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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에 대한 복거일의 당부 ‘역사 속의 나그네’ 완간 헌정식

2015-07-21 17:33 | 김소정 부장 | sojung510@gmail.com

“자유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정설...반대의견에 너그러워야”

[미디어펜=김소정․김규태 기자]“죽음과 경주한다고 생각하니 집중이 잘 됐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대신 20년 전 쓰다 만 대하소설 집필을 시작한 소설가 복거일 씨의 ‘역사속의 나그네’가 완간됐다.

지난 20일 늦은 오후, 파주출판단지 살림출판사 앨리스 하우스에서 복거일 작가의 소설 완간을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1세기에서 살던 중 500년 전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소설 속 주인공 ‘이언오’를 만날 수 있는 작은 헌정식이 열린 것이다.

   
▲ 복거일 작가는 <역사 속의 나그네> 완간 기념회 자리에서 “어느 사회나 정설이 있으며 우리 사회의 정설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고 언급하면서 “이러한 정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따르고 지키려면, 이것이 옳다고 믿고 사실관계를 통해 나날이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미디어펜

20여년 전 중앙경제신문 연재소설로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역사 속의 나그네’는 1권부터 3권까지 출판됐지만 오랜 세월 중단됐다. 하지만 복거일 작가는 암 투병을 시작하며 독자들과 지키지 못한 약속부터 먼저 떠올렸고, 1년만에 완간시켰다.

복거일 작가는 ‘역사 속의 나그네’(문학과지성사)를 ‘지적 무협소설’이라 소개했다. 2070년대를 살다가 우연히 타게 된 타임머신 때문에 16세기 말엽 조선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주인공은 그곳에서 현대 과학지식을 활용해 세력을 모은 뒤 사회변혁을 도모한다.

한마디로 장풍 대신 머릿속 지식이 무기인 주인공이 사회를 계몽하는 내용이지만 마치 무협소설처럼 재미있게 그렸다.

책을 읽다보면 ‘시대의 지적 거인’으로 불리는 복거일 작가가 꿈꿔온 세상이 소설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상상도 보태진다.

   
▲ 복거일 작가의 <역사 속의 나그네> 완간 기념회에는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을 필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복거일 작가의 지인과 후학 등 많은 이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채웠다. /사진=미디어펜

복거일 작가는 ‘역사 속의 나그네’에 대해 “소설로 사회구조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민족의 노예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혹독했다. 1000년 넘게 지배층이 바뀌지 않았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았다”며 “심지어 조선 후기 실학자들도 노예제의 바탕에서 개혁을 얘기해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을 소설에서 밝혀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그의 책에서 유난히 지식인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그가 현실의 지식인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책을 통해 남기려 하는 것처럼.

복거일 작가의 당부를 들으려는 듯 이날 열린 헌정식에는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을 비롯한 국내 대표 자유주의자들도 대거 참석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단상을 나누고, 복거일 작가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다.

   
▲ 복거일 작가의 <역사 속의 나그네>는 1988년 8월 14일 『중앙경제신문』에서 연재를 시작한 뒤 1990년 가을 2권 분량의 연재를 끝내고, 복거일 작가가 이듬해 한 권 분량을 더 써서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3권까지 출간했던 장편소설이다. 지난 1년간 복거일 작가는 병마를 무릅쓰고 집필에 몰두, 6권 완간했다. /사진=미디어펜

조우석 문화평론가는 “복거일 선생과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즐거움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서 기쁘다. 그가 주는 지적 자극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방송인 장원재 씨는 “복거일 선생은, 그가 만약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와 인류문명의 진화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할 사람”이라고 했다.

현진권 원장은 “우리의 모임은 작지만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우파적 에너지는 크다”면서 “우파의 에너지는 자기선택과 자기책임에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에 화답하듯 복거일 작가의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한 짧은 강연이 이어졌다. 그는 “나무꾼이 혼자 깊은 산속에 들어가지 않는 법처럼, 우리 몸속 세포와 미생물이 공생해 생명을 유지하듯 여러 사람들이 잘 협력하면 큰 이익을 낼 수 있다. 개인의 협력을 통해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고 했다.

그는 이어 “어느 사회에나 정설이 있고, 우리 사회의 정설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면서 “우리 사회의 정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따르고 지키려면 이것이 옳다고 믿고 사실관계를 통해 나날이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리나라의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모이는 단초가 되었던 복거일 작가의 1991년 저서 『현실과 지향-한 자유주의자의 시각』 출간 이후, 반자본주의․사회주의 이념의 물살 속에서 외로웠던 자유주의자들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20일 열렸던 완간 기념회도 자유주의 모임의 명맥 속에 있다. /사진=미디어펜

또한 복거일 작가는 자유주의의 특성으로 ‘너그러움’을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 이념과 체제가 옳다고 믿기에 조금 더 느긋하게 살 수 있다. 없어져야 될 체제 안에서 산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왜 옳은지 성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완전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하더라도 사회에는 비효율과 부정, 불의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한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우리는 이를 인정하면서 조금씩 줄여나가고자 애쓰면 된다. 정설을 반대하는 그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자”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복거일 작가는 “음모론으로 세상을 어둡게 보지 않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라며 자유민주주의를 예찬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좋은 기억으로 갖고 갈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감사하다. 좋은 세월은 빨리 흐른다. 오늘이 그런 시간이었다고 다들 기억하길 소망한다”라는 작가의 따뜻한 인사말로 ‘복거일 선생의 헌정 day'는 마무리됐다.

   
▲ “죽음과 경주한다고 생각하니 집중이 잘 됐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대신 20년 전 쓰다 만 대하소설 집필을 시작한 소설가 복거일 씨의 ‘역사속의 나그네’가 완간됐다. /사진=미디어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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