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이후 북러 간 무기거래 및 군사기술협력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당초 러시아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공동선언문을 포함한 어떤 문서에도 서명할 계획이 없다”고 한 것대로 결과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노동신문을 비롯해 양국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려는 의도가 노골화되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14일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위협, 강권과 전횡을 짓부시기 위한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전술적 협동을 더욱 긴밀히 하고 힘을 합치기 위해 중대한 문제들과 당면한 협조 사항들을 허심탄회하게 토의했으며, 만족한 합의와 견해일치를 봤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 모두발언이나 연회 발언에서도 미국 등을 겨냥해 “악의 결집을 벌해야 한다”고 했으며, “북러 관계 발전이 양국 이익에 부합하며, 북한은 러시아와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이후 러시아 국영 로시야1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군사기술 협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안에서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감안한 듯 “(북한과의 협력에) 특정한 제한이 있고, 러시아는 이 모든 제한을 준수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협의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고 있다. 2023.9.13./사진=러시아 스프트니크 통신
이는 미국 등이 예상한 대로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포탄 등 무기를 제공받고 군사기술 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우려가 커진다. 푸틴 대통령은 우주기지에 도착해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것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북러 회담은 끝났지만 김 위원장이 여전히 러시아에 남아 극동지역의 여러 도시를 돌며 각종 군사시설을 둘러볼 계획이다. 김정은의 다음 행보도 양측의 군사협력 내용 및 수준을 짐작케하는 대목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 함께 회담 장소인 우주기지 내 ‘안가라’ 로켓 조립·시험동과 ‘소유즈2’ 우주로켓 발사시설 등을 둘러봤다. 이곳에서 유리 보리소프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사장 등이 직접 두 로켓의 성능 등을 설명했으며, 김 위원장은 부품의 크기나 작동 방식에 대해 질문했다.
우주기지에서 김 위원장 뒤로 군복 차림의 장창하 국방과학원장과 김정식 군수공업부 부부장, 김철규 국무위원회 경위국 국장이 뒤따랐다. 이들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전략무기 개발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는 이유가 결국 ICBM을 기술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것인 만큼 러시아의 기술 이전 여부가 주목된다.
이날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 회담에 이은 만찬까지 장장 7시간을 함께했다. 공식만찬을 마친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러시아 내 다른 행선지로 떠났다. 김 위원장은 우주기지에서 1170여㎞ 떨어진 하바롭스크주의 산업도시 콤소몰스크나아무레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엔 전투기 생산공장인 ‘유리 가가린’이 있다. 이곳에서 Su(수호이)-27, Su-30, Su-33 등 옛 소련제 전투기들이 생산됐으며, 2000년대 개발된 다목적 전투기 Su-35, 2020년 실전 배치된 첨단 다목적 전투기 Su-57 등도 생산하고 있다. 이곳엔 또 잠수함 등 군함 건조를 위한 조선소가 있어 김 위원장이 시찰할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선 태평양함대 사령부, 러시아 극동 최대 교육·연구 기관인 극동연방대학 등을 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16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만난다고 러시아매체들이 전했다. 따라서 김 위원장 일행의 러시아 행보는 며칠 더 이어질 전망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이 평양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북러 간 고위급회담은 지속될 예정이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초청했고, 푸틴 대통령이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번에 러시아로부터 단기적으로 필요한 기술을 이전받는 것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군사협력을 이어가려는 목표를 세웠다는 전문가의 평가가 나온다.
다만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의 북한 답방 계획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최선희 외무상과 조만간 만나기로 합의했으며, 이르면 내달 초 북한에서 회담할 수 있다고만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고 있다. 2023.9.13./사진=러시아 스프트니크 통신
김 위원장이 러시아에서 드러낸 행보에 따라 우리정부도 북러 간 군사협력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는 상황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이날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이번 북러회담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진 않지만 군사협력이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더욱 고도화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본다”고 밝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러 정상회담에서 위성개발을 포함한 군사협력 문제가 논의된 데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면서 “북러 간 군사협력이 현실화될 경우, 한러 관계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러측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 대변인은 이어 “북러가 안보리 결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며 우리의 안보를 중대하게 위협하는 행위가 있을 경우, 엄중히 경고하고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들과 관련 공조를 강화하면서 대응 조치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열었다. NSC는 회의 결과에 대해 “상임위원들은 13일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 계기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ICBM 개발을 포함, 다양한 군사협력이 논의됐다는 사실과 관련해 현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 특히 유엔 헌장과 안보리 결의 준수에 대한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정부는 북러가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든 이에 분명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한다”면서 “이와 관련해 미국, 일본 그리고 국제사회와 함께 협의하면서 북러 군사협력 문제를 엄중하게 다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