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올해 봄 무렵까지만 해도 중국 경제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도 끝나가고, 흔히 말하는 ‘기술적 분석’ 측면에서 봐도 중국 증시가 너무나 오랜 조정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여름 내내 확인된 것은 산 넘어 산, 절벽 아래의 절벽이었다. 중국의 경기침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 중국 정부는 이번에 공개한 7월 주요지표에서 청년실업률 통계발표를 아예 생략해 버렸다. 이미 지난 4월부터 중국의 청년실업률은 3개월 연속 20%를 넘고 있었는데,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공개를 회피했을까?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사들이 줄줄이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중국 정부의 대처에 마지막 기대감을 버리지는 않았다. 이번 이슈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공산당의 존립기반 그 자체에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허나 중국은 다시 한 번 시장의 예상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지난 21일 발표된 중국의 대출우대금리(LPR) 데이터를 보자. LPR은 중국의 기준금리 격에 해당하는 지표다. 1년물과 5년물로 나뉘는데, 이번에 시장이 예상한 수치는 1년물 연 3.40%에 5년물 연 4.05%였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금리를 대폭 낮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게 시장의 예측이었다. (어쩌면 다분히 ‘미국적인’ 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은 달랐다. 중국 정부는 1년 만기 LPR을 연 3.45%로 0.1%포인트 인하하는 데 그쳤고, 5년물은 연 4.2%로 아예 동결시켜 버렸다. 다수 매체들이 중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심각한 현실에 비해 이번 인하폭은 터무니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5년물 동결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중국 정부와 시장의 시각에 엄청난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이제야 상기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발언이 있다. “인내하라”는, 너무나 차분해서 싸늘할 정도의 네 글자다. 시 주석은 지난 2월7일 어느 회의에서 이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 함께 잘 살자’는 중국정부의 원칙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언급하며 나온 말이라지만, 어째 중국이 말하는 부유라면 rich보다는 drifting(浮游)이 먼저 떠오르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2차전지로 시작된 한국증시 테마주 광풍은 쉴 새 없이 표변하고 있다. 테마 전환이 너무 빨라서 몇 시간만 정신을 놓고 있어도 트렌드에서 이탈해 버리고 만다. /사진=김상문 기자
어쩌면 이 문제는 자유선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귀결되는지 모른다. 이제와 돌아보면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야말로 올해 증시 최고의 분기점이었다. 미국 정부가 이 위기에 사력을 다해 대처했던 이유가 내년의 대통령 선거에 있을 것이라는 느낌은 대부분 공유하고 있을 터다.
G2라는 말로 함께 묶이는 두 국가는 각자의 위기에 대해 전혀 다른 노선을 택하고 있다. 이 온도차 때문에 결국 괴로워지는 것은 시장의 플레이어들이다. ‘주식은 사놓으면 오른다’는 격언은 미국 증시에서나 간신히 통용되는 말일뿐, 한국 증시는 수시로 변곡점을 맞이하며 각도를 꺾어댄다. 리듬에서 조금만 엇박이 나도 난처한 처치가 돼버리는 게 한국 개미들의 슬픈 숙명인 것이다.
2차전지로 시작된 한국증시 테마주 광풍은 최근 초전도체→맥신→리오프닝 등에 이어 어제와 오늘은 후쿠시마 오염수→양자컴퓨터 등으로 쉴 새 없이 표변하고 있다. 테마 전환이 너무 빨라서 몇 시간만 정신을 놓고 있어도 트렌드에서 이탈해 버리고 만다. 극한으로 몰아치는 이 템포는 시장의 역동성이라기보다는 불안감의 표출로 다가온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 걸었던 기대는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점점 더 멀어져간다. 가까운 중국을 등진 채 다시금 시선은 태평양 건너 미국을 향한다. 내일 새벽의 엔비디아 실적 발표와 금요일 밤의 제롬 파월 연준(Fed) 의장 연설. 이 두 가지 변수의 조합은 또 다시 시장의 환희와 탄식을 자아내며 우리를 새로운 국면으로 인도할 것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