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윤석열 정부가 서민과 청년층을 타깃으로 내놓은 금융 3종(소액 생계비 대출, 대환대출 인프라, 청년도약계좌) 지원책이 시장에 본격 등장했다. 코로나19 피해와 장기화되는 고금리 여파 등을 고려한 정책인 만큼, 예상보다 금융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끝없는 관치 논란을 지적하고 있어 명암이 뚜렷하게 나뉘는 모습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윤 정부표 '금융 3종 세트'가 시장에 모두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서민과 청년층을 타깃으로 내놓은 금융 3종(△소액 생계비 대출 △대환대출 인프라 △청년도약계좌) 지원책이 시장에 본격 등장했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의 윤 대통령 발언 모습./사진=대통령실 제공
정책별로 살펴보면 소액 생계비 대출은 취약계층의 불법 사금융 이탈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신용평점 하위 20%, 연소득 3500만원 이하 성인이라면, 연체이력을 따지지 않고 최대 100만원 한도로 대출받을 수 있다.
대출 만기는 기본 1년인데, 이자를 성실히 갚으면 최장 5년 이내에서 만기를 연장할 수 있다. 대출금리는 최초 연 15.9%로 높지만 대출자가 서민금융진흥원의 금융교육을 이수하고 이자를 잘 납부하면 최저 연 9.4%까지 낮아진다.
제도권 은행에서 밀려난 중·저신용자들이 반길만한 대목인데, 실제 정부가 지난 3월 27일 이 상품을 출시한 이후 지난 9일까지 약 5만 1125명이 약 314억원의 급전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환(대출 갈아타기)대출 인프라는 이자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대출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과거 고금리로 체결한 신용대출을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경쟁사의 저금리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까닭이다.
대출자들은 대출상품을 비교할 수 있는 플랫폼사 7사를 통해 은행, 저축은행, 카드·캐피탈 등 53개 금융회사의 상품 금리를 비교해볼 수 있다. 지난달 31일 출시 이후 16일 현재 금융사 간 1만 7481건(4472억원)의 대환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사인 '청년도약계좌'도 예상보다 흥행하고 있다. 이 상품은 매달 70만원을 5년씩 적금하면 금융권의 우대금리와 정부 기여금 등을 포함해 최대 5000만원을 모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약정금리는 기본금리가 3년간 연 4.5%(4년차부터 변동금리)에 은행별 우대금리 최대 1%p, 저소득층 우대금리 0.5%p(은행 공통) 등으로,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 연 6%를 기대할 수 있다. 앞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청년도약계좌가 연 7% 내외부터 8% 후반의 일반 적금(과세상품)에 가입한 것과 동일한 효과"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 자산형성을 희망하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출시 이틀만인 지난 16일 누적 가입자 16만명을 돌파했다. 당초 5년간 매월 70만원씩 불입해야 한다는 장벽 때문에 흥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는데, 최근 주식·가상자산 시장의 침체가 계속돼 안정적 투자를 지향하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정부는 가입자 규모를 300만명 수준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친(親)소비자 금융정책'에 수혜층이 반색하고 있지만, 금융권에서는 '관치'로 빚어진 상품 기획과 구두개입을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요즘처럼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극도의 경쟁과 불안감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분명 희망을 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정책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청년자산형성'이 아닌 '청년부채'가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것.
노조는 "만 19∼39세 청년 가구의 평균 부채는 지난 10년간 2.5배 급증했고,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에서 빠진 청년도 적지 않다"며 "정부와 금융회사들은 단시간노동자, 플랫폼, 프리랜서, 비정규직, 사회초년 노동자에 대한 금융의 문턱을 낮추고 이들이 부채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때 채무조정, 감면 등을 확대하는 방안부터 마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내놓은 청년도약계좌에 대해서도 은행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역마진' 구조를 지적하며, '포퓰리즘 상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노조는 "6월 8일 3.5%대 기본금리 잠정 고시 이후 일주일도 안되는 사이에 당국은 은행을 쥐어짜고 압박해 기본금리를 1%나 올렸다"며 "생색은 정부가 내고 은행은 많이 팔면 팔수록, 금리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역대급 '관치금융×포퓰리즘' 상품이 탄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한 은행의 손실이 다른 청년들과 청년 외 금융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진다"며 "예금평균금리 상승은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한쪽에서 발생된 손실을 메꾸기 위해 은행은 저신용자에 대한 진입문턱을 높일 것이다"고 우려했다.
은행권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대출금리를 누르고 있는 가운데, 조달금리가 오르면 은행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고금리 예금이자 지급으로) 향후 수익성이 많이 저하된다면 대출금리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기준금리가 내려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강한데 기본금리를 3년간 고금리로 줘야 하니 은행으로선 역마진일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 당국 압박으로 은행들이 고금리 예적금 상품을 출시했다가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철회한 것과 같은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올 하반기 예금자보호한도 및 예금보험료율 재조정을 비롯해 코로나19 금융 연착륙 지원 등을 앞두고 있다.
우선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계기로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오는 8월까지 예금자보호한도와 예금보험료율 재조정 등에 나설 예정이다.
금융소비자의 불안감이 대규모 뱅크런(현금 대량 인출)으로 이어졌던 만큼, 22년째 5000만원으로 제한된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관련 법 개정안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같은 당 의원 10인은 최근 예금자보호 지급 한도를 2억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다만 예금자보호한도와 보장 수준이 확대되면 금융사들이 예금보험공사에 내야 하는 예금보험료가 오르게 되고, 소비자들의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오는 9월에는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원금·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된다. 그동안 정부가 연착륙 지원책을 펼치며 대출 부실을 최소화했는데, 실제 금융권에 미칠 파장이 적을 지 귀추가 주목되된다.
이 외에도 정부는 금산분리 제도 개선안을 3분기 중 발표할 계획이다. 더불어 12월에는 대환대출 인프라를 통해 주택담보대출의 대환도 가능토록 할 예정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