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연예스포츠팀장]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5월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가 개봉 21일만인 지난 20일 9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조만간 1천만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1년 전인 지난해 5월 개봉했던 '범죄도시2'는 '천만영화' 반열에 올라섰다. 총 관객수가 1269만여 명으로 집계돼 있다.
시리즈 첫 편이었던 '범죄도시'는 2017년 10월 첫 선을 보였고 688만 이상 관객을 동원했다. 아직 마석도(마동석 분)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전이어서 후속 시리즈보다 적은 관객수였지만, 개봉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고 화제를 모았다. 1편이 흥행하지 못했다면 시리즈로 기획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1년 간격으로 개봉한 시리즈 영화가 '쌍천만' 흥행에 성공한 것은 '신과 함께'에 이어 '범죄도시'가 두번째(가 될 예정이)다. '신과 함께'는 2017년 개봉한 1편 '죄와 벌'이 1441만, 이듬해인 2018년 개봉한 2편 '인과 연'이 1227만명 관객 동원으로 한국영화사에 신기원을 이룬 바 있다.
'범죄도시'의 흥행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주인공인 '마블리' 마동석의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우람한 체구에서 나오는 반전의 '귀염뽀짝', 나쁜 놈들을 처리할 때의 속 시원한 '빅펀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범죄도시'는 장르 자체가 '마동석'이다.
죽어 마땅한 악당이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역대 빌런들(윤계상 손석구 이준혁), 마동석과 티키타카를 이루는 조연들도 흥행의 주역들이다.
사실 영화적으로 '범죄도시'는 단순명료하다. 악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철칙을 앞세워 물불 안가리는 형사 마석도가 빌런과 그 일당을 주로 주먹으로 '때려'잡는다. 이렇게 플롯이 단순한 영화를 천만 관객이 영화관으로 어려운 발걸음을 해 봐준다.
영화 속 액션을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마동석의 모습에서 청소년기에 매료됐던 이소룡(브루스 리)을 떠올려 본다. 1970년대 홍콩 액션 스타였던 이소룡은 단 4편의 주연 영화('정무문' '당산대형' '용쟁호투' '맹룡과강')만 남기고 33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는데 레전드가 됐다.
무협 액션인 이소룡표 영화는 코믹 범죄 액션인 '범죄도시'와 장르도 다르고, 주인공의 캐릭터도 별로 겹치는 점이 없고, 구사하는 액션도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마동석과 이소룡을 오버랩시켜 보는 것은 둘이 악당들을 시원하고 깔끔하게 때려눕힌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소룡 영화 이전에도 액션물은 많았지만 이소룡이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 것은 '잘 안 맞고 더 강하게 때려눕힌다'는 점이 이전 액션 영화들과 차별화돼 강렬하게 어필한 때문으로 보인다. 스스로는 멍들거나 피흘리는 일 거의 없이 나쁜 놈들을 시원하게 때려눕혀주니, 관객들은 별로 조마조마한 심정 없이 편안하게(?) 액션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동석표 액션 역시 이와 유사하다.
'범죄도시'에 관객들이 호응하는 저변에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한다. 갈수록 다양해지고 악랄해지는 범죄를 매일 뉴스로 접한다. 경찰 등 공권력이 이런 범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따가운 질책이 쏟아진다.
'범죄도시'에서는 다르다. 약자를 괴롭히고 살인을 일삼고 마약을 뿌려 사회를 병들게 하는 빌런들을 마석도 형사(와 동료들)가 다이렉트로 찾아가 빅펀치 한 방으로 깔끔하게 응징한다. 관객들의 속은 뻥 뚫린다.
마석도가 '형사'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실 세계라면 마석도는 비난받거나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악질 형사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피의자에게 헬멧을 씌워 진실의 방으로 데려가는 것은 고문 행위에 해당한다. 자신의 주먹 세기를 알면서 범죄자에게 풀 펀치를 날리는 것은 과잉진압일 수 있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마석도를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공권력'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이다. 힘없는 우리는 저렇게 못하지만, 범죄자를 잡는 의무를 부여받은 공권력이라도 나서 흉악범들을 끽소리 못하게 해달라는 응원이 바닥에 깔려 있다.
이전 한국 천만영화와 '범죄도시'는 차별점이 있다. 역대 흥행 1위 '명량'을 비롯해 '신과 함께', '국제시장',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베테랑', '암살', '택시운전사', '해운대', '기생충' 등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들은 영화적 재미나 완성도와 함께 묵직한 주제 의식이나 함께 생각해볼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인공 마동석. /사진=더팩트 제공
하지만 '범죄도시'는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주제를 영화적 재미로만 풀어내는데 집중한다. 코미디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 '극한직업'이 예상밖 흥행을 하며 역대 관객동원 2위에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경제·사회적인 분위기도 '범죄도시' 흥행열기의 밑불이 됐다. 코로나1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경제 상황은 답답하다. 말로만 민생을 외치면서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도 답답함만 안긴다. 묻지마 폭행, 끔찍한 스토킹과 엽기적 살인 등 사회악은 분노지수를 높인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답답해진 가슴과 복잡해진 머리로 '심각한' 영화를 즐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나오는 개그(유머+몸개그), 대리만족을 주는 빅펀치로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풀린 관객들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입소문을 낸다.
'범죄도시'는 지금 3편이 상영 중인데, 이미 4번째 작품 촬영을 마쳤다. 4편 개봉이 내년 쯤으로 예상되는데, 8편까지 기획하고 있다는 애기가 들린다. 마동석이 있고, 범죄가 있는 한 흥행 보증수표를 받은 '범죄도시' 시리즈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를 앞세운 살벌한 액션의 '존 윅' 시리즈가 4편까지 나왔는데, 마블리를 앞세운 '범죄도시'를 8편 또는 그 이상 제작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만큼 마석도 형사는 한국영화가(마동석이) 만든 역대급 '히어로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다만, 아쉽고 우려스러운 점은 있다. 영화는 다양해야 한다. 현실도 반영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과거도 담고, 상상의 나래를 펼 미래도 그려내야 한다. 즐거움을 주는 영화도 있어야 하지만 함께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도 필요하다.
'범죄도시'의 연속 흥행 성공이 아류작들을 양산하는 안일한 기획으로 이어진다든지, 영화팬들의 취향을 한쪽으로만 몰고가 편향성을 부추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