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전승절’이란 이름으로 기념하는 7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일을 기해 중국과 러시아의 고위급 정부인사를 초청, ‘북중러 연대’를 과시했다. 마침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시기에 맞춰 전례 없는 우의를 뽐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특히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상을 위한 무기전시회를 준비하고 직접 ‘방산 세일즈’에 나섰다. 심야에 열린 열병식에서도 쇼이구 국방상, 중국의 리훙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과 나란히 주석단에 올랐다. 마치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러 무기수출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올 초만 해도 북러 간 무기거래 의혹이 제기되면 부인해오던 북한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태도 변화를 보이는 것은 최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망언’이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탈북 모자(母子)’가 검거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만큼 북중, 북러 관계가 더욱 밀착된 것이며, 현재 ‘안보리 무용론’이 가져올 파장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싱하이밍의 “중국이 지는 쪽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라는 윤석열정부 비난 발언을 놓고 전문가들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중국정부의 대한국 정책 변화라는 진단을 내놓은 바 있다. 중국은 또 최근 마약사범으로 구속 중이던 우리국민 1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다. 물론 그간 총 6명의 한국국민이 중국에서 사형을 당했지만 2014년 말 이후 약 9년만의 일이었다.
2014년은 한미 간 한반도에 사드 배치가 논의되기 시작할 때였다. 특히 중국은 그해 7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이 있은지 몇 달 되지 않아 한국국민 4명을 사형시켰다. 이후 시진핑은 한국을 찾지 않고 있다. 그리고 2020년 2심 선고 이후에도 시간을 끌어오던 한국국민에 대한 사형을 하필 지금 집행한 것이다.
북한의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인 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한 열병식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상과 리훙중 정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주석단에 올라 있다. 2023.7.27./사진=뉴스1
사드 배치는 우리정부가 불투명하게 절차를 진행하면서 시진핑 국가주석 입장에선 체면을 크게 손상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현재 윤석열정부의 한미일 밀착도 중국 입장에선 견제해야 할 사안이어서 한국민에 대한 사형 집행은 경고 메시지로 읽힐 만하다. 여기에 중국에서 지난 4월 다롄의 ‘안중근 의사 전시실’이 폐쇄된데 이어 지난달 10일 지린성 룽징에 있는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의 생가도 폐쇄됐다.
이와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외교관 가족인 모자가 탈북을 시도하다가 ‘러시아판 FBI‘라고 불리는 수사 당국에 의해 체포된 일도 주목받을 만하다. 중국과 달리 탈북자에 대해 난민 지위를 부여하기도 했던 러시아가 이번엔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처럼 중국과 러시아에서 한국 입장에서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일들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최근 들어 ‘신냉전 구도’나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과 같은 말이 자주 오르내리지만 북한과 중국 관계, 북한과 러시아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더구나 북중러 연대란 말은 사실 성립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은정권만 봐도 집권 초기 수년간 북러 정상회담은 물론 북중 정상회담이 없었다. 하지만 2018년 북미 대화가 시작되자 중국과 러시아 모두 북한과 밀착하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북미 대화 덕분에 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을 연이어 만날 수 있었다. 여기에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중 간 전략경쟁이 더욱 격화됐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우크라전에서 러시아는 핵을 사용하진 않지만 핵위협을 부풀리는 인지전, 즉 핵 그림자(Nuclear Shadow)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지금 북한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2024년 미국의 대선 시기를 기다리듯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강력 연대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한편, 국제체육행사를 통해 외교전에도 몸 풀기를 할 태세이다. 자칫 북한이 미국·일본과 먼저 대화를 시작할 경우 우리가 소외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은 계속 고도화되고 있어 중국·러시아의 반발에 대비하고, 북핵 대응에 우리의 사활이 걸려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