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대담 김진호 부사장·정리 김준희 기자·사진 김상문 기자]"제2의 정자교 사고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습니다. 시설물 유지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업역 갈등으로 인한 폐지 추진은 '어불성설' 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20년 건설산업 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시설물유지관리업종을 폐지하기로 했다. 올해 12월 31일이 지나면 업종을 전환하지 않은 업체는 등록이 말소된다.
지난 1995년 시설물유지관리업종 도입 이래 최대 위기다. 민진용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경기도회장은 시설물유지관리업 종사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각종 시위와 집회, 언론 기고 등 불철주야 현장을 누비며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의 불합리성과 부당성을 알리고 있다.
민 회장은 "1995년 시설물유지관리업 도입 이래 폐지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했다"며 "언론을 비롯해 대통령, 국회, 국토부 장관 등에게 부당함을 호소하고 끝까지 업종 사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민진용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경기도회장은 경기 수원시 사무실에서 진행된 미디어펜과 인터뷰에서 "끝까지 업종 사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건설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불법 하도급 양산"
시설물유지관리업종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계기로 시설물 안전·유지관리 강화를 위해 도입됐다. 시설물 완공 이후 기능을 보존하고 이용자 편의와 안전을 높이기 위해 시설물을 일상적으로 점검·정비하고 개량·보수·보강하는 공사를 업역으로 한다.
민 회장은 "출범한지 28년 동안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장비 등을 갖추고 보수, 보강, 개량 공사만을 전담했다"며 "이로 인한 사고 발생 사례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간 경험 축적에 의한 특허도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러한 시설물유지관리업종을 폐지하기로 했다. 시설물 신축과 유지관리 간 경계가 모호해 전문건설업과 업역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시설물유지관리업종으로만 등록하면 모든 공사를 수행할 수 있어 부분별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논리다.
이는 '어불성설'이라는 게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입장이다. 민 회장은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에 따르면 시설물유지관리업은 시설물 보수·보강·개량을 업역으로 하고 있고 신축이나 재축, 대수선 등은 할 수 없도록 돼있다'며 "업역 갈등이 지속적으로 되고 있다는 국토부 주장은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명분도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시설물유지관리업은 보수·보강 공사 내에 방수, 도장, 철근·콘크리트 등을 종합적으로 한다"며 "그러나 전문건설업은 방수, 도장, 철근·콘크리트 등 파트가 각각 나눠져 있어 이에 대한 보수·보강을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결국 기존 시설물유지관리업자들이 하도급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러한 현실에도 국토부는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2021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국민권익위원회가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 방안에 대해 '폐지 시점(시설물유지관리업 유효기간)을 2029년까지 유예하고 세부 시행방안을 충분히 논의하라'고 권고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민 회장은 국토교통부가 주장하는 '업역 갈등'에 관해 "전문건설업과 업역이 다르기 때문에 국토부 주장은 명분이 없다"며 "시설물유지관리업이 폐지될 경우 불법 하도급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28년간 쌓아온 신기술 사장 위기…'부실시공' 가능성↑"
최근 시설물 유지관리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경기 성남시에서 발생한 정자교 붕괴 사고를 비롯해 수인분당선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 등 노후화된 시설물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면서 유지관리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민 회장은 "우리나라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노후된 기반시설물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시설물유지관리업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고 볼 수 있다"며 "국민 안전과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시설물의 보수·보강·개량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시설물유지관리업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부의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 강행으로 이들 업체가 보유한 신기술은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민 회장은 "지난 28년간 시설물유지관리업체들이 보유 중인 관련 특허가 상당히 많다"며 "그러나 시설물유지관리업이 폐지될 경우 이러한 신기술들이 내년부터 사장된다. 이를 갖고 영업하던 수많은 업체들이 밥그릇을 잃게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제2의 정자교 사고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며 "그동안은 안전진단 전문기관이 많지 않아 시설물유지관리업체가 정기·정밀점검 등 안전진단 업무도 70~80%가량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설물유지관리업이 폐지되면 이러한 국내 수많은 구조물들의 유지보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로 인해 부실시공 등 우려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토부는 기존 시설물유지관리업체들의 업종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종전 시설물업 실적을 전환·가산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2021년 업종 전환 시 실적의 50%, 2022년 전환 시 30%, 올해 전환 시 10%를 가산해주고 2026년까지 기술자 보완을 유예하기로 했다.
민 회장은 "황당한 이야기"라며 "입찰 과정에서 업체 적격심사 시 판단기준이 경영상태와 실적이다. 이렇게 실적을 허위로 가산해 인정할 경우 변별력이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기술자의 경우 시설유지관리업은 4명, 건축·토목은 5~6명을 보유해야 하는데 업종 전환 시 2026년까지는 기술자를 보완하지 않아도 면허를 유지시켜주겠다는 것"이라며 "부당하다. 구조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부실공사를 유발할 수 있는 치명적인 법"이라고 꼬집었다.
민진용(왼쪽 위)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경기도회장이 경기 수원시 사무실에서 김진호(오른쪽 아래) 미디어펜 부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헌재 소송 결과 유일한 희망…끝까지 업종 사수할 것"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는 이러한 부당성과 불합리성을 알리기 위해 그간 집회·시위·언론 홍보 등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지난 2021년에는 헌법재판소에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와 관련해 위헌 소송을 제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민 회장은 "시설물 업역에 있어 폐지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중앙협회 차원에서 그동안 반대 집회, 1인 시위, 매스미디어를 통한 홍보를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국토부는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에서 제기한 위헌 심판 결정이 나오면 그에 따라 시행하겠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써는 헌재 소송 결과가 유일한 희망인 셈이다. 민 회장은 "마지막 남은 희망의 지푸라기"라며 "업종을 전환하지 않은 회원들 모두 위헌 소송 결과가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업종 폐지까지 반년도 남지 않은 촉박한 상황. 그럼에도 민 회장은 발로 뛰며 시설물유지관리업 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 회장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1인 시위를 비롯해 세종시를 오가며 많은 집회와 성토를 했다. 지방지와 중앙신문에 호소문과 부당성 기고도 많이 했다"며 "끝까지 업종 사수를 위해 집회를 추진하는 등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토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대통령, 국회, 국토부 장관에게 호소할 계획이며 언론을 통해 국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시설물유지관리업이 존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속 홍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펜=김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