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주총 전 삼성SDI·삼성화재에 서한 보내
[미디어펜=이미경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수많은 공격에도 ‘뉴삼성물산’을 탄생시키며 승리를 이뤄냈지만 전운은 가시지 않고 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총 전 삼성계열사에 강력한 ‘반대’ 서한을 보내는 등 추가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여 ‘제2 라운드 전쟁’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총 직전에 삼성SDI와 삼성화재에 ‘합병을 찬성하지 말아 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지난 17일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의 임시주주총회 모습이다./삼성물산 제공 |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총 직전에 삼성SDI와 삼성화재에 ‘합병을 찬성하지 말아 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엘리엇은 삼섬SDI와 삼성화재에 지분을 각각 1% 이상 보유하고 있다.
삼성 측에 따르면 해당 공문에는 직접적인 소송이나 배임 등을 적시한 문구는 없었지만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담았다.
앞서 엘리엇 측은 주총 결과가 합병으로 나온 직후 “수많은 독립주주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이 승인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러우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추가 소송 제기를 암시했다.
외신들 역시 엘리엇이 삼성을 상대로 소송전을 진행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과 엘리엇의 법적 분쟁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을 제기했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역시 엘리엇이 삼성 측에 앞으로 어떤 요구를 할지 관건이라고 보도했다.
엘리엇이 공문을 보낸 곳은 삼성SDI와 삼성화재 두 곳이다. 삼성SDI와 삼성화재는 삼성물산 지분을 각각 7.39%, 4.79% 보유하고 있다. 엘리엇은 앞으로 각사의 경영진의 위법행위에 대해 유지청구권 소송이나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상법상 ‘유지(留止)청구권’은 이사가 법령·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해 불이익이 생길 우려가 있을 때 주주가 그런 행위를 중지하도록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엘리엇 측은 삼성SDI와 삼성화재에 대해 회사의 이익이 아닌 그룹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 투표한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아직은 소송이나 이런 것 까지 깊게 시나리오를 나간 것은 아니다”라며 “만약 소송이 들어온다면 단독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SDI 역시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함께 대응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자체 판단으로 찬성 결정을 내린 국민연금에도 주총 이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서한을 보낸 만큼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엘리엇이 주총 당시 거론했던 이건희 회장의 의결권 위임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물산 주식 1.41%를 갖고 있다.
당시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과거부터 이 회장의 의결권은 포괄적 대리 행사가 되고 있으며 이번 주총 역시 마찬가지로 위임권이 발동됐다”고 말했지만 일각에서는 엘리엇 측이 의도적으로 이 사안을 꺼냈던 만큼 향후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