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준희 기자]학교폭력은 학교의 역사와 함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내에서 일어나는 숱한 사건들이 일부 ‘학생 폭력배’의 일탈 또는 ‘애들 싸움’으로 치부됐던 시절부터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되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뤄지게 된 오늘날까지 학교폭력 피해자 중 상당수가 온당한 회복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방치돼왔다. 그들은 학교폭력이 남긴 트라우마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심한 경우 성인이 된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피해를 감당해야 했다.
2023년은 ‘학폭 미투’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열풍, 정치적으로 불거진 학교폭력 논란 등 그 어느 때보다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해진 해였다. 이러한 가운데 저자 노윤호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의 회복, ‘학교폭력 트라우마’의 극복이라는 주제에 대해 신간 ‘학교폭력, 그 이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그 본상을 밝히고 해결 방법을 찾았다.
2023년은 학교폭력, 특히 마땅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피해자 회복과 일상 복귀에 큰 지장을 입힌 과거 사건들에 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른 해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내려진 처벌 수위와 불이익 등에 논의가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피해자의 회복에 대해서는 잘 다뤄지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저자는 ‘학교폭력, 그 이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사건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조명하고 과거에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파헤치고자 했다.
교내외에서 행해진 또래 간 괴롭힘 및 폭력이 처음부터 ‘학교폭력’으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일부 난폭한 학생들이 일으키는 예외적 행동 또는 사소한 다툼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학교폭력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제도적 절차와 지원이 미진해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군가 입을 열었다. ‘지금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는 저 사람은 과거에 나에게 학교폭력을 휘두른 가해자다. 이 현실은 부당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가해자를 잊지 못한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자 세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가해자를 고발했다. 가해자를 향한 비난이 쇄도했고 가해자는 본래 위치에서 물러나거나 끌어내려졌다.
시류를 반영하듯 등장한 드라마 ‘더 글로리’는 과거 학교폭력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해 가해자들에게 사적 복수를 하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싸움을 담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혹자는 이 광경을 보며 정말로 사적 복수만이 자신에게 남은 수단인지 고민하게 됐다.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인 저자가 본 사적 복수의 온상은 어땠을까.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이 학교폭력 가해자를 미행하고 협박하고 휴대전화를 뒤지는 모습 등은 실제로는 법망을 피해갈 가능성이 지극히 적은 일들이다. 현실에서 일어난 사적 복수도 마찬가지다. 과거 피해자였던 이는 가해자로, 가해자였던 이는 피해자로 뒤바뀌어 결과적으로는 피해자만 고통과 형벌의 대상이 됐다.
저자는 본문에서 “사적 복수는 결코 과거에 일어난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없으며, 상대방에 대한 파괴이자 동시에 나를 파괴하는 행위이다”라고 말한다. 과거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응당한 책임을 묻지 못한 피해자들로서는 답답한 상황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에게 이토록 가혹하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해결책이 없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각종 후유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삶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 구성원이 학교폭력 피해자를 외면할수록 다른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돕는 일이 곧 사회를 개선하는 일이다.
저자는 과거 학교폭력 문제로 사무실에 찾아왔던 의뢰인들, 즉 실제 학교폭력 피해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기 다른 사건의 피해자들이 학교폭력으로 인해 어떤 후유증을 겪었는지,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으며 반대로 어떤 것이 그들의 회복을 가로막았는지 들으며 진정으로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극복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탐구했다.
저자 노윤호는 학교폭력 변호사가 전국에서 손에 꼽을 만큼 생소했던 2016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학교폭력 피해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며 법적 조력자로서 곁을 지켜왔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기나긴 고통을 끝내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게 할 방법을 찾고자 시작한 그의 여정이 과거 피해자들 그리고 현재 학교폭력 피해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미디어펜=김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