. 당시에도 고종은 청나라에 위안스카이 면직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청나라는 위기를 인지하지 못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